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다리를 건너며 2화

굿모닝 샌디에이고

by 무똥

※ 알림: 이 글은 허구이며, 등장인물과 사건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한미정부인턴프로그램’

‘인턴십 기간 동안 한국 정부 재정 일부 지원’

‘총 100명 모집’


모집공고를 훑으며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나는 이미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 중 한 명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뉴욕에서 인턴십을 했다. ‘패션 회사에서 일하며 연예인의 패션 브랜드 런칭 행사에도 초대받았다고 했었지…’. 친구는 결국 그 연예인이 누군지 모른다며 그냥 행사에 안 가버렸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미국 연예인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방 구석에 붙어 있던 브리트니 스피어스 브로마이드를 흘긋 쳐다보았다. 미국을 생각하면 미소가 번졌다. 불어를 전공하게 되면서 아메리칸 드림이 잠시 잊혀지는 듯 했으나 한미인턴십공고를 보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부모님이 나를 도와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지원해 보기로 했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나의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여름방학이었다. 나는 수업도 직업도 없었다. 멍하게 복숭아를 씹으니 단물에 이가 시렸다. 또 블로그에서 해외로 시집 간 새댁의 이야기 따위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씩 단전에서 뜨거운 게 끓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급하게 기업의 채용공고를 뒤지기도 했다. 그러나 내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없었다. 기업들도 나에게 흥미가 별로 없는 게 확실했다. 상반기 채용시즌 내내 내가 계속해서 보게 된 문장은 이랬다.

‘귀하는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이는 귀하의 역량이 부족함이 아니라 제한된 채용인원으로 인한 결과이오니 너무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귀하의 앞날에 건승을 빕니다.’


결국 이 인턴십은 나의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그 해 여름은 흐르는 땀 위로 더운 바람이 계속 불어와 땀이 마르지 않았다. 더위를 삭히려 산 아이스크림은 봉지를 뜯자마자 녹아내렸다. 손가락 사이가 금세 찐득해졌다.

미국으로 인턴십을 가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한달 전쯤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이다. 이제는 시간이라는 걸 어떻게 그리고 누구와 써야 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내가 대학교 2학년일 때 만났다. 남자친구는 나보다 몇살 더 연상이었는데 대학원을 다녔다. 우리는 사귀는 내내 캠퍼스 커플로 꼭 붙어다녔다. 남자친구는 나의 첫사랑이었고, 나는 남자친구의 첫사랑은 아니었다. 우리는 틈만 나면 통화를 했다. 거의 매일 만나는 건 기본이었다. 남자친구가 처음으로 날 집에 데려다 주던 날이 생각났다.


“여보세요?” 내가 전화를 받았다.

“응, 보고싶어서 전화했어.” 남자친구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뭐야 방금 나 집에 데려다 줬잖아.” 나는 괜히 웃음이 나 조금 퉁명스러운 척 말했다.

“벌써 보고싶어서. 나 집에 도착할 때까지 통화하자, 우리.”


3주년이 되기 2주 전이었다. 수업이 다 끝나고 저녁 6시쯤이었으나 아직 해가 밝았다. 남자친구는 그 시간까지 연락이 없었다.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 다시 꺼냈다, 반복하던 나는 한숨을 깊게 쉬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꾹꾹 애써 힘을 주어 문자를 보냈다.


“우리 그만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동안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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