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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혼식에서 울지 않았다

by 윤모음

밤새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에 뒤척이다가 이른 새벽,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화가 잘되는 죽을 한 숟가락 뜬 후에는 집 안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았는데, 매미는 이미 열심이었다. ‘진한 여름이구나.’ 문득 오늘이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될 거라고 느꼈다. 이 순간의 소리를 간직하고 싶어졌다. 핸드폰에서 음성녹음 어플을 켜 창가로 가져갔다. 잠시 고요하게 있다가 녹음 중단 버튼을 누르고 재생했는데 아무 소리도 담겨있질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한번 녹음 버튼을 누르다가 그만두었다. ‘그래, 지금 이대로를 간직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이 애틋함은 내 안에만 남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너무 소중해서, 결국 지나가야 하는 그런 것들이.


새벽 6시부터 시작되었던 신부 메이크업과 헤어 세팅을 끝냈다. 드레스를 갈아입고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결혼식장에 도착을 하니, 주차장에는 결혼식 스탭들이 마중나온 상태였다. 차에서 조심스럽게 내리는 순간,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요즘 어린 자녀 둘을 혼자 돌보고 있어서, 결혼식은 못 올 거 같다며 미안해하던 친구였다. 친구는 결혼식 시작하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러 왔다며 달려와 내 손을 잡았다. 식은 못 보고 갈 것 같다는 친구가 고맙고 아쉬워서, 나는 그 손을 오래 쓰다듬었다. 곧이어 마주친 사진 작가님은 우리를 향해 쉴 새 없이 셔터 버튼을 눌렀다. 어찌나 현실감이 없는 순간이던지.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사람들을 맞이하고, 웃고 또 웃다 보니 결혼식은 어느덧 끝나 있었다.


나는 다짐했었다.

-절대 울지 말자.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행복한 신부가 될 거야.

어린 시절부터 나만 보면 눈물을 터뜨리는 친척들이 많았다. 아빠랑 똑 닮은 딸이 짠하고, 마음이 쓰여서 자꾸만 눈물이 난다고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 앞에서 울지 않았다. 나는 그저 엄마와 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으로, 우리 가족의 자랑이자 기쁨이고만 싶었다.


결혼식장에서도 몇 번의 눈물 대폭발 위기가 있긴 했지만, 울지 않고 잘 넘어 갔다. 눈물이 나려고 할 때마다 나는 그냥 더 크게 웃어 버렸다. 엄마와 입장을 앞두고 대기하던 그 짧은 찰나,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말없이 내 손만 꼭 잡고 있을 뿐이었다. 주름 깊어진 얼굴, 앙상한 손가락 뼈마디는 갑자기 나를 울컥하게 했다. 우리가 살아온 그 지난한 시간들이, 엄마와 손을 잡았던 많은 시간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그래서 나는 또 웃어 버렸다. 얼굴이 굳어있는 엄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밝게 웃으며 외쳤다. “화이팅! 엄마! 우리 할 수 있어!”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웃었다. 가족들과 함께 식장을 나와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도 나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안아주고, 손을 흔들며 즐겁게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이것저것 정리를 끝내고 나니, 문득 잊고 있던 언니의 선물이 생각났다. 헤어지기 직전에 언니가 별건 아니라며 작은 록시땅 종이 쇼핑백을 건넸었다. 쇼핑백을 열어보니, 두 개의 편지봉투가 보였다. 나와 남편 이름이 각각 적힌 봉투였다. 처음엔 축의금을 따로 전달해 준 건가 싶었다. 내 이름이 적힌 편지 봉투를 꺼내 스티커를 떼고 안을 열어보니 두 장의 편지지가 눈에 들어왔다. 언니에게 편지를 받는 것은, 중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를 읽어 나갔다. 그리고 정말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눈물이 터져버렸다. 참으려고 해도 자꾸만 엉엉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그날, 나는 밤새 몇 번이나 일어나서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사실 나도 결혼식이 끝난 후 읽어보라며 엄마와 언니에게 편지를 전해준 상태였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엄마와 언니는 나만은 그늘 없이 자라길 바랬다. 둘은 고생을 하더라도 정말, 나만큼은 행복하게 자라길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나의 행복은 늘 그들의 배려로 만들어졌었다. 내가 지금처럼 누군가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본인들의 것은 매번 양보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애써주던 그들이 있어서 때문이었다. 나는 그게 늘 미안하고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책감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그 점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와 고마움의 편지를 써서 엄마와 언니에게 건네준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가 받은 언니의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있었다. “내 동생, 항상 고마웠어. 너는 정말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었어.” 나는 늘 받기만 했다고 생각해서 미안했는데, 언니는 오히려 나 때문에 잘 살아갈 수 있었다고 편지에 썼다. 그조차도 또 나를 위하는 마음이라는 걸 알아서,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안다. 다정한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은 끝내 많은 눈물을 흘리는 일이라는 것을. 내게 다정한 언니가 있다는 것은, 정말로 나를 더 자주 많이 울리는 일이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이후, 처음 마주한 엄마와 언니와는 편지 이야기는 서로 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웃고 떠들고 즐거운 수다를 떨었다. 나는 여전히 애교를 부리고, 장난을 치고, 밝게 웃었다. 스쳐 지나가며 언니가 말했다. 엄마와 언니는 결혼식 후 집에 돌아와 잠을 설쳤다고. 그 말속에 숨은 눈물을 짐작할 수 있었다. 둘 또한 그날 밤 얼마나 많이 울었을 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늘 말했다. “저는 결혼 할 때 안 울 거예요” 요즘 사람들이 진짜 안 울었냐고 물으면, 나는 웃으며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은 아니다. 그날 밤, 나는 몹시 많이 울었다. 소중한 것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처럼, 마치 오래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나는 아주 많이 울었다.


정말로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너무 소중하지만, 끝내 지나가야 하는 그런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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