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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강D Oct 04. 2024

우실장과 웃기는 외야석-1막.투아웃3

1막. 투아웃 3

차례.   

  

프롤로그.

서울의 외야석

   원아웃

   투아웃

제주의 그라운드

   - 1

   - 2

   - 3

다시웃기는 외야석

에필로그.


사무실 밖으로 나오니 아직 바깥은 환했다. 강렬한 태양이 우 실장의 눈을 찔러 눈부시게 만들었다. 얼른 여기서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기 두려웠다. 마침 택시가 지나가기에 손을 들어서 잡았다. 그러고 보니 택시란 거… 대체 얼마 만인지. 실장으로 승진한 뒤로는 회사에서 나온 세단 승용차만 타고 다녔다.

“어디로 갈까요?”

택시기사가 졸린 목소리로 물었다. 택시기사의 나이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얼굴은 꽤 어려 보였는데 머리엔 흰머리가 가득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예전에 고등학교 시절, 영화 동아리에서 봤던 재미없던 영화가 생각났다. 당시 따라다니던 여자애를 쫓아서 동아리까지 들게 됐다. 영화는 오래된 영화인지 흑백이었다.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꾸벅꾸벅 졸았다. 하지만 거기서 주인공이 택시에 탔던 장면은 기억이 난다. 그때 주인공은 어디로 갈지 몰랐던가. 그리고 영화 속 택시기사는 “어디서 오발탄 같은 손님이 탔어”라고 중얼거렸지. 내가 그렇게 될 줄이야.

“아무 데나, 그냥 아무 데나 가주세요.”

힘없이 말했다. 택시기사는 백미러로 우 실장 쪽을 흘끔 쳐다보더니 차를 출발시켰다.

창밖으로 거리의 풍경이 지나갔다. 실장을 단 이후엔 검은색으로 코팅됐던 풍경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 투명한 색이다.

멀리 회사 근처 단골가게가 보였다. 김치찌개가 맛있었던 곳. 일을 하다 혼자 늦은 점심을 먹을 때 가던 집이다. 친절한 주인 할머니가 있는. 그러고 보니 한동안 못 갔다. 어느 순간부터 비싼 음식만 찾게 됐다. 아직 장사를 하는구나. 가게를 보면서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핸드폰을 열었다. 갑자기 사람이 그리워졌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연락처를 검색했다. 3776개. 저장된 번호의 숫자였다. 사회생활 이십오 년의 자산이었다. 아래로 쭉 내렸다. 잊고 있던 이름들이 떠올랐다. 처음 보험회사에서 만났던 동료들, 스포츠 에이전트 일을 하면서 만났던 구단 관계자들, 선수들. 일 때문에 스쳐 지났던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 

하지만 그중 누구에게도 전화를 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서 사회생활을 빼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는 절망감이 들었다. 빈껍데기가 된 기분이었다. 친구… 친구들은 다 어디 간 건지…….

힘없이 전화기를 닫았다.

그때 신호에 걸렸는지 차가 멈췄다. 그리고 신호등 앞에서 노점을 하던 어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노숙자라 해도 믿을 만큼 초라한 행색의 남자였다. 윗옷은 목이 잔뜩 늘어난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머리는 오랫동안 감지 않았는지 제멋대로 헝클어져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웃고 있었다. 속 편한 웃음이었다. 어떻게 저런 웃음을 지을 수 있는지. 남자의 얼굴이 신기해서 한참 쳐다봤다. 눈을 뗄 수 없었다. 창을 통해 남자의 얼굴 위로 우 실장의 지친 얼굴이 겹쳤다.

차가 출발하니 남자는 손까지 흔들었다. 고개를 돌려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우 실장이 멀어질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었다.     

*          

집 천장은 흰색이다. 실크 재질로 울퉁불퉁하게 멋을 냈다. 저런 벽지는 누가 고른 건지. 이 집에 들어와서 도배를 했던가. 아니면 원래 있던 걸까.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 실장은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보면서 생각했다.

