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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운전 스티커는 떼어냈지만

by 윤모음

이사를 온 직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운전 연수를 받는 일이었다.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서는 대중교통으로만 회사에 출퇴근하는 것이 영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10년이 넘도록 고이 모셔만 두었던 장롱 운전면허증을 꺼냈다. 운전면허를 딸 때만 해도 겁이 하도 많아서 속도를 내기는커녕, 옆 차선으로 끼어들지도 못했다. 어찌어찌 면허증은 손에 넣었지만, 어차피 몰고 다닐 차도 없었다. 또, 다른 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운전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까마득히 길어진 출퇴근 시간을 참지 못한 나는 다시 운전대를 잡아볼까 고민한 것이었다. 무엇부터 해야 하나, 어릴 적에 배운 것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유튜브를 켜서 초보운전을 검색해서 살펴보았다. 운전석의 높이, 백미러 각도, 차폭의 감까지 — 모든 것이 낯설어 다시 처음부터 배우는 기분이었다. 영상 속 사람들은 모두 너무 쉽게 운전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화면을 멈췄다가 돌려보기를 수십 번. 옆 쪽에 조그맣게 광고로 뜨는 업체 링크를 클릭하고, ‘에라이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10시간 주행신청 버튼을 눌렀다. 내친김에 결제까지 완료했다. 당장 그 주 주말부터 시작되는 일정이었다.


"잘하시네."

희한하게 운전이 재밌었다. 분명 예전에는 이 세상에 다시는 없을 쭈꾸리처럼 운전을 했었는데 말이다. 세상 풍파를 좀 겪어서일까. 겁이 줄어든 기분이었다. 운전을 잘한다는 연수 강사님의 입에 발린 칭찬에도 어깨가 으쓱했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두 번째 연수 시간이 끝나자마자 중고차를 구매해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30대 중반이 되어서 나만의 첫차를 샀다. 샛노란색 배경에 검은색 두꺼운 고딕체로 큼직하게 초보운전, 도로주행이라고 적힌 두 개의 스티커를 차 뒤에 붙이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동거인의 말에 따르면, 그때 나는 꾸준함의 아이콘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바빠도 평일, 주말 상관없이 비가 오건 눈이 오건 하루에 1시간은 무조건 운전 연습을 했다. 다들 당근마켓 하면서 운전 연습한다더라! 고 말하며 당근도 하러 다니고, 주차 연습으로 유명한 성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곳에 찾아가 후면주차를 반복하는 식이었다. 그런 식으로 한 달을 바쁘게 움직였더니, 어느새 어디든 운전을 해서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옆에 가족을 태울 수 있겠단 마음도 같이.


가족과의 단풍 여행이었다. 여행을 가기 며칠 전부터는 평소보다 더 세심하게 운전 연습을 했다. 내비게이션 앱에서 모의 주행을 하며 어려운 구간은 없는지, 주차는 어디에 해야 하는지까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여행날이 되자, 아침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딘가로 운전해 가족과 함께 떠난다니, 기분이 오묘했다. 평생 차를 가져본 적 없던 우리 가족에게도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목적지까지는 그리 길지 않은 거리였지만, 괜히 기분을 내고 싶어서 중간에 휴게소도 들렀다. 유명하다는 음식을 검색해서 사 먹고, 커피도 한 잔씩 사서 자동차로 돌아왔다. 엄마가 좋아할 만한 노래를 틀어놓고, 함께 수다를 떨며 2박 3일 간 여기저기 다녔다. 말이 단풍여행이지, 전년도에 비해서 늦어진 단풍은 전혀 보이지 않아서 어딜 가나 초록초록하기만 했다. 그런데도 나에겐 그 어느 때보다 기억에 남는 단풍여행이었다.


여행 둘째 날 저녁, 불고기를 산더미처럼 쌓아서 내어주는 맛집에 갔다. 달콤하고, 짭짤한 고기를 나눠 먹으며 엄마와 언니는 술을 한 잔씩 나눠 마셨다. 엄마는 막내딸이 편히 숙소 앞까지 데려다 줄 거란 생각에 기분이 좋다며, 술이 술술 들어간다며 거침없이 잔을 비웠다. 그 덕에 엄마의 볼이 금방 붉어졌다. 하하 호호 웃으며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는 그냥 숙소에 들어가는 것이 아쉬워서 야경으로 유명하다는 광장에 들렸다. 그곳에서는 큰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에 맞춰 움직이는 레이저 쇼가 한참이었다. 술에 취한 엄마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작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언니와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고, 엄마 또한 눈이 사라질 정도로 활짝 웃었다. 그때, 엄마가 했던 말이 아직 내게 남아있다. “엄마 인생에서 오늘이 가장 행복해. 우리 딸들, 엄마가 고맙고 사랑해”


내 나이가 벌써 서른 중반을 넘었는데, 엄마 눈에는 여전히 막둥이 어린애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런 딸이,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서 가족을 데리고 여행을 한다니. 여느 평범한 가족처럼 자동차를 타고 여기저기 구경을 하던 평범한 하루였을 뿐인데. 엄마는 이 하루가 참 감격스럽고 행복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나는 울컥했다. 그리고 정말 그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행복이, 아주 오래되었으면 하고 말이다. 이후로도 엄마는 우리에게 종종 이야기했다. 요즘이 엄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어느덧 자동차 보험은 두 번이나 갱신되었고, 차창 너머로 스쳐가는 풍경은 꽤나 익숙해졌다. 자동차 뒤에 붙어있던 도로주행 스티커는 떼어낸지 꽤 되었다. 더 이상 그때처럼 운전을 하면서 벅찬 감정을 느끼진 않는다. 하지만 종종 운전대를 잡을 때면, 그때의 엄마의 표정과 말은 떠오른다. 그럴 때면 엄마의 행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길 조용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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