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내 모습이 어색할 때

얼굴에 드러난 마음

by 클로이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

운동을 하러 산책로에 가던 도중에 예전의 안 좋았던 일, 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올라와서 안 그래도 서툰 초보운전인데, 운전하다가 사고가 날 뻔도 했다. 열심히 걷는 도중에도 감정이 목 끝까지 차올라서 가슴이 답답했다. 가슴에 돌이 맺힌듯했다. '답답하다'는 단어가 신체적으로 생생히 느껴졌다.



걷다가 배가 고파서, 근처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샀다. 호숫가 바로 앞의 벤치에 앉아 눈앞의 풍경을 보니 너무 아름다웠다. 사진을 찍을까 싶어 카메라를 켰다가, 우연히 카메라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셀카를 좀 찍어볼까 하다가 도무지 웃지 않는, 아니, 웃는 법을 잊어버린 듯한 내 모습을 보았다.


내 얼굴은 무표정하고 눈은 슬펐다.


풍경은 아름답고, 주변은 소풍 나온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지만 나는 슬픈 표정의 나 자신과 함께 덩그러니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사람들하고 있지 않을 때는 표정이 거의 없는 편이다. 아이들 앞이나, 직장 동료들 앞에서 의식적으로 웃을 때 말고, 혼자 있을 때는 표정이 어둡다. 그래서인지,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나를 조용하고 차분하다고 생각한다.(어떨 때는 무섭고 카리스마 있다는 소리도 많이 듣는다.) 이목구비 자체는 둥글둥글하고 순한 편이지만, 웃음기가 적고 분위기가 아무래도 발랄한 것보다는, 말이 없고 무게가 있는 쪽이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내가 나 스스로 거울을 보거나, 남이 보는 내 모습을 직접 전해 듣거나, 둘 중 하나이다. 종종 어둡거나, 무섭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사실, '웃는 것에 어색하고, 표정이 없는 나'의 모습이 진짜 모습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활짝 웃을 때는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를 할 때뿐이고, 그것은 나의 사회적 페르소나일 뿐이다. 웃지 않는 내 모습에서 나의 슬픈 마음을 본다. 사람의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은 진실이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미묘한 얼굴 근육의 움직임과 표정들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배경처럼 깔려있는 감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웃는 가면'처럼 지나치게 웃는 사람들도 정말 슬퍼 보인다..)


나는 어쩌면 사람들이 환한 내 얼굴을 보고,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고는 믿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다들 놀라기는 하지만) 그래서 사람들과 있을 때는 더 환하게 웃다가, 혼자 있을 때는 원래의 나로 돌아온다고 느껴진다.


웃는 것이 어색한 이유는, 예전부터 웃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울음을 참고, 힘든 것을 버티려면 아무 표정을 짓지 않는 것이 편하다. 좋지 못한 환경에서 제정신으로 살기 위해서 감정을 점점 포기해가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내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다.


카메라 너머의 슬픈 눈을 들여다보며, 부모와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혐오, 그리고 깊은 슬픔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행복을 포기한 마음을 느꼈다. 아주 오래전부터, 행복은 내게 사치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동시에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죄책감도 느껴졌다.


언젠가는 진심으로 환하게 웃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 근심 없이 웃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아무 생각 없이 나섰던 오후의 산책이, 내 마음속의 깊은 감정을 끌어내었다.

요즘에는, 일부러 이런 작은 감정도 지나치지 않고 글로 쓰거나 계속 느끼려고 한다.


피하거나 무시하면 다시 올라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감정을 포기했었기 때문에,

수시로 찾아오는 감정을 허용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든 하는 중이다. 마음의 어둠을 누르고 덮고 피해왔던 과거와 비교하면 매우 달라진 '의식적인' 행동이다.


지금의 나는 '슬프고 잘 웃지 않고, 고독한' 나와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이것이 나 자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최대한의 배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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