집에서 틀어박혀 지낸 지 벌써 2주가 넘었다. 낮과 밤이 완전히 바뀌었다. 낮엔 자고 밤엔 시체처럼 어슬렁어슬렁 주방에 가서 위스키를 홀짝였다. 밥은 거의 먹지 않았다. 위스키와 함께 안주로 치즈 쪼가리를 먹는 게 고작이었다.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머릿속엔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 단 하나뿐이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이미 수백 번 시뮬레이션했던 그 장면으로 돌아갔다. 이게 만약 시간 여행 영화라면, 그때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어쩌다 보니 온 가족이 집에 틀어박혀있는 신세가 됐다. 미선은 원래 가정주부이고, 한별과 한철도 학교를 안 가는지 주로 집에 있었다. 참견하기 귀찮아서 묻지도 않았다. 어차피 삼류 학교인데 가서 뭐 하냐 싶기도 했다.

그래도 걱정하는 건 마누라밖에 없었다. 미선은 이런저런 음식을 권하고 일부러 말을 시켰다. 평소와 달리 쓸데없는 수다도 떨지 않았다. 배려한다는 게 느껴졌다.

반면 아이들과는 서로 투명인간 취급이다. 처음부터 세상에 없던 사람처럼 서로를 대한다. 좀 서운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위스키에만 손이 갔다. 첫날보다 먹는 양이 매일 늘고 있다. 이렇게 알코올 중독이 되는 거겠지. 하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우 실장이 회사 명의의 보도 자료를 기사로 본 것은 언론에 보도된 후 며칠 뒤였다. 오랜만에 핸드폰을 끼적이다가 그 소식을 접했다.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이 떨렸다. 다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기사에서 우 실장은 파렴치한 사람처럼 묘사됐다. 그동안의 삶이 부정당했다는 절망감이 들었다. 그 안에서 우형진이라는 사람은 이미 죽어 있었다.

다시 위스키를 부었다. 속이 타 들어갔다. 그럴수록 더욱 집요하게 알코올을 넘겼다. 결국 그날 술을 마시다 정신을 잃었다.

다음 날 아픈 머리를 잡고 일어나니 이미 해는 넘어가 있었다. 어두워지는 하늘을 멍하니  보다가 불쑥 생각했다.

죽자.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어차피 이 사회에서 난 죽은 사람이다.

죽자고 결심하자 갑자기 두뇌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찌뿌둥했던 시야도 밝아진 느낌이었다. 막상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하자 몸이 뜨거워지고 손에 땀이 맺혔다. 방에서 나와 주방으로 물을 마시러 가면서 계속 생각했다.

그래, 죽자. 기왕 죽는다면 세상에 충격을 주고 싶다. 특히 나를 자른 회사 놈들의 뒤통수를 치고 싶다. 이를테면 실장실에 들어가서 죽으면 어떨까.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표정이 떠올랐다. 다들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런데 회사 경비원 눈은 어떻게 속이지. 쉽게 안 속을 텐데. 하여간 회사 보안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무슨 대단한 기밀이 있다고. 더군다나 회사에서 목이라도 매달고 죽으면 좀 추하지 않을까. 특히 정 주임한테 그런 모습을 보여주긴 싫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물을 벌컥거리면서도 아이디어는 확장됐다.

“뭐야! 병신같이 혼자 죽고 지랄이야.”

그때 거실에 앉아있던 한별이 소리쳤다. 깜짝 놀라 돌아봤다. 한별에게 들켰나 싶어 놀랐다. 하지만 한별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뉴스에선 어떤 잘못을 한 연예인이 경찰에 끌려가기 전에 자살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치사하게 죽긴 왜 죽어. 지만 죽으면 끝인가. 완전 이기적이야.”

