여행과 동물권
가이드북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콕토베에 ‘다소 슬픈 동물원’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슬픈 동물원도 아닌 ‘다소’ 슬픈 동물원의 모습이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가지 않기로 했다. 동물쇼를 보지도, 동물원에 가지도 않겠다는 선언을 한지 얼마 안 된 후였기 때문이었다. 동물원은 가지 않고 콕토베에서 유명한 비틀즈 동상과 전망대만 보고 오기로 마음먹고 길을 나섰다.
2013년, 내가 중앙아시아로 여행을 떠나오기 전 나에게 가장 뜨거웠던 이슈 중 하나는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의 야생방사였다. 제주도 연안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들은 간혹 어민들에 의해 불법포획이 되곤 하는데 이렇게 불법 포획된 동물들은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으로 팔려가 돌고래쇼에 동원되었다. 동물권 단체들은 불법 포획된 돌고래들이 바다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법정공방 끝에 제돌이를 포함한 돌고래들이 제주 앞바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들은 꽤 소란스러웠는데 나에게는 처음으로 돌고래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가 자란 제주도에는 오래된 아쿠아리움이 있다. 중문 앞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그 아쿠아리움은 제주도내의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현장학습이나 소풍으로도 많이 찾는 곳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을 거치면서 현장학습이나 소풍으로 그곳에 갔었고 돌고래쇼도 여러번 관람했다. 아쿠아리움에서 보는 돌고래쇼는 특별한 문화시설이나 놀이시설이 따로 없는 제주도의 어린이들에게 큰 볼거리 중 하나였다. 아마 아직까지도 제주도의 많은 어린이들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아도,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돌고래쇼를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족들과 바다에 놀러 갔을 때도 멀리서 돌고래를 본 적이 있지만 그때의 경이로움과 다르게 가까이에서 보는 돌고래는 그저 신기했다. 영특하게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재롱을 부리는 것이 귀여웠다. 그때는 몰랐다. 돌고래의 마음을 헤아리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인데 그 생각의 끝에 동물원에 가지도, 동물쇼를 보지도 않겠다는 선언에 이르게 된 것이다.
선언을 상기하며 도착한 알마티의 콕토베에 올라와 처음 만난 것은 어이없게도 슬픈 동물들이었다. 알고 보니 내가 선택한 루트로는 이 ‘다소 슬픈 동물원’을 지나치지 않고는 비틀즈 동상을 보러 갈 수도 전망대에 갈 수도 없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나는 작은 우리에 갇혀있는 동물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동물의 종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 동물원이란 이름을 붙이기에 옹색했다. 조류들은 날 수도 없을 정도의 작은 우리 안에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갇혀있었고 양이나 염소 같은 작은 동물들 역시 두세 마리씩 함께 갇혀있었다. 관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작은 우리 안의 동물들의 배설물 냄새가 지독했다. 동물의 털마다 배설물과 진흙이 엉겨 붙어있었다. 슬퍼졌다. ‘다소’ 슬픈이 아니라 ‘많이’ 슬픈 동물원이었다.
그 이후에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번번이 괴로운 동물들을 만나게 되었다. 서울에 있는 한 공원의 식물원에 가보니 난데없이 어항에 각종 희귀 어류와 갑각류, 파충류를 모아놓은 전시실이 나왔다. 어린이들은 작은 어항 속에 나뭇가지와 똑같은 색을 하고 있는 도마뱀을 찾느라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지방여행에서 방문했던 어떤 문학관에서도 비슷한 전시를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 어항은 철갑상어가 수영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작았다. 철갑상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냥 물 위에 떠있는 것뿐이었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현지인들이 관광객에게 푼돈을 받고 커다란 뱀이나 원숭이, 독수리와 기념촬영을 하게 해 주었다. 내가 코끼리를 타지 않아도 사람을 태운 코끼리는 흔하게 만날 수 있었다. 라오스에서 베트남 하노이로 넘어오는 국경 버스가 잠깐 들린 작은 마을에서 만난 곰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아주 작은 우리에 갇힌 힘없는 사육곰들은 여기저기 털이 빠져있었고 제대로 설 수 조차 없는 상태였다. 웅담을 보양식으로 여기는 중국인과 한국인을 위해 시달리고 있었다. 참담함을 바라보면서 선언은 더욱 단단해졌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도착 한 날, 지역축제가 동물원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환경수도로 유명한 이곳에도 동물원이 있다니 배신감이 들었다. 축제는 궁금했지만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갇힌 동물들 옆에서 축제를 즐길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곳의 동물원은 좀 다르다고 한다. 동물들을 위한 동물원이라고. 세상에 그런 동물원이 있다고 상상해본 적도 없었는데 신선했다. 함께 여행하는 팀원들과 의논한 후 다녀오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환경수도라고 자부하는 프라이부르크를 믿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동물들을 위한 동물원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기도 했다.
문덴호프. 열린 마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동물원의 부지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문덴호프에 있는 동물들은 인간과 오랫동안 관계 맺어온 유럽과 남미, 북미,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토종가축들이다. 세계적으로 좀 더 생산력이 뛰어난 가축 품종이 보급되면서 토종가축들은 멸종 위기에 놓이게 되는데 이런 가축들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지역에서 펼치는 곳이었다. 동물원보다는 농장에 가까운 셈이다. 말하자면 교육농장. 각 대륙별로 분리된 가축들은 자연에서 스스로 먹이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간에서 살고 있었다. 사람이 주는 먹이도 먹지만 관람객이 먹이를 주는 행위는 엄격하게 제한되면 동물들이 사람 가까이에 오거나 특별한 행사가 열리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동물들에게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다.
토종가축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들은 교육과 만나 '지속 가능함'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환경 수도답게 폐수시설도 친환경적으로 설계되었고 동물원 전체가 환경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있다. 산책로도 있어서 사람들이 환경을 해치지 않고도 자연을 누릴 수 있었다. 멸종위기를 막고 종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런 동물원의 형태로도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꼭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긴 했지만 사회성을 가진 동물들인 원숭이와 미어캣, 몽구스, 기니피그를 위한 부지도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본 동물원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멋진 공간이었지만 의문이 생겼다. 사람이 만든 곳 중에서 동물들을 위한 완벽한 공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런 동물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면 나보다 앞서 이런 고민들을 하고 방법들을 찾아내고 있겠지. 조금 마음이 놓였다.
새로운 동물을 만나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다. 여행 패키지나 가이드북에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아쿠아리움이나 동물쇼를 하는 동물원을 꼽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 확인하고 그런 곳에 방문하는 일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혹시 나의 방문으로 인해 더 많은 야생동물들이 인간의 볼거리로만 전락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동물들을 착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행에서의 소비 역시 마찬가지다. 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이용한 기념품은 이미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념품 중 하나이다. 한국보다 가격이 저렴한 동남아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런 소비가 윤리적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곤충의 박제를 넣은 열쇠고리는 특히 초등학생들에게 인기 있다. 이런 기념품이 아니어도 여행에서의 추억을 기념할 수 있는 것들은 차고 넘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여행에서의 경험과 소비가 동물들과 지구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면 여행에서 동물을 만나는 우리의 방식이 다르게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동물을 좋아하지만 동물원에 갈 수는 없으니 언젠가는 아프리카의 밀림으로 여행을 떠나는 꿈을 꾸고 있다. 그곳에서는 자유로운 동물들을 만날 수 있겠지? 앗, 혹시 내가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로 인해 기아에 시달리는 사자들이라면 어떻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