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다리를 건너며 1화

굿모닝 샌디에이고

by 무똥

※ 알림: 이 글은 허구이며, 등장인물과 사건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생각 속에 표류하며 보냈다. 졸업은 한 달 뒤로 다가왔지만 이후에 뭘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이 문제는 이제서야 표면으로 드러난 것뿐이지 입학 때부터 나는 진로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목표를 잃었다는 것, 아니 목적을 잃었다고 해야 할까?

어렸을 때는 외교관을 꿈꿨다. 엄마 쪽 친척이 외교관이셨는데 한동안 그 가족이 우리집 건너편 아파트에 살았다. 우리는 두세달에 한 번 정도 길을 건너 그 집에 방문하고는 했다. 거실로 들어서면 방 세개가 한 눈에 들어왔던 우리집에 비해서 그 집은 거실로 들어가도 모든 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집에는 세계 각국에서 사온 진귀한 기념품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것은 전화기 옆에 있던 자수정으로 만든 포도였다. 연보라색과 자색이 오묘하게 섞여 잘 익은 포도 같던 그 장식품은 반질하게 세공돼 전화기 옆에 놓여있었다. 나는 그걸 만지려고 두어번 손을 뻗었다가 이를 눈치챈 당이모가 짐짓 주의를 주는 눈빛을 쏘아 손을 다시 거뒀다. 우리가 삼촌이라고 부른 당숙은 당시에 아마 아직 학생이었던 것 같다. 한국어 발음이 살짝 어눌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언니에게 영어를 가르쳐주었다. 그 두 사람의 고급 과외가 부러웠으나 끼워달라고 하기에 나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알파벳이나 깨치기는커녕 한국말도 완벽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어렸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 엄마는 그 당숙이 프랑스의 한 에너지 기업에서 일하게 됐다며 기념으로 받아온 명함을 건넸다. “너희 어렸을 때 언니 영어 가르쳐주던 외교관 댁 삼촌 기억나지? 한국 들어왔대서 한 번 만났어. 이거 너 전해주라더라” 파란 글씨로 쓰여진 이름 Jim Hong. ‘성과 이름이 뒤바뀐 채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나도 거꾸로 이름을 소개하는 넓은 세상을 그려보게 되었다. 우연이 아니었던 거다. 내가 이후 불문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숙 때문이었다.

외교관의 꿈은 금방 휴짓조각이 되어버렸다. 신촌의 한 대학 캠퍼스 내에만 해도 멘사 회원이라는 친구, 특수목적고등학교를 나온 친구, 해외생활을 오래한 친구 등 다양한 수재가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땅만 보며 신입생 시절을 보냈다. 외교관을 포기한 후에는 기자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한 날은 학보사의 모집공고를 보고 찾아가 시험을 보기도 했는데 합격은 하였으나 결국 가입은 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문학적 글쓰기라는 걸 기사 작성 시험을 보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4년 반 후, 졸업을 앞두고도 아무런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천장에 붙었다 벽에 붙었다 하는 모기를 응시하고 있었다. 회사원이 되고 싶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회사원이 되는 것밖에는 남은 길이 없어 보였다. 적어도 국제무역에는 흥미가 있었고 한달 동안 공부해 국제무역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 자격증을 프랑스로 돌아가는 데에 쓸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정부해외인턴 공고를 뒤지던 내 눈에 한 인턴십 프로그램 공고가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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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