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어렵다. 소설도 어렵다. 시나리오도 어렵다. 그런데 에세이는 쉽다.
어떤 사람은 시를 쓰면 썼지 에세이는 못쓰겠다고 했다. 시는 아리송한 말속에 자신을 감출 수 있지만 에세이는 그렇지 않단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야 하고, 내 생각이 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이 불편하다고 한다. 아, 그럴 수 있지. 그렇다면 나는 왜 시가 어렵고 에세이가 편할까? 일단 시는 무척 짧다. 하나하나 공들여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몇 마디 단어 속에 모두 응축해야 한다. 이육사의 시 [절정]에 나오는 ‘강철로 된 무지개’ 같은 말을 생각해 낼 재간이 나에겐 없다. 시는 말하자면 추상화와 같다. 비약과 상징이 살아 넘치는 인간세상을 초월한 무엇 같다. 나에게 시는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서 시 말고 에세이다. 또 내 성격도 이유가 될 것 같다. 나는 상대방이 그렇다면 그런 거구나 하고, 아니라면 아닌가 보다 한다. 진짜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겠지 상대방을 잘 믿는다. 그건 아마도 내가 그렇다거나 아니다거나 하는 걸 솔직하게 말하기 때문에 나를 기준으로 남을 생각하기 때문일 테다. 고등학교 때 자기 성적은 몇 점인지 안 알려주면서 내 점수만 묻는 친구에게도 나는 곧잘 내 점수를 말해줬다. 내가 말한다고 점수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 점수는 숫자일 뿐이지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니까. 또, 내가 하는 말도 상대방이 정확하게 내 의도를 이해하길 바란다. 그래서 글을 쓸 때도 이 말이 이렇게 들려?라고 제삼자에게 종종 묻는다.
소설도 어렵다. 에세이는 내가 겪었던 일을 나로선 최선을 다해서 솔직하게 쓰면 된다. 개인으로서 나란 사람이 어떤 시선을 가졌고 내 생각은 어떠한가를 나타내며 나 하나만 잘 간수하면 된다. 그런데 소설은 여러 명의 등장인물을 만들고, 그 인물 하나하나에 생명을 부여해야 한다. 한 소설가는 이제는 자기가 만든 등장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면서 자기에게 말을 걸고 그들 스스로 알아서 대사를 치고, 자기들이 하던 대로 스스럼없이 행동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사회적 배경도 만들어야 하고 등장인물이 속한 조직도 그려내야 한다. 사람은 다 다른 사람인데 작가 한 사람의 영혼에서 입만 벙긋하는 듯한 인상을 줘선 안 된다. 각자 완전히 다른 인격으로 다른 말투로 다른 행동으로 다른 시선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 더해서 시나리오는 어떠한가? 시나리오는 글을 쓰는 사람이 영상으로 만들어질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소설가는 마음대로 십만 대군이 말을 타고 진격했다고 쓸 수 있지만 시나리오 작가는 그럴 수 없다. 소설가는 주인공이 칼을 집어 들고 상대를 마구 찔렀다고 쓸 수 있지만, 시나리오 작가는 그 칼이 커터 칼인지 식칼인지 과도인지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또 글로 설명해서는 안 되고 모두 보여줘야 한다.
시, 소설, 시나리오가 어려워서 나는 에세이를 쓴다.
언젠가는 시인,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가 돼보고 싶기도 하다.
이렇게 썼다고 눈치 안 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