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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Oct 27. 2024

꿈이 없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일지도 몰라


결혼

 아버지는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입장해 그날 하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여자가 되었다. 가족들만 초대한 작은 결혼식이었다. 그는 오지 않았다. 어머니를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아니 어머니와 자신을 묶어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과 그들의 사유가 싫다고 했다. 그는 나처럼 이기적이었다.


 언제나처럼 애써 그를 이해했다. 자식이기는 부모없다는데 그는 나를 평생 이긴다. 예식을 마친 후 제일 먼저 전화를 걸어 ‘잘 마쳤고 좋은 시간이었다’고 밝은 목소리로 전했다. 최소한 그가 미안하다 사랑한다 같은 말로 축복해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시무룩한 목소리로 되려 상처받은 티를 냈다. 아니 그러면 오던가.


 나의 예식 사흘후, 그는 어머니와의 서류상 이혼을 준비해야겠다고 내게 통보했다.



이혼

 합리적인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다. 어차피 아버지는 집을 나간지 20년이 지났고, 그의 성격상 누구도 어머니 곁으로 돌아갈거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노후연금이네 주택 연금이네. 효율성과 합리성을 따진 많은 이유들이 이혼 도장을 찍는 게 맞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했지만 결혼 사흘 후 내 손으로 부모의 이혼을 조율하게 되는 상황은 유쾌하지 않았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결코 그를 용서할 수 없음을, 이제 서류상의 이혼이 마무리되면 어머니의 남편이 아님과 동시에 나의 아버지조차 아니라는 것을, 나는 보란듯이 그에게 선언하고 싶음을 깨달았다.


 '그것이 내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다.'


 갑자기 시작된 출처를 알 수 없는 복수심은 그가 나의 결혼식에 오지 않아서인지, 더 거슬러 올라가 그가 어머니를 버려서인지 이제 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설명해보려고 정리해보려고 노력 했지만 그럴 수록 분노만 벌크업됐다. 용기없고 비겁한 나는 수동적인 공격이라도 좋으니 그에게 상처 주고 싶었다. 평생 당신 편으로 살았으니 이제 남은 생은 철저하게 어머니 편으로 살겠다고 아무도 모르는 유치한 맹세를 가다듬으며. 나는 아버지와의 연락을 끊었다.




붕괴

 작업실을 떠나 평범한 신혼집으로 이사를 했다.

 음악을 만들지 못하게 된 지 2년차였다.


 나는 엄청난 죄책감과 우울에 휩싸였다. 속은 시원하지 않았다. 폐허였다. 나의 인생에서 행복이 다 끝나버린 것 같은 극단적인 기분이 매일 들었다. 그리고 어느날 피아노 앞에 앉아 'shortcut'을 썼다.


 곡을 쓰면서도 나는 나의 속내를 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 솔직하게 나의 마음을 곡에 담았다. 아버지의 우주는 곧 아버지의 꿈이었고, 지금까지 '내 꿈‘이라 여겨온 것이 온전한 나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서글픈 진실을 인정해나갔다.


 40년이라는 역사를 가진 작은 우주 하나를 조용히 파괴하는 노래를 불렀다. 붕괴하는 우주 속에서 나는 음악과 이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노래가 끝나면 우린 헤어지겠지.


 하지만 그것은 한 우주의 종말과 또 다른 우주의 시작을 알리는 멜로디였다. 곱게 써내려가는 잔인한 공허함과 그 속에 뒤섞인 시니컬한 희망의 늬앙스. 나는 이제 마음껏 미워하기로 마음 먹었다.







shortcut


  

I wake up in chaos, just lay down and blink,  

혼돈 속에서 깨어나 누운채로 눈만 깜박이네


I'm sick of it, tired of singing a song that no one listens to.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이제 지쳐  

  

Why am I doing this?  

난 이걸 왜 하고있는거지?


Why should I be doing this?   

왜 이걸 해야만 하는거지?


Why am I fxxkin’ singing this song?

왜 이 빌어먹을 노래를 부르고 있는거지?  

  

Maybe not having a dream is a shortcut to happiness.

어쩌면 꿈이 없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일지도 몰라


There is no despair if I don't have hope.

희망이 없으면 절망도 없으니까


Maybe not having a dream is the answer to happiness.

어쩌면 꿈이 없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답일지도 몰라.


But I don't know why I force myself on.  

근데 왜 억지로 이러고 있는건지 모르겠어.


Better not to expect anything.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게 나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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