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다가 말았다가, 부슬비가 내리고 호숫가의 풀들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래도 우산이 필요 없는 정도라, 우리는 비를 즐기며 풍경을 감상하기도 하고 일요일의 여유를 만끽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내가 '날씨가 폭풍전야 같다고' 말한 지 한 10분 뒤쯤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금방 그칠 정도의 소나기여서 벤치에서 비를 피했다.
그러다가, 얘기를 나누던 중, 소나기는 걷잡을 수 없이 우리의 머리 위로 퍼붓기 시작했다. 마치 누가 물을 내 머리 위에서 갖다 붓는 느낌이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하나둘씩 오두막 아래에 모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우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홀딱 비를 맞고 있던 우리를 보고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친절하게도 우산을 씌워주셨다. 우산 속에서도 한참이나 비를 맞아 내 레깅스는 홀딱 젖었고 앞에 있던 아주머니가 어떡하냐며 안타까워하셨다.
우산을 씌워주던 아저씨와 일행이 '빨리 그칠 비가 아니니 뛰어가라'라고 하셨다. 우리가 보기에도 그냥 그칠 비가 아니었다. 그래서 차가 있는 곳까지 냅다 뛰었다. 뛰다가 힘들어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일요일의 여유를 즐기려고 했는데 홀딱 젖은 생쥐가 된 것이 우스워서 계속 웃음이 났다.
그러다가,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조금씩, 조금씩, 강도가 약해지더니 갑자기 햇빛이 고개를 내밀었다.
정말 황당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미친 듯이 비가 오지 않았냐며 얘기하다가 또다시 웃음이 났다.
걷다가, 비를 홀딱 맞고, 우산을 얻어 쓰고, 다시 뛰다가 걷다가 따스한 햇볕에 몸을 말렸던 2시간.
나는 차를 타고 오면서, 비를 맞았던 것이 상쾌했다고 느껴졌다.
기분이 하나도 나쁘지 않았다.
그냥 비가 내리니깐 맞았고, 있는 비를 내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만약 비가 내릴 때, 불평불만으로 걸어왔다면 기분도 계속 나빴을 것이다.
받아들였기 때문에, 빗방울의 온도와 감촉을 즐겼다.
그리고 인생도 이와 같다고 느껴졌다.
살다 보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그것을 피하려고만 했을 때는 인생이 더없이 불행하게만 느껴졌다.
마음을 활짝 열고 비를 맞듯이 받아들이면, 금방 햇볕이 나오듯이 인생도 어느새 좋든 싫든,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예상치 못하게 다시 비는 내린다.
하지만 흐름에 몸을 맡기는 법을 익히면 햇빛도 소나기도 모두 내 인생의 일부로 느껴진다. 하루 종일 땡볕이 내려쬐는 인생도, 비만 오는 인생도 없다. 실제로는 왔다, 갔다가 하는 것인데 느끼는 사람의 입장에서 '내 인생에는 소나기만 내렸다'라고 확대 해석하여 느낄 뿐이다.
누구나 왔다 갔다 하는, 양면성이 있는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고 갑자기 누군가의 도움을 얻고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인생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본다면, 울고 웃다가 결국에는 웃음이 나오는 연극일 것이다. 그것을 연극으로 느끼는 것은, 나의 마음가짐과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다.
그것을 느끼는 하루였다.
앞으로 다가올 인생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않고 살아나가면 된다는 교훈을 뜻하지 않게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