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감각 지도
“책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낸 질문들에 답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답하지 않았던 질문들을 생각했다. 나는 늘, 아무도 한 적이 없으니 내 질문들은 잘못된 질문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쩌면 다른 누구도 생각해 낸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무지의 심해에 처음으로 닿은 빛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질문들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_엘리자베스 문, 『어둠의 속도』 중에서
오랜 시간, 질문들에 대한 생각을 해왔다.
내가 가진 질문은, 아무도 답하지 않은 질문들이었다.
처음엔 그저 사소한 질문들, 제대로 하지 못한 질문들, 하다만 질문들, 소심하게 던진 질문들로 여겨졌다. 하지만, 어쩌면 누구도 닿지 않은 무지의 심연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몰랐던 나를 향한 탐험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연필을 집어 들고 내가 한 질문들을 써 내려갔다.
내가 집중하는 세계, 장소에 관한. 도시에 관한. 건축에 관한. 감각에 관한.
질문들의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완전히 처음인 생각은 없다는 걸 깨닫는다. 지나간 시간과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의 생각과 글, 예술작품, 가까이는 며칠 전 읽은 책의 어느 구절, 전시회에서 본 꼴라쥬까지. 머릿속에서 빙빙. 입 안에서 웅얼웅얼. 노트에 끄적. 손이 근질. 생각의 조각들이 모여 처음엔 모호한 덩어리인 채로 있다가 어느 순간 형체를 드러내고 디테일이 갖춰져 갈 즈음엔 처음인 생각이 된다.
어느새 습관처럼 질문하고, 기록하고, 글을 쓴다.
글이 내 안에서 조금씩 자라나 종이 위에서 하나의 풍경으로 드러났다.
물이 흐르는 길을 본다.
바람이 지나다니는 기척을 본다.
소리가 진동하는 파동을 본다.
빛이 통과하는 궤적을 본다.
본다는 것으로, 마침내 도착하게 되는 곳.
그곳이 탐험의 클라이맥스다.
필드 노트에 기록한 장소에 대한 생각들이 일상과 상상의 세계 속 관점을 통해 생각지 못했던 세계로의 확장이 일어났다. 이 작업은 하나의 실험과도 같았다. 처음부터 도착할 곳을 알지 못한 채 떠났던 시작. 마음이 이제야 홀가분하다. 관점을 달리하며 세상을 보는 이야기들이 구체적인 텍스트로 옮겨지며 스스로에게도 더 깊은 세계를 마주하게 된 느낌이다.
글 하나하나는 도시를 새롭게 바라보는 하나의 ‘감각 지도’였다.
소리, 냄새, 빛, 그림자, 어둠, 색, 시간, 계단, 문, 윤곽, 장소에 관한 지도.
그 위에 글이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도시 산책자의 감각이 풍요로워지며
퍼즐처럼 ‘감각 도시’가 완성되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읽는 이의 내면에만 존재하는 하나의 도시가 모습을 드러낸다.
책장을 덮기 전, 내 안에 완성된 도시에 잠시 머물러본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완성이라는 단어를 허물고, 다시 미완성으로 돌아가
또 다른 탐험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는지.
인터뷰어:
전부터 궁금했는데, 어쩌다 탐험을 시작했는지 이야기 좀 들려줄 수 있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세상을 봐도 재미있는 것 많잖아요. 진짜 궁금해서요.(웃음)
(맥주를 하나 꺼내 마시며 ‘그러게. 왜 이러고 있었던 거지?’ 자문하며 말을 멈추고 생각한다. ‘아, 그렇지. 그 너머에 뭔가 재미있는 게 있을 것 같은데 하며 피리소리에 홀리듯 계속 탐험하듯 산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이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려니 쉽지 않군.’ 목소리를 가다듬고 생각을 내뱉는다.)
나:
보이는 것 뒤에 숨겨진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얼마나 쉽게 가려지고 왜곡되는지, 귀에 들리는 것이 모두 다가 아니라는 것을, 시간 속에 묻힌 수많은 과거의 흔적들이 있다는 것을요.
그것들을 찾아 나서면 좋겠다 싶었죠.
그래요. '알기 위함'이 아닌 '깨닫기 위해', '느끼기 위해' 탐험을 했던 거예요. 앎은 자기만족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잖아요.
인터뷰어:
[상상의 도시, 걷는 지도], 어떤 연유에서 지은 제목인가요?
나:
추리소설의 트릭을 파악하거나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듯이, 도시와 건축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탐색하고 상상하며 그 안에 있는 본질을 끄집어내고 싶었어요. 열 네개의 감각 지도를 들고 일상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장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의 잠재력을 확장하려고 했어요.
인터뷰어:
그럼, 이제 무엇을, 어디를 탐험할 생각인가요?
나:
음...... 너무 익숙해서 생각하지 않는 곳,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 그리고 가끔은 잘 아는 곳이지만 그래서 잘 모르고 있는 그런 장소들을 찾아 계속 탐험하듯 일상을 살아갈 생각이에요.
인터뷰어:
그런가요?
그 끝이 어디든, 당신의 감각이 계속 살아 있기를.
그럼, 즐거운 탐험이기를.
(페이드 아웃)
나는 도시를 탐험하는 산책자를 위한 안내자.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감각을 자극하는 일상의 풍경을 찾아
하나의 지도를 그리는 사람.
나는 풍경을 읽는 스토리텔러,
시간의 흔적을 좇는 탐정,
도시와 장소의 기억을 수집하는
시간을 걷는 이방인, 시간여행자.
나는 세상 곳곳에 흩뿌려진 보물을 찾듯
패턴에 숨겨진 암호를 해독하고,
장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평범한 도심 산책자.
일상의 미묘한 순간을 관찰하고
손으로 표현하고 싶은 일상 예술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누구든 될 수 있으며
아무것도 아닌 무(無)로 돌아갈 수도 있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일상 탐험가.
글마다, 감각마다
달라지는 나의 얼굴, 나의 이름들.
하나의 감각이 여러 자아를 불러낸 이 여정 끝에,
열네 개의 서로 다른 감각지도를 이어 붙여
하나의 도시 감각 지도를 완성했다.
이제, 당신에게 건넨다.
이 도시 감각 지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