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버스 밀도
20개가 넘는 정류장의 이름이 하나같이 생소해서 얼마나 왔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멀미가 너무 심해서 중간에 내려야 할지를 몇 번 고민했다.
오전 10시가 되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시간을 보니 방금 수업을 시작한 커피 학원일 것 같았다. 내 예상이 맞았다. 학원 선생님은 첫날부터 지각을 하는 사람이 도대체 누굴까? 하는 마음에 연락을 한 것 같았다. 상황을 보아하니 나 빼고 모두 자리에 모인 듯했다. 어디냐고 묻는 대답에 나는 ‘10분 지각하겠습니다’라며 우스꽝스러운 답을 했다. ‘죄송하지만 좀 늦을 것 같아요’, ‘지금 가는 중입니다’가 훨씬 자연스러운 표현인 걸 알지만 말이 그렇게 나오질 않았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지 오래된 티가 났다.
변명을 해보자면, 첫 수업부터 지각을 한 건 영종도의 열약한 버스 배차간격 때문이다. (유령도시라고 불리는) 영종도의 인구밀도엔 금방 적응했지만, 버스 밀도는 좀처럼 적응이 되질 않았다. 버스를 눈앞에서 하나 놓쳐버리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데 25분 후 도착이라는 알림이 떴다. 그러고도 스무 정거장을 거치고 십 분은 걸어야 학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면 아무리 빠르게 걷는다고 해도 지각이 확정된 상황이었다. 택시 앱으로 확인해보니 예상 주행시간은 10분. 잠시 고민했으나 택시는 애초에 옵션에 없었다. 당장 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앞으로 돈이 없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앞으로 돈이 없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들이는 시간에 비해 돈이 벌리지 않았던 것뿐이지 더 가난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당장 모은 돈도 없으면서 지금보다 나빠질 리 없지 하고 단순하게만 생각했다.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보다 잘 살고 있을 거란 믿음 같은 게 존재했다. 그 믿음은 꽤나 견고했기 때문에 은연중 미래의 나에게 지불의 부담을 차곡차곡 미뤄왔다. 그렇게 누적된 부담을 이제야 내가 뒤집어쓰고 있다. 차로 십 분이면 가는 거리를 한 시간을 들여 버스를 타고 간다. 택시를 타면 더 멀미가 심할 거란 생각으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기다렸지만, 마음속에서는 왜 아직도 운전도 제대로 못하는 어른으로 사는 건지 참담한 기분이었다.
내 또래들은 운전이 늦었다. 나는 이거야말로 우리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보는데,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연구결과는 많지만 90년대생의 운전 습득 시기를 관심 있게 연구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출장이나 외부 미팅을 갈 일이 있으면 항상 선배들이 운전대를 잡았다. 택시를 이용하는 날도 있긴 했지만, 회사차를 두고 택시를 타는 건 업무비로 처리할 때마다 눈치를 봐야 했다. 조수석의 문을 열고 닫으면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에게 ‘운전 잘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면허만 있어요’하고 대답했다. 그럼 나보다 열댓 살 많은 선배가 ‘요즘 애들은 운전 못해요.’라는 말로 그 윗 세대를 이해시켜주는 식이었다.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긴 대학생활을 마치고 이십 대 막바지에 취직을 한 내 또래들은 겨우 받은 월급으로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하고, 운전연수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사내 면허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주차장 입구를 빠져나오다가 휠을 긁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운전을 하지 못하는 것에 참담함을 느끼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그만둔 직장에서 나는 자동차를 마케팅하는 일을 맡았다. 차를 운전하지 않는 사람이 차를 파는 일은 법에 명시되지 않았을 뿐이지 내심 무면허 운전과 같은 범법행위라 느꼈다. 감정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마케팅이란 원래 내 것도 아닌 걸 가지고 남을 설득하는 진심 어린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큰 무리 없이 몇 년을 버티긴 했다. 그리고 회사를 나올 때까지 운전면허 학원의 노란 차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운전을 해보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이력서에는 자동차 마케팅 4년이라는 이력 한 줄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그 바로 뒤로 바리스타 2급 자격증 수료라는 쓸모 모를 이력이 추가될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