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게 결혼식을 해도 되려나?”
엄마는 조심스럽게 그렇게 물었다. 처음, 내가 엄마 손을 잡고 입장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였다. 엄마는 음식을 먹던 수저를 내려두고, 생각에 잠긴 듯했다. 표정엔 기쁨보단 걱정이 보였다. 사람들이 아빠가 안 계시는가 봐하고 바로 생각하진 않을까? 엄마는 그게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편히 생각하고 대답해 달라고 했다. 엄마는 쉽게 결정 내리지 못했다. 고민이 길어졌고, 몇 달이 되었다.
사실 나는 그런 시선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에 받아들인 현실이었고, 내 결혼식 혼주석에 아빠가 앉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내가 어릴 적에,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 엄마는 우리 집에서 아빠이자 엄마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엄마는 내게 ‘둘 중 하나’가 아닌, ‘모든’이었다. 그러니까 결혼식에서 내가 누군가와 손을 잡고 입장한다면, 그건 당연히 엄마여야 했다.
“너무 좋다. 엄마 인생에서 언제 딸이랑 결혼식에서 입장을 같이 해보겠어.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지.” 언니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응원해 주었다. 그 순간, 엄마와 입장을 하는 것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의미 있는 순간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준비로 바쁜 나날에도, 우리 모녀 셋이 모여 밥을 먹을 때면 나는 슬그머니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언니는 엄마의 옆구리를 찌르며 장난스럽게 “같이 입장해라, 입장해!”를 외쳐주곤 했다.
다행스럽게도, 남편과 시댁에서도 내 생각을 환영해 주셨다. 멋진 생각을 했다며 좋아해 주시기까지 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엄마도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는 듯했다. 그 틈을 포착해서 나는 엄마에게 애교 넘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나랑 입장할 꾸야?” 읽음 표시가 사라진 후 잠깐의 침묵, 그리고 답장이 도착했다. “우리 00 이가 원한다면 해야지~”
그렇게 나는, 나를 가장 따뜻한 사랑으로 키워주었던 존재와 결혼식에서 신부 입장을 하게 되었다. 결혼식 날, 엄마는 신부인 나만큼 분주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메이크업을 받으러 갔고, 찐 분홍의 한복을 챙겨 입었다. 결혼식장에 도착해서 엄마를 보자마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머리를 이쁘게 올리고, 화사하게 메이크업을 한 엄마도 나를 보고 웃었다. 정말이지, 엄마가 너무 고왔다.
마음 여린 나의 엄마는 결혼식 당일에 하객을 맞이하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터뜨렸다. 하지만, 신부 입장 때만큼은 아니었다. 울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입장을 앞두고 엄마와 손을 잡고 서있을 때, 말없이 내 손을 꼭 잡고 있던 엄마의 모습이 나를 울컥하게 했던 것이 기억난다. 나 또한 행복한 신부로서 행진 길을 걷기 위해 울음을 꾹 참았다. 그리고 그 어느 순간보다 활짝 웃으며 입장을 했다.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모든 하객의 시선은 우리를 향해 있었다. 우리 모녀를 향한 그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과 박수, 응원의 마음이 식장을 가득 채웠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정말 행복한 신부였고, 엄마는 정말 자랑스러운 ‘나의 엄마’였다. 그 짧은 순간이 애틋한 장면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새겨졌다.
결혼식이 끝나고, 사진작가님에게 사진을 받았다. 그중 한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 꽤 오래도록 바라봤던 것 같다. 환하게 웃는 엄마와 나, 그날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긴 사진이었다. 엄마에게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보냈다. 그때를 함께 추억하며 다시 한 번 크게 웃었다.
결혼을 앞두고, 엄마의 집 거실에서 신부 입장 연습을 했었다. 우리는 스텝이 꼬여서 뒤뚱거리기도 하고, 속도가 맞지 않아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내 어느 정도 걸음이 맞춰졌다. 엄마는 처음엔 신부 손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도 몰라서 어색해했지만, 마지막 연습 때는 내 손을 꼭 잡고 당당하게 걸었다. 문득 생각했었다. 내가 세상에서 처음 배운 걸음마의 순간에도, 그리고 이제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을 내딛는 걸음의 순간에도, 나는 항상 엄마의 손을 잡고 있구나라고.
결혼식은 새로운 가족의 시작이지만, 나에게는 오래된 사랑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수많은 응원과 축복 속에서도, 가장 크고도 따뜻했던 건 내 손을 잡고 옆에서 함께 걸어준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지금도 어디서나 나를 단단하게 잡아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