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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작은 존재가 나를 채운다

by 윤모음

서로 말없이 오랜 시간 동안 눈을 바라보는 노부부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화면 속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있었다. 처음엔 조금 쑥스러운 듯 웃음을 참으려 했고, 그 후엔 입술을 다물고 서로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영상의 끝엔 두 사람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분명 그들은 평소에도 수없이 눈을 마주쳤을 것이다. 식탁에서, 거실에서, 혹은 함께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도. 그런데 왜 눈물이 났을까. 오래도록 눈을 마주치는 것은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걸까. 나는 그 감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내가 가장 오래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존재를 큰 소리로 불렀다.


- 사또야!

이내 부드러운 발소리와 함께 우리 집 첫째 고양이, 사또가 다가왔다. 나는 사또를 안아 들었다. 사또의 파란색 우주 같은 눈동자 안에 내가 비췄다. 천천히 눈을 깜빡이자, 사또가 함께 눈을 깜빡였다. 서로 신호를 주고받은 느낌이었다. 다시 한번 뚫어져라 바라보니 사또가 버둥거리며 바짝 붙어 포옹해 주 듯 나를 껴안았다. 그 모습이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웃음이 풉 하고 새어 나왔다.

눈물도 많고 우울도 많은 나는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쉴 새 없이 흔들린다. 그래서 내게는 일상 중에 소소하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작은 틈을 메우는 그 웃음이 삶의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사또와 바바를 키우면서부터는 꽤 자주, 매일의 할당된 웃음 분량을 채우는 중이다. 그녀들이 특별히 무언가를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부드럽고 땡그란 몸매만 보고 있어도 자꾸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쩌면 내가 너무 깊은 우울에 빠지지 않도록 사또와 바바가 내게 온 건가 싶다. 그녀들은 분명 내가 다시 웃고, 무언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기쁨을 느끼게 하기 위해 온 존재일 거다.


고양이 집사 생활도 어느새 13년이 되었다. 처음엔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헤맸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또가 "냐하아~"라고 길게 말하면 토닥토닥 안아 주게 되고, 바바가 "냐아앍!"하고 말하면 간식을 꺼내 들게 된다. 울음의 높낮이, 꼬리의 움직임만 봐도 이제는 대충 무슨 감정인지 안다. 내가 이름을 부르면 쏜살같이 달려오는 사또와 “간식 먹자”는 말에 군침을 흘리며 내 발뒤꿈치를 밟으며 뒤따라다니는 바바는 또 어떤가. 이런 게 다 서로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이건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애정과 관심이 만든 소통방식이다.


언젠가 공원에서 한 남자가 반려견에게 "자꾸 말썽 부리면, 확 갖다 버린다"라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왜 그렇게 얘기하냐고 물었다.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뭐 어떠냐는 대답이 돌아왔었다. 그때 느꼈던 낯선 차가움이 잊히지 않는다. 그 시기 나는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센터 선생님은 이야기했었다. 청각 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에게, 반말을 툭툭 내뱉거나 막말을 하는 분이 꽤 있다고. 나는 상대방이 알 수 없다는 핑계로 나쁜 말을 던지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언어가 달라도, 언어를 몰라도, 마음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있으니까.


사또와 바바는 13살 노묘가 되었다. 예전보다 잠이 많아졌고, 좋아하던 장난감이나 간식에도 시큰둥하다. 아무 움직임 없이 가만히 누워있는 모습을 보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종종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 영상을 볼 때가 있는데,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사또바바를 찾는다. 사또가 총총 달려오면 안으려고 두 손을 뻗고 달려간다. 그러면 사또는 ‘저 집사가 또 저러네’ 하는 표정으로 귀찮다며 “으냐아앙” 소리를 내면서 도망간다. 결국, 내 손에 붙들려 품에 안기면 1초 만에 고롱고롱 소리를 내며 얼굴을 비빌 거면서 말이다. 사또는 품에 안기기만 하면 자동 골골송을 부르는 사랑꾼 고양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전혀 숨겨질 못한다. 그 깊고도 큰 마음이 고마워서, 눈물쟁이 집사는 또 눈물을 훔친다.


정말로 저 작은 존재들이 나를 한가득 채운다. 영혼에도 크기가 있다면, 아마도 사또와 바바의 영혼은 내 영혼을 모두 감싸 안을 만큼 아주 클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오늘도, 크고도 따뜻한 고양이의 품 안에서 하루치의 웃음과 사랑을 채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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