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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May 14. 2020

[제주일기 32] 대방어를 손꼽아 기다리는 계절

Winter is Coming with 대방어

 제주에서 겨울이 온다는 소식은 바람도 아니고 눈도 아니고 대방어로 전해진다. 바람이야 사시사철 불고, 영하로 떨어질 일 없는 제주에는 눈도 잘 오지 않는다. 하지만 대방어는 눈이나 바람보다 빠르게 도민들의 마음속을 매년 헤집고 일등 메달을 목에 거는 겨울의 전령사다. 기름이 가득하고 육질이 쫄깃한 대방어를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든든하다. 미드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얼음 성벽도 거뜬히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힘찬 기운을 대방어는 몰고 온다. 


 서귀포의 모슬포에서는 매년 11월에서 12월이면 최남단 방어축제가 열린다. 도민들은 10월 즈음부터 ‘이제 대방어를 먹으러 가야 한다’며 저녁 약속을 선점한다. 최남단 방어축제의 설명에 따르면, 방어는 여름이나 가을에도 동해와 남해에서 잡히지만 유독 겨울 방어가 모질고 물살이 센 바다를 헤엄치느라 몸집이 커지고 살이 단단해져 11월부터 2월 사이가 제철이라고 한다. 추운 겨울에 웬 방어축제냐 싶겠지만, 회사 동료들은 가족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방어낚시와 손으로 방어 잡기에 참여하곤 한다. 


 겨울이 다가오면 마트 해산물 코너에서도 방어회를 판다. 하얀 살을 자랑하는 광어와 달리, 불그스름한 속살에 기름기가 좔좔 흐른다. 나도 차오르는 기대감으로 횟집에서 방어를 먹어보았지만 추운 겨울을 기다릴 만큼의 보상이라고는 생각이 안 되어서 내심 실망했다. 주변 사람들이 제주에 와서 방어를 먹어야 한다고 설레발을 칠 때에도, ‘생각보다 별로’라고 실망감을 전하던 어느 날 방어가 아니라 대방어를 영접할 기회가 있었다. 호텔 뷔페에서 별 기대 없이 서너 점을 접시에 담아왔는데, 먹어보니 눈이 띠용 하게 맛이 있었다. 적절한 기름기가 돌아 살이 찰지고 고소했다. 흰 살 생선에서 먹어보지 못한 단백질의 응축된 맛과 붉은 생선에서 느껴보지 못한 담백함이 공존했다. 아앗! 대방어 코너로 다시 가서 뱃살 부위를 더 담아달라고 하니, 아침에 갓 잡은 대방어라 유난히 비린 맛없이 신선하다는 설명이었다. 방어와 대방어는 크기와 몸집만 다른 것이 아니었다. 어종이 다른 것인가 의심이 될 정도로 달랐다. 


 이후부터는 뻔한 이야기다. 나도 대방어를 기다리는 자의 대열에 합류했다. 대방어의 눅진한 맛뿐만 아니라, 바뀌는 계절을 음식으로 구분하는 가늠 법을 더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북쪽 스타크 가문의 문장이 ‘Winter is Coming’이라면, 제주도는 ‘Winter is Coming with 대방어’ 쯤 될 것 같다. 북쪽 나라의 영주인 스타크 가문은 추운 겨울을 대비해 전열을 가다듬고 창고에 곡식을 비축한다. 나는 제주도에 살면서 대방어가 찬 겨울바다를 헤엄쳐 내 입속으로 들어와 뱃살 지방에 비축되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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