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기엔 늦은 듯하고, 한 끼 거르고 저녁때까지 기다리기엔 시간이 애매하게 길어 배가 고플 것 같고.
"뭘 먹긴 먹어야 할 것 같은데." 하며 배달앱을 뒤적거리는 나를 보며
몇 달째 배달 음식만 먹었더니 피자를 먹는 건지 빈대떡을 먹는 건지, 스파게티를 먹는 건지 쌀국수를 먹는 건지 선척적으로 둔한 미각이 이젠 아예 마비된 것 같다고 남편이 퉁퉁거린다.
그러니까 진작 요리 좀 배우거나 이럴 때 인터넷 레시피라도 보고 요리하는 시늉이라도 내보면 좋으련만. 아무리요리에 취미가 없어도배달 음식 3개월이면 질려서라도 뭔가 해볼 텐데. 여전히 아무 시도도 안하는 남편.
"뭐, 당신은 안 하겠다 그러고, 나는 못하겠고. 배달 음식은 지겹고. 좀 늦긴 했지만 밖에 나가서 먹고 오자. 답답한데 바깥바람도 쐴 겸."
어디에 가서 뭘 먹을까.
"뎀시에 있는 Chopsuey (찹수이) 어때?"
"어? 나도 같은 생각하고 있었는 데. 지금 테이블 예약이 될까?"
당일 예약이 거의 불가능한 식당이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예약을 시도했다.
"30분쯤 후에도착할 수 있는데, 혹시 테이블 있을지..."
"Sure! Table for 2, Reservation Confirmed~"
어라, 로또 맞은 기분인 걸.
대충 옷을 갈아입고 뎀시로 향했다.
East Meets West West Meets East
Chopsuey는 디자이너 출신인 P.S Cafe 창업자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먹었던화교 음식을 자신들의 레시피로 고급지게 재탄생시킨 퓨전 식당이다. Black&White라 부르는 콜로니얼 건물(영국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방갈로) 안에 중국식 가구와 서양식 테라스 가구를 적절히 섞어 놓은 인테리어는이곳의음식처럼 섞인 듯 섞이지 않고 각자의 존재감을 차분한 듯 진하게 드러내고 있다.
Chopsuey는 뎀시힐 끝자락 BLK 10에 위치하고 있다
아. 덥다.
내 이름으로 예약된 테이블은 실내도 실외도 아닌 그 두 공간을 연결하는, 지붕으로 덮여 있긴 하지만 실외나 다름없는 곳에 놓여 있었다. 뜨겁게 달궈진 지열에 양철 지붕에서 쏟아져 내리는 열기. 무겁고 습한 공기.
소나기가 빨리 쏟아져야 하는데 습도만 잔뜩 올려놓고 올 듯 말 듯 약을 올리니나무로 우거진 뎀시힐은 금세 습식 사우나가 되었다.
땅에서 올라오고 지붕에서 내려오고.
마치 Grilled Cheese Sandwich의 치즈가 양면 프라이팬에서 녹아 내리 듯 온몸이 열기에 축 축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