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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강D Sep 29. 2024

우실장과 웃기는 외야석-1막.투아웃1

1막. 투아웃 1

차례.     

프롤로그.

서울의 외야석

   원아웃

   투아웃

제주의 그라운드

   - 1

   - 2

   - 3

다시웃기는 외야석

에필로그.



투아웃     

LA 출장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래도 준비한 자료로 최선을 다했다. 몇몇 구단에서 곧 연락을 준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출장을 마치고 공항에 도착하니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비즈니스 석에 앉자마자 몸이 늘어졌다. 다리를 쭉 펴고 눕자 곧바로 잠이 쏟아졌다. 한참 잠을 자고 일어나니 머리가 조금 개운해졌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 술이나 마시자고 생각했다. 승무원을 불러서 우선 레드와인을 주문했다. 와인을 마시면서 자리 앞에 있는 모니터를 켰다. 최근 종영된 야구 드라마를 틀었다. 이미 여러 번 봤던 드라마다. 야구단 프런트의 겨울 동안의 모습을 꽤 생생하게 그렸다. 물론 드라마 속의 모습은 지나치게 세련됐다. 현실은 훨씬 촌스럽고 지질하다.

와인을 몇 잔 마신 뒤, 위스키로 주종을 바꿨다. 마침 우 실장이 즐겨마시던 제품이 있어서 온더락으로 세 잔을 더 마셨다. 머리가 알딸딸해졌다. 모니터를 끄고 비행기가 날아가는 영상을 잠시 멍하니 쳐다봤다. 비행기는 태평양 상공 어딘가를 날고 있었다. 여기서 추락하면 다 죽겠네.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아직 한국까지 날아가려면 한참 남은 것 같았다.

그때 앞에 앉은 아이가 태블릿으로 틀어 놓은 애니메이션의 대사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볼륨을 높였는지 대사가 분명하게 들렸다.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애니메이션인 것 같았다. 눈매가 초롱초롱한 다람쥐가 뭔가 주눅이 든 사자에게 말하고 있었다.

“바보야, 문제는 용기야. 모험의 세계로 떠나려면 용기가 필요해.”

옆에서 아이 엄마가 아이를 나무라더니 태블릿을 뺏었다. 아이의 얼굴은 울상이 됐다.

우 실장은 잠시 그 대사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술을 한 잔 더 주문했다. 너무 많이 마셨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곧 아무려면 어때, 하고 생각했다. 오늘 같은 날은 마음껏 취해도 되겠지. 스스로 축하해주고 싶었다.

비즈니스 석을 담당하는 승무원이 걸어왔다. 입술 옆에 커다란 점이 눈에 띄었다.

“저기, 술이랑 같이 먹을 것 좀 없나요? 땅콩 같은 거.”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손님.”

그런데 승무원의 태도가 좀 마음에 안 들었다. 서빙을 하는 모습이 좀 거만해 보였다. 우 실장이 술을 너무 많이 시킨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쳇, 괜한 참견은.

잠시 후 우 실장이 주문한 술과 함께 땅콩이 왔다. 먼저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알코올 때문에 위가 마비가 됐는지 술이 물처럼 쑥 내려갔다. 땅콩 봉지를 뜯었다. 그리고 한 입 먹었다. 그런데… 너무 눅눅했다. 퉤 하고 뱉었다. 유통기한을 보려고 봉지를 들었다. 하지만 유통기한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이건 고의다. 다들 날 골탕 먹이려고. 집에 있는 아내가 생각났다.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왜 다들 알아주지 않는지.

“이게 뭡니까?”

“네? 손님? 무슨 문제라도…”

다른 자리에 서빙을 하던 승무원이 깜짝 놀라서 달려왔다. 입술 옆의 점도 파르르 떨렸다.

“이거 일부러 이런 거죠? 유통기한이 지난 땅콩을 가져다주면 어쩝니까? 네?”

“손님, 이거 유통기한 아직 남아 있는 건데…”

승무원이 땅콩 봉지를 뒤집어 유통기한이 쓰여 있는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 더 화가 났다.

“지금 나 가르치세요? 손님이 맛이 갔다고 하면 그런 거지. 여기 서비스가 원래 이렇습니까? 네? 이거 먹고 내가 계약이라도 그르치면 당신이 책임질 거예요?”

속사포처럼 쏘아붙였다. 말을 하면서 술기운이 올라왔다. 끄윽 하고 트림도 나왔다. 승무원의 얼굴이 발개졌다. 이런 경유의 매뉴얼은 없는 모양이었다. 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달려왔다. 

“저기, 손님 좀 진정을…”

팀장이 우 실장을 달랬다. 그때 담당 승무원이 인상을 쓰는 게 보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 실장의 뚜껑이 열려버렸다.

“저것 보세요! 지금 인상 쓰는 거 안 보이세요? 일부러 그런 거라고요.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몸에 있는 피가 모두 얼굴에 쏠린 듯 얼굴이 뜨거워졌다. 

승무원의 얼굴은 어느새 파랗게 질려있었다.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팀장이 그 옆에서 대신 고개를 숙였다.

“저희가 교육을 잘 못 시켰습니다. 죄송합니다.”

담당 승무원도 팀장을 따라서 우 실장에게 머리를 숙였다. 울먹이느라 사과하는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눈물 때문에 마스카라도 번져 있었다. 그 모습이 좀 안쓰러워 보였지만 동시에 묘한 승리감도 느껴졌다.

“똑바로 하세요. 똑바로!”

우 실장은 대충 아무렇게나 충고를 하고 의자에 휙 몸을 던졌다. 팀장과 승무원은 한 번 더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무슨 일인가 두리번거리던 사람들도 자리를 피했다. 

다리를 피고 눕자 갑자기 머리가 띵했다. 아무래도 술기운이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전화기가 울렸다. 우 실장은 아픈 머리를 잡고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침부터 누구야, 매너도 없이. 짜증을 내면서 핸드폰에 손을 뻗었다.

도 대표였다. 도 대표? 도 대표가 왜? 우 실장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도 대표는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인사도 없이 다그쳤다.

“자네, 어제 무슨 일 있었나?”

밑도 끝도 없이 무슨 말이야. 인상을 쓰면서 대답했다.

“무슨 일… 이라니요?”

“어제 말이야, 비행기에서.”

비행기? 비행기라면… 비로소 머리가 돌아갔다. 뭐야, 고작 그 정도 일로 아침부터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돌아온 사람에게.

“조금 말썽이 있었습니다. 서비스가 영 엉망이라…”

“이 사람아, 조금이라니? 지금 회사 홈페이지가 다운이 됐어!”

도 대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 양반이 아침부터 왜 이렇게 난리인지. 더군다나 홈페이지 다운이라니. 오버도 정도껏 해야지. 우리 회사 홈페이지 따위를 찾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무슨 말씀이신지…”

“빨리 전화 끊고 기사를 봐봐!”

도 대표가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전화를 끊었다. 

또 무슨 오버인지. 쯧쯧. 우 실장은 침대에서 일어나 크게 기지개를 켜고 냉장고에 든 생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봤다.

침대에 누워서 잠을 더 자려고 했지만 잠은 몽땅 달아났다. 베개 옆에 놓인 스마트폰을 집었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무심히 페이지를 훑어보던 우 실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포털 사이트 가장 위에 걸린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비행기 꼰대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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