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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달 May 31. 2024

그림자 아이 (09화)

나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 게 너무 힘들어

강원도 산골에 위치한 작은 육군부대에서는 연병장  돌고 있는 군인이 있다. 겨울의 눈발이 내리치자 군인은 하얀 숨을 내쉬며 없이 뛰고 또 뛰었다.


그런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그림자는 군인이 지쳐서 잠시 무릎을 짚고 몸을 숙인 채 잠시 쉬어가는 에 다가가 말을 걸었다.


"녕 준수야. 난 네가 키우던 우유에게서 너의 소식을 들어본 적이 있어. 이 추운 날 너는 왜 이렇게 뛰고 있는 거야?"


"하... 하... 잠시만 나 숨좀 돌리고...... 어.. 나도 엄마에게서 너의 이야기를 들었어. 휴우... 거의 매일 엄마와 통화하거든. 얼마 전에 우유가 강아지별로 떠났다는 말을 듣고 바로 휴가를 신청했는데 거절당했어. 가족이나 친척등 사람의 장례식이 아니고 반려견의 장례식에는 휴가를 함부로 줄 수가 없대. 보내달라고 계속 이야기하다가 지금 이렇게 뛰게 되었어."


잠시 숨을 돌린 준수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사랑하는 가를 잃는 게 너무 힘들어. 사실 10년 전에 내가 따르던 친척형이 여행 도중에 사고를 당했거든. 우유도 그 형이 기르던 강아지였어. 사고 이후 내가 형 대신에 돌봐주고 있지. 우유도 형이랑 만나서 함께 하고 있을까? 나도 언젠가 볼 날이 오겠지? 혹시 가능하면 우리 형의 모습을 그림자로 보여줄 수 있어? 넌 가능할 거 같은데"


준수의 말을 듣고 있던 그림자는 멈춰버린 컴퓨터처럼 할 말을 잃어버렸다. 지금까지는 누구든 되어도 좋았고, 무엇이라 여겨져도 좋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림자가 할 수 없는 무언가의 벽을 만난 거 같이 느껴졌다.


"미안해. 나를 너의 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정말 미안해. 그렇게 믿지 말아 줘."


"알겠어. 흠... 그러면 너를 우유로 생각해도 될까? 하... 하... 우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그림자는 얼마 전에 만났던 강아지 우유의 모습으로 바꾸고 이야기했다.


"우유가 알려줬어. 무언가 가졌다가 잃으면 더 슬퍼지는 법이라고. 너도 지금 많이 슬프겠구나."


숙였던 몸을 일으키며 준수는 다시 연병장을 뛰기 시작했다. 그림자도 조용히 발을 맞추며 뛰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준수가 이야기했다.


"그래도 곧 있으면 일병 휴가를 갈 수 있을 거 같아. 하... 하아... 그때가지는 꿋꿋이 버텨내야지. ..  사랑하는 무언가를 잃었는데 보러 갈 수도 없다니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조금 힘들긴 하네. 후우... 후우..."


그때 연병장 구령대 위에 빳빳한 군복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전투모를 쓰고 어깨에는 녹색 견장을 찬 군인이 올라와 준수를 보며 큰 소리로 불렀다.


"이준수 이병!!! 중대장님 특별 지시로 이번주에 1박 2일로 휴가가 나왔다. 그만 뛰고 얼른 들어가서 씻고 개인정비 할 수 있도록..."


전투모를 쓴 군인의 말을 들은 준수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그림자에게 말했다.


"휴... 난 우리 중대장님이 휴가 보내주실 줄 알았어. 후우.. 후우... 다만 다른 사람과의 형평성을 위해서 나에게 연병장을 돌게 하셨다는 걸 알거든. 난 이만 들어가 봐야 할거 같아. 이제  집에 갈 수 있으니 우유의 장례식도 참여할 수 있을 거 같아. 얼른 집에도 연락해야겠다."


아까부터 고장 난 듯 멈춰버린 그림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준수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네가 보고 싶은 네 친척형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난 뭐든 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봐. 지금 가봐야 할 곳이 생겼어. 그럼 이만 가볼게. 우유 장례식 잘 치르길 바랄게."


[ 10화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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