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궁 May 25. 2020

우리는 이미 빛을 지니고 있다

밤의 로마_Aroma of night




연극이 시작되기 전 대기실은 배우들의 리허설이 한창이다.

나는 조용히 대기실을 나와 극장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어떤 통로를 발견하고는 이끌리듯 그 안으로 들어갔다.

다소 어두운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니 크고 묵직한 것이 앞을 가로막았다.


이건 뭐지?


앞을 막아서는 그것에 놀라면서 잠에서 깼다.

언제나 그렇듯 꿈은 얄궂게도 궁금한 부분에서 나를 깨운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의 끝을 알고 있다.



어린 시절 가까운 사람이 연극에 출연하고 있었다.

그날은 주말이라 엄마가 나를 극장에 데려갔다.

대기실에서 배우들과 함께 있다가 밖으로 나와 극장 안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여긴 뭘까.. 어디로 통하는 걸까?



©이미지 _은궁(angaeblue)



다소 어둡고 좁고 긴 통로를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호기심이 일어서였지만 걷다 보니 괜히 들어왔나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내 앞에 커튼이 나타났다.

천장부터 이어진 무겁고 웅장해 보이기까지 하는 검은 적색의

커튼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뒤돌아 나갈까 돌아보니 이미 입구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무거운 커튼을 온몸으로 헤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끙끙거리면서 커튼과 얼마간 씨름을 했을까.

저 앞에 희미하게 빛이 보였고 나는 그곳으로 나갔다.



작은 불빛이 무대를 밝히고 앞으로는 빈 객석이 보였다.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객석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고

몇몇 사람들이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무대에 서서 앞을 바라보니 왠지 뿌듯하고 설렌다.

마치 고난을 헤치고 나온 기분이었달까.


어쩌면 기억의 왜곡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겁고 큰 커튼이 아니었을지도, 통로가 그리 길지 않았을지도..

그러나 아직까지 그때의 기억은  내게 묘한 여운으로 남아있다.




사람들은 자는 동안 5,6개의 꿈을 하루 동안 꾼다고 한다.

프로이트와 칼 구스타프 융은 꿈을 분석해서 심리 치료에 응용했다.

내가 기억하는 어젯밤 꿈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

꿈은 어떤 의미나 상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는데

왜 어린 시절 그때의 꿈을 꾼 걸까.

하루 종일

나의 꿈에 대에 생각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앞이 가로막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내 빛은 어디에 있지?

나는 언제쯤 빛을 찾을 수 있을까?


때때로 힘든 시기가 다가올 때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두렵고 무섭다.

그 속에 도사리는 현실의 고통을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바라보아야 하고 걸어가야 한다는 걸 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매일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해 준다.

그런데 나는 그 누군가가 나 자신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매일 반복되는 어두운 밤이 있었기에 나를 바라볼 수 있었고

나에게도 약하지만 빛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 채 두렵지만 걸어갔던 좁고 긴 통로,

그것이 지금 내 앞에 놓여있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결국 힘들게 나아가 마주한 것은 작은 빛과 빈 객석이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런 내가 좋았다.


나는 언제나 빛을 외부에서 찾았지만 빛은 이미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빛을 지니고 있다.

단지 힘이 들 때면 그 사실을 잠시 잊어버리는 것뿐이다.

에너지가 넘치는 날에는 보름달처럼 밝고 큰 빛을 낼 수도 있지만

쓰러질 듯 힘든 날에는 빛도 힘이 들어 약해진다.

어슴프레 비추는 초승달도 충분히 빛난다.

빛이 약해진 나에게 '괜찮다'라고 위로의 말을

 건 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을 살아가는 데 약한 빛이면 '충분하다'라고 말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_




story

<밤의 로마>

밤을 주웠다, 오늘을 주웠다

_은궁아트웍 에세이



*직접 찍은 사진과 글로 스토리 연재합니다.

<밤의 로마 >

(아이폰, 디지털 촬영)



©은궁아트웍(angaeblue)



우리는 이미 빛을 지니고 있다

글/ 아트워크

by 은궁(angaeblue)





이전 08화 나를 바라보는 것도 습관이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