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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 Oct 23. 2020

광장, 다른 모습을 하다

중심을 탐험하다-1



Largo, Plaza, Piazza, Placa, Plazuela, Campo, Place, Placette, Square......


모두 광장을 표현하는 단어들이다.

그 다양함을 정확히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을 만큼 모든 광장은 다르다. 게다가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지 않은 모호한 장소들은 광장의 수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더 이상 무엇인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중요하지 않게 되고, 장소와 관련된 단어들은 모호함의 미궁 속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된 바에야 분류는 한 켠에 두고 펜과 종이와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 광장 하나하나를 둘러보는 것이 빠르겠다 태세 전환을 한다.


‘광장’이 갖고 있는 본질과 지향점은 어디에 있을까?

시대의 가치에 의해 전환점에 놓인 광장, 다양한 이벤트와 해프닝, 휴식을 담는 광장,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빈 여백의 ‘광장 같은’ 광장.

나는 이런 가능성들을 꿈꾸며 그 모든 의미와 행위로 가득 찬 세계 이곳저곳의 ‘광장’과 ‘광장 같은’ 장소들에 대한 탐험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으로는 조금 예외적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한 광장의 이야기를 먼저 들여다보며, 광장에 대한 고정관념을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이미지와 사유를 채워보려 한다.

Plaza Sta. Clara, Caceres, Spain _ BGM # Beautiful Days | Gontiti

#1. 광장, 스텝으로 이루어지다.

중세도시의 좁은 길을 걷다 보면 의외의 장면과 맞닥뜨릴 때가 종종 있다. 반전의 카드는 늘 상대적인 차이에서 오기 마련이다.

이곳은 스페인의 작은 도시 카사레스의 작은 광장이다. 야자나무 네 그루가 광장 전체를 압도하고 있는 이국적인 정서에 나는 시선을 빼앗긴다. 산타클라라 수도원의 심플한 벽을 따라 리듬을 맞추듯 경사를 따라 스텝으로 이루어진 광장의 풍경은 광장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다.

삼각형 광장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수도원의 벽은 광장의 이상적인 배경이 된다. 교통 섬처럼 도로에 의해 홀로 뚝 떨어져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 장소들을 우리는 많이 봐 오지 않았나. 적어도 한 면이라도 도로가 아닌 경우, 그곳은 광장으로서의 잠재력을 갖게 된다.

광장의 스텝은 몇 개의 클러스터를 이루며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도로와의 경계에 놓인 벤치는 광장 안에서의 사람들의 움직임과 휴식을 좀 더 자유롭게 해 준다.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작지만 주위를 압도하는 광장의 의외성에 마음이 촉촉해지는 듯하다.

이런 광장이라면 약속시간에 조금 늦더라도 괜찮을, 동네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어도 좋을, 길을 가다 잠시 머물다가도 좋을, 딱 그러기에 알맞다.

Via Roma, Ostuni, Italy _ BGM # Tenderly | Stacey Kent

#2. 광장, 블록과 하나가 되다

나는 이탈리아 오스투니의 리베르타(Liberta) 광장의 한 모퉁이에 있다.

길과 길이 예각으로 만나는 오르막 초입에서, 장소 전체에 걸쳐 느슨한 단으로 이루어진 계단광장이다.

광장은 음수대로부터 시작한다. 낮은 턱으로 경계를 두른 물의 영역이 사다리꼴 광장의 좁은 쪽을 차지하고, 그 뒤로 단순화된 큐브들로 이루어진 의자와 테이블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잠시 흰 큐브 위에 앉아 광장을 바라보며 숨을 고른다.

계단은 건물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성당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이어지고, 성당과 작은 건물 사이 틈새 골목으로 빠져나간다. 마치 이 광장과 성당, 틈새 골목 전체가 하나가 된 듯 조각난 하나하나가 끈끈하게 밀착되어 더 이상 보태거나 뺄 수 없는, 그러기에 무의미한 장소가 된다.

먼 과거 언젠가는 비어있었을 장소들이 지형에, 성당 안 깊숙한 곳까지, 좁은 골목 안쪽까지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스르르 스며든다. 그곳에 스며든 조화로움에 한참을 발길을 머문 채 광장 주변을 서성인다.


사람이 만든 광장에서 마치 장소 하나하나가
주체인 것처럼 그들 서로 간의 더할 나위 없는
하모니를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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