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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31. 2023

이순신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 <노량:죽음의 바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명량>(2014), <한산:용의 출현>(2022), <노량:죽음의 바다>(2023)까지 이순신을 그린 영화 세 편을 모두 봤다. <명량>은 1,700만 명이 넘는 관객수를 기록했다. 그래서 이순신으로 배우 최민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명량>의 명대사, 아니 이순신의 말 "전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는 어린 아이들도 알 정도다.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과 싸웠으니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우린 이순신의 집념, 애국, 리더십 등을 배운다. <한산> <헤어질 결심>을 보고난 후 배우 박해일에 꽂혀서 최민식과는 다른 이순신을 기대하며 봤다. <명량>에 비해 이순신이 뿜어내는 파워가 약해서인지 관객 수 비교적 적었다. 전투 장면 이전이 너무 지루했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함께본 남편은 마지막 전투 장면이 너무 멋졌다며 감탄했고 나는 볼만한 영화로 기억했다. <노량>은 우리 네 식구가 모두 좋아하는 배우 김윤석이 주연이라 따져볼 것도 없이 보러 갔다. 마침 군대 간 큰아들이 휴가나온 참이라 우리 가족에게는 영화에 대한 평가보다는 오랜만에 네 식구가 함께 영화를 봤다는 데 더 의미가 컸다. 기대를 뛰어넘는 엄청난 느낌은 아니었지만 나는 세 편 영화 중 유일하게 눈물을 흘리며 봤다. 



<노량>김윤석은 첫 대사에서 목소리가 주는 무게감과 울림으로 존재감을 뿜어냈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임이 분명하지만 이순신이라는 성웅을 표현하는 게 무척이나 부담스러웠겠구나 싶을 정도로 힘이 많이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최민식, 박해일에 이어 이순신의 마지막을 보여주려니 연기자로서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겠다 싶다. 실력파 연기자라도 이순신이라는 사람을 온전히 담아내기는 어려울 거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게 된다. 


세 편의 영화를 다보고 난 후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역시 이순신이다' 였다. 우리나라 역사상 많은 위인이 있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영웅은 역시 이순신이다. 연기력으로 치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한 배우 최민식, 박해일, 김윤석이 이순식 역할을 했지만 세 배우가 보이지 않고 이순신만 보였다. 이순신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 이순신이라 더욱 신뢰가 가는 말, 이순신 덕분에 살아남은 우리 조선, 어떻게 한 사람이 이 대단한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그저 감탄과 존경,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안타까움과 슬픔이 가슴 깊이 솟아올랐다. 



나는 이순신을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로 기억한다. 작은아들이 뱃속에 있을 때 병원 입원 중에 처음 『칼의 노래』를 읽었다. 자궁문이 너무 일찍 크게 열려 때가 되지 않은 아이를 낳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이순신의 고통에 공감하며 우느라 아들 걱정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년 전 큰아들 걱정으로 심란해졌을 때 책장에 꽂혀있는 『칼의 노래』를 다시 꺼내 읽었다. 이순신이 명량에서 승리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적군이 순신의 셋째 아들 면을 죽이는 장면을 읽으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아비 때문에 자식이 죽었다. 이순신이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는 동안 어미와 할머니 그리고 어린 조카들을 건사하고 있던 스물한 살의 아들이 적의 칼에 죽었다. 


내 셋째아들 이면은 나보다 먼저 적의 칼에 죽었다. 적의 칼이 아비 자식의 순서를 따라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정유년 명량 싸움이 끝나고 내가 다시 우수영으로 수군진을 옮긴 가을에, 면은 아산 고향에서 죽었다. 면은 어깨로 적의 칼을 받았다. 적의 칼이 면의 몸을 세로로 갈랐다. 죽을 때, 면은 스물한 살이었다. 혼인하지 않았다. (···) 

면의 부고를 받던 날, 나는 군무를 폐하고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환도 두 자루와 면사첩이 걸린 내 숙사 도배지 아래 나는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바람이 잠들어 바다는 고요했다. 덜 삭은 젖내가 나던 면의 푸른 똥과 면이 돌을 지날 무렵의 아내의 몸냄새를 생각했다. 쌀냄새가 나고 보리 냄새가 나던 면의 작은 입과 그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를 생각했다. 날이 선 연장을 신기해하던 면의 장난을 생각했다. 허벅지와 어깨에 적의 칼을 받고 혼자서 죽어갈 때의 면의 무서움을 생각했고, 산 위에서 불타는 집을 내려다보던 면의 분노를 생각했다. 쓰러져 뒹굴며 통곡하는 늙은 아내를 생각했다. 나를 닮아서, 사물을 아래에서 위로 빨아당기듯이 훑어내는 면의 눈동자를 생각했고, 또 내가 닮은 내 죽은 어머니의 이마와 눈썹과 시선을 생각했다. 젊은 날, 국경에서 돌아와 면을 처음 안았을 때, 그 따스한 젖비린내 속에서 뭉클거리며 솟아오르던 슬픔을 생각했다. 탯줄에 붙어서 여자의 배로 태어나는 인간이 혈육의 이마와 눈썹을 닮고, 시선까지도 닮는다는 씨내림의 운명을 나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송장으로 뒤덮인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그 씨내림의 운명을 힘들어하는 내 슬픔의 하찮음이 나는 진실로 슬펐다.
몸 깊은 곳에서 치솟는 울음을 이를 악물어 참았다. 밀려내려갔던 울음은 다시 잇새로 새어나오려 했다.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김훈 『칼의 노래』  p.123, 129~130 


자식을 잃은 아비의 슬픔을 읽었다. 아비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잇새로 새어나오는 아비의 울음이 내 온몸으로 전해졌다. 곁에 있는 자식을 걱정하는 나의 한숨이 너무나 사소해졌다. 영화 <노량>에서 이순신의 아들 면이 죽는 장면이 나오고 그 소식을 듣는 아비의 슬픔이 표현된다. 책보다는 감흥이 덜했지만 슬픔은 덜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울기 시작한 것 같다. 


나는 이순신을 존경한다. 책이든 영화든 이순신이 나오면 숙연해진다. 평생 신념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나이 들수록 실감한다. 약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잔가지의 나뭇잎처럼 위태로운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그 마음을 붙잡고 내 의지대로 한 발씩 디뎌가며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나는 이 삶을 살아내는 보통 사람들도 다 애틋하다. 하물며 이순신 같은 영웅 앞에서는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경외심으로 마음이 일렁인다. 이순신처럼은 살지 못해도 그분의 태도, 마음가짐은 본받고 싶다. 



영화 <노량>에서도 후반부 전투 장면은 역시 압권이다. 영화로서는 보는 재미가 있다는 말이 맞겠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전쟁의 참혹함이 그대로 전달되어 아프기도 했다. 역시 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아군의 죽음이 더 가슴 아프기는 하지만 적군이라 해도 귀한 생명이 총칼 앞에 힘없이 무너지고 사라져버리는 현장은 너무 비참해서 누구도 평생 경험하지 말아야 할 일이 바로 전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영화 <노량:죽음의 바다>(2023)로 마음가짐을 단단히 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오늘 2023년의 마지막 날이다. 2024년엔 모두가 전쟁 없이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자신의 신념과 의지로 단단하게 삶을 살아내기를, 아픔이나 슬픔보다는 사랑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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