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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uda Nov 01. 2020

내 딸이 우리 엄마를 닮았어요


이런 작은 습관까지 부모를 닮는 것 보면 참 신기하다


오늘 아침 양치를 하려고 보니 치약이 마치 다리미로 다려서 다시 접어 놓은 빨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치약이 접힌 부분을 보니 어젯밤 딸아이가 칫솔 등으로 수없이 문지른 것 같다.
치약 중간부터 짜는 거 싫어해서 끝부터 사용해 말아 올리는 나였다. 그러다가 얼마 안 남으면 딸이 그랬던 것처럼 칫솔 등으로 다림질을 해서 다시 말아 놓는다.

치약 뚜껑을 열고 아무리 짜도 치약이 나오지 않아 그냥 버리려다가 나처럼 힘들게 남은 치약을 짜내고도 버리지 못하고 남겨둔 딸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가위로 입구를 자른 후 칫솔로 남은 부분을 파냈다. 아침 양치를 할 정도는 되었다.
양치를 하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하나도 안 닮았다고 생각하는 딸아이의 모습이 언뜻 보이는 것도 같다.

참 신기하다.
아이가 부모를 닮아가는 모습이.

어릴 때 나는 아빠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배우해도 될 만큼 잘생겼다는 소리를 듣는 아빠였다.
아빠 닮았다는 말은 엄마를 닮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아빠와 어디가 닮았는지 엄마와 어디가 안 닮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른들이 다들 그렇다고 해서 그냥 그런 줄 알았었다. 그런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내가 엄마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 때가 있다.
  
우리 엄마는 가끔 설거지를 할 때 다리를 흔든다. 어떤 땐 몸 전체를 흔들 때도 있다.
난 엄마가 설거지하며 춤을 춘다고 생각했다. 어린 마음에 설거지가 그렇게 신나는 건가 싶어 가까이 가서 보니 엄마 얼굴이 너무 빨갰다.
그랬다.
엄마는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 설거지 빨리 마치고 가려고 참는 거였다.  난 엄마의 그 모습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하나도 안 참으면서 왜 쓸 데 없이 이런 데서 인내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딸아이를 보니 이 아이도 다리 떨기를 하고 있었다
난 외할머니 닮아서 그런 거라고 엄마에게 말했지만 사실 나도 가끔 뭔가 집중할 때 다리를 떤다는 건 비밀.

다림질 한 치약으로 양치를 하고 나니
오늘은 왠지 더 상쾌한 기분이 든다

                                                                         Nov.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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