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 유토피아
지금보다 훨씬 단순하고 직선적인 정의감을 가졌던 중고등학생 시절, 신문을 보면 너무나도 답답했습니다.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게 불의가 정의로 둔갑을 하고, 말도 안 되는 발언을 하는 정치인이 인기가 있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정의감에 방구석에서 세상에 분노하고 혼자서 그들을 반박하곤 했었습니다.
중고등학생 필독서 중 하나인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그 책이 그리는 세계는 디스토피아 같지만 객관적으로 그려진 새계를 따져보면 너무나도 유토피아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분노하던 제가 대안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이 시점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사회가 불만만 늘어놓는 것보다는 내가 바라는 세상이 과연 정말 더 좋은 세상인지를 생각해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생각을 시작하고 나니 역시나 쉽지가 않았습니다. 어떤 방식을 생각해도 누군가는 불행할 것 같았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법은 없어 보였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오자 각종 기사의 댓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각자의 분통만을 터트리기도,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는 댓글들을 보면 딱 봐도 전혀 말도 안 되는 내용부터, 나름 많이 생각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제가 중고등학생 시절 혼자서 세상에 분노하며 생각했던 것처럼, 그것을 댓글로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만약 제가 어린 시절에 인터넷이 발달되었었다면 비슷하게 행동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제가 혼자서 분노하며 머릿속으로 댓글을 달 때와 환경이 달라진 것은 문제를 발생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모여 여기저기 실질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하였죠. 그리고 발 빠른 사람들은 그 영향력을 이용기 시작하였으며, 점점 조작도 난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사회 운영에 반영되는 것은 긍정적이라 생각하지만, 수많은 이해 관계자들에 의해 이용당하며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게 과연 과거보다 더 나아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성인이 되고 회사를 다니며 정신없는 생활을 하다가 문득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유토피아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멈추어놓은 생각을 말이죠. 사실상 모두에게 좋은 세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각자 너무나도 다른 세계관 속에 살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 좋은 일이 어떤 사람한테 불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정 사안에 대해 의견을 조사해 보면 통계에 나오는 표준분포곡선과 비슷한 구조가 나오는 것만 봐도 사람의 의견은 너무나도 다양합니다. 뿐만 아니라 설사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온다고 해도 과연 이상적인 사회인가를 물어도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이루어진 사회에서 인간은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치열한 성취욕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없다면 무기력해질 것입니다.
결국 저는 과정에 초첨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상당히 결과주의인 듯싶지만, 실제로는 그 결과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 큰 의미를 둡니다. 큰 일을 쉽게 이루면 그만큼 만족도가 낮아지고, 어렵게 고생하여 이룬 성과에 대해서는 극도의 희열을 느끼며, 두고두고 그 고생스러웠던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최고의 세상을 만들 수는 없지만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추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백 프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가장 유토피아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가장 핵심은, 너무나도 진부하지만, 바로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자유야말로 가장 크게 오해받고 있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는 그냥 내 맘대로 행동하고 지껄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나보다 강한 자에게도 당당하게 자신의 논리를 펼 수 있고, 그에 따른 불이익이 없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 행사하는 자유는 그냥 폭력입니다.
사람들이 익명으로 여러 소리를 쏟아내지만 실명으로는 말 못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보입니다. 하나는 강한 자에 의한 불이익이 두렵고, 다른 하나는 단순한 부끄러운 배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첫 번째 이유가 사라져야 자유로운 세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두 번째 이유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줍니다. 서로 익명으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사회는 약자를 더욱더 약해지게, 강자를 더욱더 강해지는 구조가 확립될 것이며, 약자들은 알게 모르게 자유를 조금씩 뺏기게 될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 아테네에 소수의 사람들만이 참여할 수 있었던 토론 문화를 전체로 확장시키고, 모두가 참여하는 사회를 그려보았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플랫폼을 만드는 것은 쉬워졌기에 인프라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술적 인프라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기존의 체계를 옹호하는 쪽은 자신들의 논리로 지속적인 방어를 해야 하며, 들어오는 반론에 성실하게 응답을 하여야 합니다. 과학에서 행해지는 방식과 비슷하게 말입니다. 기존의 체계를 반박하려는 사람들은 기존 체계의 논리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토론에 임해야 합니다. 토론이 감정싸움, 이슈 몰이로 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서로 실명으로 토론을 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익명의 배설을 하는 게시판은 배설의 창구로 놔두되 토론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처럼 썼지만 사실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자면 많은 체계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슈 몰이로 가지 않게 규제하는 방법, 토론 참여 자격 부여 방법 등 많은 구체적인 제도를 만들지 않으면 이루어지기 어려운 생각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노예의 삶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만드는 방법을 한번 제시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모두의 세상은 모두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삶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치열하게 합리적으로 논의하여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웃는 남자의 '모두의 세상'을 BGM으로 넣고 싶었지만 기술적 한계와 저작권 문제로 넣지 못함이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