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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달 May 24. 2024

그림자 아이 (08화)

인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글의 힘이야.

강원도의 어느 산골에는 마당이 잘 가꾸어진 전원주택이 있었다. 곳에서 가을의 햇살이 가장 잘 드는 2층 다락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작가가 다. 그런 작가를 그림자는 햇살을 따라 조용히 찾았다.


“안녕. 가을의 햇살을 맞아 너를 찾아왔어.  그림자야. 그런데 넌 뭘 그렇게 두드리고 있는 거야?”


작가는 그림자의 인사를 듣고는 세상 놀라는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림자는 당황하는 작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했다.


“왜 그렇게 놀라는 거야? 하긴 사람들은 항상 나를 자기가 보고 싶은 대상으로 보더라고. 넌 나를 뭐라고 생각해?”


당황하 작가는 자세를 고쳐 잡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썼다.


난 태어나서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 그런데 지금 들리는 게 소리가 맞지? 이거 너무 생소해서 뭐라고 할 말이 없어. 이건 상상도 못 해본일이야.


작가의 어깨너머 모니터에 글자를 보며 그림자는 이야기했다.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건 어떤 의미야? 네가 글을 쓰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거야?”


난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못 들었기 때문에 항상 글로써 세상과 소통해 왔어. 그런데 지금 내가 듣고 있는 게 맞는 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어서 너무 놀라워.


작가는 너무 감동해서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복사하는 그림자거든. 그래서  내 목소리는 그 사람에게만 들려. 나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네가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내가 너이기도 해서 일거야. 네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거지.”


나도 내 생각을 느끼지만 이렇게 소리로 들어본 적은 없어. 처음 경험해 본 경험이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분명 이게 소리라는 게 맞을 거 같아.


"소리라는 건 네가 쓰고 있는 글과는 많이 다른 거야?"


글쎄 난 직접 말할 수는 없지만 글로써 세상과 소통해. 글에는 힘이 있거든.


"글의 힘? 그게 뭐야?"


글로 옮겨진 글자를 읽으면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들거든. 인간은 상상하기 때문에 진화했고 상상하기 때문에 달에도 갈 수 있었지. 인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글의 힘이야.


'그럼 글로써 소통해 왔다는 건 엄청난 힘이 있는 거구나."


나에게 힘이 있다면 언제나 세상의 긍정적인 면을 찾는 힘이겠지. 난 언제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남들이 버리는 이야기를 소중히 다듬어 세상에 내놓기도 해. 그게 내가 가진 힘이라면 힘이야. 그런데 오늘 이 이야기를 책으로 써도 될까?


"그럼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줄게."


그림자는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주었고, 작가는 그림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흥미로운 듯 집중해서 빠져들었다. 한참을 그림자의 이야기를 듣던 작가가 그림자에게 글로써 이야기를 했다.


네가 처음 나에게 와서 그랬잖아? 사람들은 항상 자기가 보고 싶은 대상으로 너를 봤다고. 네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았어. 난 너를 나 자신의 상상으로 보는 거 같아. 그냥 지금 이 상황이 나에게는 그저 신비한 체험일 뿐이지. 글을 쓰면서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잠시 꿈꾸는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꿈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내가 너를 만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눴다는 게 중요한 일이니까.


"네가 나를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 대신 오늘 네가 꾼 이 꿈을 꼭 책으로 만들어줘. 그럼 이 책을 읽은 내 친구들이 모두 기뻐할 거야. 난 그거면 되거든. 난 아직도 친구들의 감정을 기억하고 있어."


내가 꿈에서 들은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현실에서 경험한 일이 된다는 말이구나. 그럼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이 사실이었구나.. 하하하... 글로 쓰니까 별로 안 웃긴 거 같지만 농담이었어.


작가의 농담을 이해하지 못한 그림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작가에게 물었다.


"가을의 햇살이 금씩 사라지고 있어. 혹시 내가 떠나기 전에 너의 이름을 알려줄 수 있을까?"


내 이름은 주연이야.
어?
왜 대답이 없어?

 

한참을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던 작가는 분명 햇살이 비치는 한낮에 림자와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은 깜깜한 밤이었고, 노트북도 꺼진 상태였다. 부랴부랴 방의 불을 켜고 주변을 살폈지만 그림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 09화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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