그 말을 듣고 기가 죽었다. 얼굴도 화끈 달아올랐다. 나쁜 일을 하다 들킨 기분이었다. 깨갱하면서 조심조심 방으로 들어갔다. 문도 조심히 닫았다.     

다시 밤이 찾아왔다. 우 실장은 혼자 앉아서 위스키를 들이켰다. 어쩌다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한 걸까. 더군다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니. 삼류 배우도 아니고. 그런 유치한 생각을 한 자신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었다. 확실히 깨달았다. 난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난 이기적인 바보다.

위스키를 한잔 더 털어 넣었다. 위스키가 목을 따라 내려갔다. 목을 태우는 기분이었다. 내 존재도 다 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왜 회사원 따위가 된 걸까. 이딴 게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다.

언제인가 옛날, 아직 한별이와 사이가 좋던 어느 날 휴일의 거실에서, 우 실장은 한별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선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를 하고 있었다. 조랑말처럼 얼굴이 긴 배우가 무엇이 그리 억울한지 한강 다리에 올라 오열하는 장면이 나왔다.

우 실장은 그러거나 말거나 소파에 드러누워 다음 날 있을 보고서 작성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막 옮긴 회사에서 적응을 하느라 열정이 뜨겁던 때였다.

“아빠.”

갑자기 한별이 불렀다. 우 실장이 고개를 들어 한별을 보며 온화하게 대답했다.

“왜 그래, 딸?”

한별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근데 아빠는 어쩌다 회사원 따위가 된 거야?”

순간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회사원 따위라니……. 우 실장은 멍하니 한별을 쳐다봤다. 그리고 자신이 그것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밤 우 실장은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그래, 나 어릴 적 꿈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원래는 그라운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고 싶었지. 그런데 어쩌다 이런 일을 하게 됐을까. 내가 어릴 때는 말이야… 딱 여기까지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아왔고, 일상은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완전히 잊고 살았다.     

한잔 더 목에 털어 넣으려 할 때 누군가 맞은편에 앉았다. 미선이었다. 고개를 들어 미선을 쳐다봤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선은 우 실장을 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우 실장 앞에 있던 잔을 들고 입에 털어 넣곤 아주 쓰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두 사람은 잠시 멍하니 서로 바라봤다. 오랜만에 사람의 눈빛과 마주쳤다. 그 안의 온기가 느껴졌다.

“저기, 여보, 난, 나는 말이야…”

목에서 간신히 소리가 나왔다. 미선은 자리를 옮겨 우 실장의 옆에 앉아 속삭였다.

“괜찮아. 좀 울어.”

그 말을 신호로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미선의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꺼이꺼이 소리를 내면서 울었다. 울음을 터뜨리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내가 말이야, 원래는, 정말 잘하려고 그랬는데… 미선은 다 이해한다는 듯 우 실장의 등을 토닥였다. 미선의 품은 따뜻했다. 마치 엄마의 품처럼.

한참 울다가 문득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가장이라고 폼을 잡았던 기억이 났다. 고개를 들어 미선을 쳐다봤다. 미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니 뭔가 잊고 있던 감정이 떠올랐다. 맞아, 저런 미소였는데.

갑자기 자신의 얼굴이 신경 쓰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엉망이었다.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이었다. 거기에 오랫동안 자란 수염이 얼기설기 나있고 얼굴도 푸석거렸다. 이 주일 만에 십 년은 늙은 것 같았다. 낯설다. 인생을 잃어버린 중년 아저씨의 얼굴. 딱 그만큼이다.

우 실장은 잠시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다 볼을 짝하고 때렸다. 그리고 주먹을 쥐었다. 그래, 다시 살아보자. 가족들을 위해서. 난 다시 태어난 우 실장 리턴즈다!

결심을 하면서 뒤로 돌았다. 순간 발에 비누가 밟혔다. 그대로 어어 소리를 내면서 바동거리다가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식은땀이 흘렀다.

저거 밟고 넘어졌으면…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론 살겠다고 바동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워 피식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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