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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달 Jun 07. 2024

그림자 아이 (10화)

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준수와 만난 뒤로 그림자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 만게 되었다.


“나는 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지? 난 그냥 그림자인데 어떻게 말을 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마치 꿈을 꾸는 도중에 꿈속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각몽의 상태처럼, 그림자는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답을 찾기 위해서 그림자는 납골당 안에서 아내의 유골함을 보며 혼잣말을 하고 있는 남자를 찾았다.


“여보 나야. 수민이는 잠시 누나에게 맡기고 나만 왔어. 사실 수민이한테 당신이 죽었다고 설명해 줬는데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 같아. 어디 멀리 갔다고 이해한 건가 봐. 얼마 전부터는 오빠가 어딘가에 살아있어서 다시 찾아올 거라는 말을 하기 시작하더라고.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누나가 근처에 살아서 참 다행이야. 많은 의지가 되네. 누나말대로 잠시 수민이가 믿고 있는 대로 두려고. 참 리고 준수도 어느새 커서 군대에 갔어. 그 녀석 보면 우리 아들도 아무 사고 없이 컸다면 대학도가고 군대도 가고 했겠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남자는 유골함 앞에 놓인 사진을 보면서 잠시 깊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가 살아있었다면 당신도 살아있겠지? 당신 대신에 내가 수민이 머리도 땋아주고 있어. 처음에는 너무 어설펐는데 요즘은 제법 수민이한테 칭찬받고 있거든. 난 수민이가 양갈래머리를 할 때 가장 귀여운 거 같은데 녀석이 이제 컸다고 안 하려고 하더라고. 하하... 그래도 다행이지. 아직 나한테 머리를 맡겨주니. 더 욕심내면 안 되겠지? 당신이 수민이 임신한 몸으로 우리 **이 사고현장 쫓아다니면서 힘들어했었는데, 어느새 수민이도 10살이 되었네... 우리 아들이 떠나면서 수민이 남겨준 걸까? 아마 수민이가 없었다면 나도 그 험한 시간 못 견뎠을 거 같아. 수민이가 내 삶의 희망이.”


남자는 잠시 딸 생각에 자상한 미소를 었다.


“요즘은 어쩐 일인지 당신 아버지한테도 자주 연락이 와. 그렇게 주말마다 밑반찬이라면서 김치도 담가주시고, 나물도 무쳐주시고, 손녀가 보고 싶어 찾아오시는 거겠지. 장인어른이 새로운 도전을 하신다고 블로그도 시작하셨대. 요리해서 올리는 블로그인데 나한테 이것저것 물으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핸드폰도 바꿔드렸어. 사진 잘 찍으시라고. 그렇게 좋아하시더라. 블로그 이름이 [길석이네 음식이야기]야. 이거 수민이가 직접 지어준 거야. 장인어른이 다시 활기를 찾으신 거 같아. 나도 가끔 장인어른 블로그에 들서 글들을 봐. 그리고 당신 동생도 맨날 죽상을 하고 다니더니 요즘은 무슨 고양이를 키운다고 매일 SNS에 고양이 사진으로 도배를 해놨어. 고양이 이름이 준코인데 요즘 수민이 최대 관심사야. 준코 때문에 수민이가 주말마다 처남 집에서 아주 살다시피 한다니까. 처남도 당신 떠나고 많이 힘들어했는데 가족이 생긴 거 같아서 다행이지.”


남자는 잠시 눈에 눈물이 고였지만 애써 괜찮은 척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아 그리고 ** 고등학교 담임이었던 수희선생님도 결혼하셔서 이번에 임신도 하셨나 봐. 사고 때 본인 탓이라고 그렇게 우셨는데... 사실 당신 장례식장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밖에서 울고 계신 거 내가 모시고 들어왔었거든. 우리 아들이 그렇게 된 게 선생님 잘못 아니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많이 힘들어하셨었잖아. 다행히 아가 생기고 다시 희망이 생기셨나 봐. 누구보다 아이들을 좋아하시는 분이시니 본인 자식도 잘 키우시겠지? 아 그리고 우리 **이 같은 반 친구였던 도 얼마 전에 연락이 왔어. 아직도 트라우마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는 거 같은데 다시 치료받으면서 힘내고 있다네. 나도 수의 목소리 들으니 꼭 우리 아들 보는 거 같아서 반갑고 그러더라. 당신이 그렇게 수를 좋아했었잖아.”


남자는 지금까지 참았던 눈물을 끝까지 흘리지 않을 참이었다. 남은 딸을 위해서 더는 약해지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당신 그곳은 어때? 우리 **이랑 만났겠네. 그동안 어떻게 지냈대? 여기는 내가 우리 수민이 잘 키울 테니, 당신은 거기서 우리 **이 잘 보살펴줘. 각자 하나씩 맡아서 잘 보살피자. 둘 다 우리 소중한 자식들이니까. 근데 나는 십 년이 지났어도 이 아픔은 가시지가 않네. 오히려 더 깊어진 거 같아. 그래도 요즘은 우리 아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그런 때 있잖아. 그냥 어디선가 나를 지켜봐 주고 있을 거라는 느낌. 오늘은 진짜 우리 아들 보고 싶다.”


그림자는 묵묵히 남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림자에는 표정이 없었지만 그 어두운 그림자 속에 마치 감정이 있는 것처럼 흐느끼고 있었다. 그런 그림자는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아빠... 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이유를 찾고 싶어. 내가 이름을 잃어버린 진짜 이유를...



[ 11화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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