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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달 Oct 27. 2024

사신과 세이렌의 이야기 (21화)


사신이 말하는  별장


소희 씨와 별장에 도착하고 첫째 날 밤이 깊어간다. 밤이 되자 그녀는 점점 더 불안으로 파고드는 것처럼 보였다. 한시도 나와 떨어지기 싫은 듯 나를 붙잡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이미 그녀의 눈은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유령이라도 주한 것처럼 초점을 잃어갔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본 소희 씨는 오히려 한순간이나마 나에게 무거운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때 생각했다. 무엇인가 잘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고. 그냥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되었다.


“깊은 산이라서 그런지 별이 참 밝아요. 우리 별 보러 나갈래요?”

“어두운 밤에 나다니다가 위험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요.”

“적어도 함께이니까 괜찮아요. 내가 소희 씨를 어떻게든 지킬 거니까.”


내 말에 소희 씨는 소리 내어 웃어 보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 밖으로 이끌었다. 한참 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이 별장은 오히려 밤이 되어서야 더 밝아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낮에는 어두침침하던 곳곳에 밝은 달빛과 별빛이 내려앉아있었다. 우리는 마당에 있는 흔들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소희 씨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이야기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어요. 이 흔들의자는 내가 어렸을 때 참 좋아했었던 게 기억나요. 엄마랑 나란히 앉으면 엄마는 항상 조심히 그네를 흔들어주셨어요. 왜 존재조차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을까요? 어쩌면 내가 엄마의 존재도 잊고 싶었던 것이었을까요?”


나는 말대신에 발로 흔들의자를 조심조심 었다. 앞뒤로 살며시 움직이는 움직임에 나는 하늘을 날기도 하고 땅으로 스며들기도 했다. 아마 그것은 내 어깨에 기대어 울고 있는 소희 씨 때문이겠지. 나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말했다.


“이 별장에서 엄마가 죽은 게 아닌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나는 엄마가 자살한 본가에서 어떻게 버티며 살 수 있었을까요? 엄마방의 문 앞을 지날 때마다 아직도 내 심장은 멈추는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새엄마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새엄마요? 새엄마가 소희 씨를 아껴주셨나요?”

“내 생각이지만 새엄마는 나를 지키려고 아버지 곁에 남으셨던 거 같아요. 거에 친정아버지하청업체 사장이셨어요. 어떤 회유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와 결혼하기로 한 이후에 친정아버지는 화병으로 돌아가셨다고 알고 있어요. 그 이후로 하청업체도 도산한 걸로 알아요. 그 사건 이후로 새엄마가 집을 나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나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나에게 그렇게 말해준 적은 없지만 어른이 되어보니 알겠어요. 새엄마가 없었다면  다시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어른으로 자랐을 거예요.”

“언제 어머니랑 같이 식사할까요? 고맙다고 소리 내어  못하겠지만  대접하고 싶어요. 혹시 제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못 한다고 싫어하실까요?”

“새엄마랑 지훈 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이해해 주실 거예요. 지훈 씨만 괜찮면 인사시켜 줄게요.”


새엄마 이야기가 나오자 소희 씨는 드디어 그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되찾아갔다. 어쩌면 진짜로 소희 씨를 지켜준 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그런 어른이 있었다면 내가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을까? 할머니가 조금만 더 사셨으면 어땠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의사 선생님은 부검을 하자고 말씀하셨다. 분명 상태가 호전되어서 잠시 집으로 돌아가는 걸 허락하셨다고 하셨다. 퇴원할 때만 해도 많이 호전되셨었는데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신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나를 설득하셨다. 나는 차마 나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려웠다. 난 알고 있었다. 내가 할머니에게 말을 하면 할머니가 죽을 거라는 걸. 어차피 나로 인해 생기는 일들이니까. 그래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때문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나? 하지만 최근에 벌어진 일을 통해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우연이라기에는 벌써 몇 번째 벌어진 일인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소희 씨를 붙잡고 있다. 그녀는 나의 저주를 이기고 살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나만의 생각에 빠져들어갈 때쯤 이번에는 그녀가 나를 붙잡아주었다.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희 씨는 참 따뜻한 사람이다. 몸도 마음도 참 따듯한 사람이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더 깊숙이 파고들었고 어느새 그녀가 가진 온도에 적응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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