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조흐 Nov 05. 2019

내향과 외향 사이 그 어딘가

당신은 어떤 성향의 사람인가요?


과거에는 사람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고 생각했다.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 내향적인 사람은 어디서든 내향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은 어디서든 외향적인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굉장히 이분법적인 사고였다. 


지금의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라도 특정 상황에서는 외향적일 수 있고, 외향적인 사람이라도 특정 상황에서는 내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맥락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사람의 성향은 바뀔 수 있다.


위와 같은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은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은 뒤부터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평균'에 집착하며 살아왔다. 연봉이 얼마인지, 키가 몇 cm인지, 몸무게가 몇 kg인지, 성적이 몇 점인지 등을 평균을 통해서 점수를 매기고 비교해왔다. 



'평균'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산업화 시대가 시작되고 난 뒤부터다. 


평균의 개념이 나오면서부터 <본질주의 사고방식>이 일상화되기 시작했다. 본질주의 사고방식이란 어떤 사람이 게으른지 부지런한지, 내향적인지 외향적인지의 여부는 본질적으로 그 사람의 영혼 깊숙이 내재되어 있어서 어떤 상황에서든 변하지 않는다는 시각을 말한다. 


본질주의 사고방식으로 바라보면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내향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외향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많은 연구 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따라 다양한 성향을 드러낸다. 


초등학생 아이들을 예로 들어보자. 민솔이라는 아이는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누구랑도 친하게 지내는 사교적인 아이로 보이지만, 집에서는 그저 조용하게 책 읽기를 좋아하는 그런 아이다. 반대로 수현이라는 아이는 학교에서는 평소에 조용하고 말이 없는 아이로 보이지만, 가정에서는 부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장난도 많이 치며 활발하게 지내는 외향적인 아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다 보면 첫인상과는 180도 다른 사람을 만날 때도 있다. 소수의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낯선 사람과 있을 때는 매우 조용하고 말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깊은 관계를 맺는 사람 앞에서는 말이 많아지고 외향적인 사람으로도 보일 수 있다. 


이처럼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맥락에 따라 자신의 성향은 바뀌기 마련이다.



과거의 나는 스스로를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모든 상황에서 내향적일 줄 알았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내 모습은 달라진다. 낯선 환경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의 나는 호기심이 넘치고 도전적인 사람이 된다. 무엇인가 즉각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주어지면 그것을 해결해내기 위해 외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액티비티와 같은 새로운 경험과 환경에 놓이는 것을 즐긴다.


평균적인 내향과 외향은 있을 수 있지만 무조건적인 내향과 외향은 존재하지 않는다. 순도 100%의 외향적인 사람일지라도 어떠한 순간에서는 내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부모님 앞에 서라던가, 범접하지 못할 포스의 상사 앞에 서라던가.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성향이던지 간에. 스스로가 어떤 상황과 맥락에서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잘 파악한다면 지금보다 더 자신감 넘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중요한 업체와의 미팅이 있다면 스스로의 강점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공간과 상황을 만들어 의도적으로 미팅 성사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자신이 1:1 미팅에 최적화된 사람이라면 다수와의 미팅을 잡기보다는 1:1 미팅을 잡음으로써 최적의 효율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 가장 나다움을 느끼는가?
어떤 상황에서 내향적이고, 어떤 상황에서 외향적인가?


이러한 질문을 계속 되뇌어본다면 어떠한 상황과 맥락에서 자신의 강점을 잘 발휘할 수 있는지 알게 될 테고, 결과적으로 인생에서 더 좋은 선택을 내릴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거기에 따라오는 행복은 덤으로 말이다.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이 하나의 '우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한편으로는 "나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라는 존재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알다가도 모를 우주 같은 나지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인생에서 가장 큰 재미를 주는 것이 아닐까? 내면의 '나'에게 더 친해지자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이전 04화 당신은 착한 사람입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