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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벌 Sep 13. 2023

더 이상 낙엽은 그만, 나도 턴을 하고 싶어!

(1)

 26살, 입사 2년 차쯤 내 돈으로 처음 시즌권을 사서 고등학교 친구와 함께 2주에 한 번 정도 스키장에 갔다. 그때 친구에게는 개인 보드 장비가 있었다.


 보드 장비를 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나는 친구와 학동 샵에 가서 데크, 바인딩, 부츠를 구매했다. 보드 장비를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이 세 개를 따로 구매해야 한다는 것도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내 첫 장비라니…. 값은 꽤 나갔지만, 감격스럽고 뿌듯했다.


 친구는 턴을 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이제 낙엽타기는 그만하고 멋지게 턴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강습은 어디서 받아야 돼?”

 “헝그리보더라는 보드 커뮤니티 사이트가 있더라고. 거기 강습 게시판에 글 올려서 문의해 봐!”     

 나는 집에 가자마자 헝그리보더라는 사이트에 다음 시즌 강습 문의 글을 남겼다.


초중급 라이딩 1617 시즌 강습 문의합니다.  
완전 초보입니다. S자 턴을 시도해 봤지만 잘 안 되는 그런 상태구요. 기초부터 배우길 원하고 5회 시즌 강습 생각하고 있습니다.  ‘친절하신’ 강사분으로 추천 부탁드립니다^^

 

 왠지 보드 강사는 무서울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다. 스파르타 방식의 엄격한 강사는 나와 맞지 않을 것 같아 친절한 강사를 추천해 달라고 강조했더니, 정말 엄청 친절한 강사 분께서 연락을 주셨다.



(2)

 “안녕하세요. 스노우보드 강사 K라고 합니다. 강습 문의 글 남기셨던데 혹시 보드 장비는 있으신가요?”

 “네, 얼마 전에 구매했어요!”

 “첫 강습 일정은 언제쯤 괜찮으세요?”

 “11월 마지막 주 토요일 괜찮아요!”

 “그럼 토요일에 봬요. 장비 세팅은 그때 다시 한번 봐 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일사천리로 일정을 잡은 뒤, 약속 당일 보드 장비를 들고 셔틀을 타고 스키장에 도착해서 강사님을 처음 만났다. 내가 강조했던 ‘친절한’ 성향의 사람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강사님은 내 장비 상태를 점검해 주고 초급 슬로프로 날 데려갔다.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지켜본 뒤, 비기너턴*과 짧게 직활강하기, 스케이팅하는 방법 등을 알려줬다.


 ※ 비기너턴(Beginner Turn): 상체 로테이션만 이용하여 턴을 하는 것. 턴을 처음 배울 때는 비기너턴부터 연습한다.


 첫 강습을 마친 뒤, 강사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다음 강습부터는 최상급 슬로프 올라갈 거예요.”

  

 나는 귀를 의심했다.


 “네? 아니…. 이렇게 바로 간다구요?”

 “강습 다 받고 나면 최상급 슬로프 편하게 타실 수 있게 만들어 드릴게요. 급경사 정복!!”     


 친절한 분이지만… 강습은 스파르타구나…? 허허허….


 두 번째 강습부터 강사님은 진짜 나를 바로 최상급 슬로프로 데려갔고, 강습을 받는 동안 다시는 초급 슬로프를 밟을 수 없었다.



(3)

 두 번째 강습 날, 강사님은 곤돌라를 타러 가자며 날 데리고 최상급 슬로프에 갔다. 정상에 도착해 내려다본 스키장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경사가 너무 높아 절벽처럼 느껴졌다. 나는 꼭 여기서 타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냐고 계속 물었지만, 강사님은 ‘돈 주고 강습 받는데 급경사는 타 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바인딩을 묶고 처음엔 강사님을 붙잡고 낙엽타기로 조금씩 내려가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선생님, 경사가 너무 높아서 어지러워요.”

 “그럼 슬로프 구석에 잠깐 앉아서 여기 경치를 구경해 봅시다! 가만히 보다 보면 경사에 익숙해질 거예요.”     

 어지러움이 가시면 다시 앞뒤로 낙엽타기를 하며 내려갔고, 경사가 좀 낮은 곳에서는 너비스턴*을 연습했다.


 ※ 너비스턴(Novice Turn): 기본 비기너턴을 하면서 업 다운을 하는 것. 프레스를 주며 턴을 함으로써 안정적으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

    

  “턴을 할 때 가는 방향으로 시선과 어깨를 돌려 주면 골반이 따라와요. 급경사에서 턴을 할 때는 기울기에 비례하게 몸을 앞으로 던지면서 어깨는 평소보다 더 많이 돌려야 해요.”

  “다운도 좀 더 빨리, 확실히 해 줘야 속도를 제어할 수 있어요! 몸을 과감히 던져야 더 안전해요.”


 과감히 던져야 안전하다는 강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가파른 슬로프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면 경사에 맞게 내 몸을 기울이며 던져야 안정적으로 턴을 할 수 있었다. 어디서든 상황에 따른 적당한 균형이 제일 중요하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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