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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Jun 22. 2024

나의 우주

누구나 자기의 우주에 갇힌다.

친한 동료가 갑상선암에 걸렸단다. 헉 마음이 내려앉았다. 얼마나 놀라고 겁나고 힘들까. 그 마음을 경험자로서 안다.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고 하지만 세상에 착한 암이 존재할까. 착한 암이라는 것은 제삼자가 편하게 하는 말일 뿐이다.




"악성입니다. 암인 거죠."


의사의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양성입니다. 지켜봅시다."


라는 말이 나왔어야 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림프절과 맞닿은 곳에 종양이 있어서 전이 위험이 컸고 그래서 병원에서는 빠른 수술을 권했다. 쓸 수 있는 정보력을 다 동원하여 병원을 결정했고 신속하게 수술을 받았다. 수술 결과는 매우 양호했다.


처음 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을 때는 너무나 정신이 없어서 검사 하나를 빠뜨리기까지 했다. 친구들은 미련하게 병원을 혼자 갔냐고 타박하며 남편의 무심함을 뭐라 했지만 그가 무심하지 않았음을 나는 잘 안다. 방법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그대로 의연함을 보이며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스스로와 나를 안심시켰던 것이다.


 아이가 어렸을 적이었다. 나는 어른이고 엄마였다. 내 보호자는 나여야 했다. 그러나 무섭고 억울하고 힘들었었다. 오빠가 갑작스럽게 암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 시점이 내 심리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지만 그 시점이었기 때문에 엄마에게 나의 병을 차마 알릴 수 없었다. 시어머니께 말씀드리려고 말을 꺼냈다가 잇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




새로운 직장에서 나는 병력을 공유하지 않았다. 뭐 좋은 거라고. 크게 대단한 병력도 아닐 뿐더러 굳이 사적인 이야기를 오픈하기 싫어서 암 환자가 받을 수 있는 공제 혜택까지 포기하며 말을 아꼈다.


그런데 처음 진단받았을 때의 공포와 스트레스가 어떤지를 너무 잘 알아서 같은 병을 진단받은 동료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자기 일에 열정적인 사람이 오죽하면 회의까지 빠졌을까 생각하며 퇴근길에 전화를 걸어 그녀를 위로하고 내 경험을 얘기했다. 알려지는 게 싫어서 공제 혜택도 받지 않았다고. 그리고 내가 수집했던 믿을 수 있는 수술 전문의 정보를 공유했다. 우리 오빠의 어렸을 적부터 절친이었던 의사로부터 얻은 정보였다. 나는 순수하게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다음 날, 그녀가 내 자리로 오더니 다짜고짜 수술 흉터 좀 보여달란다. 옆에 바짝 와서 매우 조용히 얘기하긴 했지만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하필 학생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있던 터였다. 그렇게 오픈된 장소에서 밑도 끝도 없이 수술 흉터를 보여달라니 이 인간이 미쳤나. 기가 막혔다.


"저 외적인 흉터 없어요. 로봇 수술해서. 그리고 나중에 얘기해요."


고요하게 속삭였다. 사실 매우 불쾌했다. 무례하다고 생각했고 호의를 베푸니 사람을 호구로 보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더는 수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알게 모르게 그녀가 자기가 병가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를 살뜰히 챙겼다. 때때로 내 자리에 간식을 놓아 두기도 하고 둘이 있을 때는 선생님은 같은 병을 앓았으면서 배려도 못 받는다고 안타까워했다. 나를 위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나는 마음이 풀렸고 되려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나흘 전, 그녀가 수술을 받았다. 메시지만 주고받았었다. 오늘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아차 싶어서 바로 끊었다. 갑상선 수술을 한 사람에게 전화라니, 나도 참... 나는 수술을 받고 말하고 먹는 게 크게 힘들지 않았었다. 종양의 위치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고 워낙 수술이 잘 돼서도였을 것이다. 내 경험이 그렇다 보니 전화까지 해 본 것이다.


사람은 자기 경험과 생각 안에 갇히나 보다. 그녀가 내게 다짜고짜 수술 흉터를 보여달라고 한 것도 그 이유였을 것이다. 자기 공포와 걱정에 갇혀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그녀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잘못 거신 거였어요? 바로 끊기던데."

"네~ 다른 00에게 전화한다는 걸. 죄송합니다. 좀 어떠세요?"


솔직하게 말하기 해서 둘러댔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갈라지긴 했지만 매우 괜찮아 보였다. 수술 결과도 좋고 전이가 없다는 소식이 매우 반가웠다. 짧게 마음을 주고받은 통화였다.




사실은 친구에게  직장 동료에게 받은 상처들을 토로하며 울먹였던 날이었다. 가끔 헷갈린다. 나의 예민함이 날 더 서운하게 하는 건지, 타인에게는 별일이 아닌데 내가 그렇게 받아들이는 건지.


누구나 자기의 우주가 가장 짙기 마련이고 그 우주가 우선일 수밖에 없다. 나도 그런 인간이었다.  조금은 넓은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봐야겠다. 이 또한 나의 우주를 평화롭게 하는 방법이다.




그동안 <우당퉁탕 문영 씨의 일일>을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17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 계셔서 매우 행복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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