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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벌 Sep 13. 2023

즐거움과 스트레스의 정비례 법칙

(1)

 시즌방에 가끔씩 들어오면서 이런 생활에 좀 익숙해지다 보니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같이 보드도 타고, 저녁을 먹을 때 술도 같이 한잔씩 하게 되니 사람들하고도 친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술은 마법의 음료다. 캬.


 대부분 직장인이라 서로 비슷한 부분도 많았고, 주말마다 생활 패턴이 비슷하니 친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시즌방 생활 패턴: 금요일 저녁 도착 후 야간 보딩 → 저녁 먹고 취침 → 토요일 아침 보딩 → 점심 먹고 취침 → 토요일 야간 보딩 → 저녁 먹고 취침 → 일요일 아침 보딩 → 점심 먹고 집으로 출발


 보드에도 이제 막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을 때고, 사람들하고도 친해지기 시작하니 어찌나 즐겁던지. 살면서 겪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다만, 예민한 성향을 가진 나에게는 즐거움의 크기와 동일한 규모의 스트레스가 따라왔다. 아무래도 처음 해 본 단체 생활이라 눈치를 많이 봐서 그랬던 것 같다.


 같은 방을 쓰는 언니들(A와 B) 간의 기싸움도 한몫했다. 그들은 예전에 같이 시즌방을 했는데,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만 언뜻 전해 들었다. 그 언니들은 시즌방에 자주 오진 않아서 서로 부딪히지는 않았으나, 은근슬쩍 서로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나에게 하곤 했다. 나는 ‘아~ 그래요?’라고 말하며 들어주긴 했지만 상당히 피곤했다.


 그리고 그들의 잔소리도 끊이질 않았다. 보통 시즌방에서 밥을 먹을 땐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이 밥을 직접 해 주곤 했다.  밥을 얻어먹으니 내가 설거지를 하거나 치워야 할 것 같은데 아직 마음이 완전히 편하지는 않다 보니 쭈뼛쭈뼛하는 사이에 이미 다른 사람들이 치우고 있을 때가 많았다.


 어느 날, 시즌방에 자주 오지 않던 그 언니들 중 한 명(A)이 설거지를 하며 나에게 말했다.


 “보통 밥은 요리사들한테 얻어먹으니까 설거지는 요리 안 한 사람들이 돌아가며 했으면 좋겠어요. 친구 분한테도 전해 주세요.”


 그 말을 듣자마자 친구에게 전했는데, 사실 우리 둘 다 매우 당황했다. 그 언니(A)는 시즌방에 자주 오지도 않았을뿐더러, 마치 우리가 밥을 얻어먹고 가만히 있기만 하는 사람으로 취급당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주는 못했지만 설거지를 아예 안 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마음 편히 얻어먹기만 한건 아니었는데….


 다른 언니(B)는 방의 청소 상태에 민감했다. 보통 잘 때 자충매트를 깔고 자는데, 매트를 펼쳐 놓고 나가거나, 보드 용품을 정리하지 않는 걸 싫어해서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


 “야! 너네들 정리 안 하고 나갈래?”

 “앗, 죄송해요 언니. 다음부터 치우고 나갈게요!”


 나는 ‘난 역시 기 센 사람들하고는 안 맞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단체 생활에 꼭 필요한 잔소리였다는 생각도 든다. 덕분에 지금은 오히려 내가 시즌방 사람들 중에 나름 깔끔쟁이가 된 것 같기도 하니까.



(2)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영업왕’으로 불린다. 취미로 하는 운동이나 게임을 하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꼭 친한 사람들에게 권유하곤 한다. 시즌방을 하기 전에도 지인들을 데리고 스키장에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꼭 같이 다녔다.


 시즌방을 하고 나서는 친구들을 게스트로 많이 데려왔다. 심지어 게스트로 데려오다 시즌방 멤버로 만든 사람들도 있었다. 최근에는 오랜만에 내 동생을 데려가 보드를 태웠다. 스키장에 다녀온 뒤 동생이 보드를 잘 타고 싶다고 얘기하니, 일단은 성공이다. 아무래도 누군가를 꼬시는 데 재주가 있는 듯하다. 영업사원을 했어야 했나?


 다만 나는 영업력은 높은데 사람을 챙기는 그릇은 작았다. 보통 게스트로 오면 처음이라 어색해한다. 처음 놀러 온 거니 잘 챙겨 주고 싶은데, 나도 아직 시즌방 사람들의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게스트가 불편하진 않은지 신경은 쓰이는데 챙겨 줄 여유가 별로 없어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예민함이 극에 달했을 때는 놀러 와서까지 이런 스트레스를 감수해야 하나 싶기까지 했다.


 한편으로는 지인들이 한 군데 섞여 경계가 허물어지는 느낌도 들었다. 나라는 존재는 모든 지인들에게 똑같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친구에게는 이런 모습일 수도 있고, 시즌방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모습의 나일 수도 있다. 그런데 분리되어 있던 지인들이 한 공간에 모이니 그 경계가 허물어져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편하고 즐겁게 놀고 싶어서 지인들을 불러 모아 놓고,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시즌방에 처음 온 사람들은 어색하고 불편해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논리였다. 그렇지만 회사 동료 ‘꼬북’을 시즌방에 데려온 순간 알 수 있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걸.


 꼬북은 도착하자마자 자연스럽게 거실 매트에 누웠다. 조금 쉬고 나서 주방에 가더니 김치찌개를 끓이고 밥을 안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시즌방 멤버들이 야간 보드를 타고 하나둘 도착하니, 꼬북은 우리에게 저녁상을 차려 주고 술잔을 들었다.


 세상에나, 이런 손님이 있을 수가 있나? 마치 꼬북의 집에 우리가 초대받은 것 같았다. 회사에서 친하게 지냈던 동료라 외향적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시즌방에서 보니 유난히 더 신기했다. 적응력과 생존력의 끝판왕을 마주하며 생각했다.


 ‘난 언제부터 어색함, 불편함이 기본값인 사람이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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