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중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인 <오만과 편견>은 영문학계와 로맨스 소설의 고전으로 불리는 명작이다. 정밀한 인물 묘사와 이야기 전개로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어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다. 줄거리는 잘 알다시피 상류계급의 오만하고 쌀쌀맞은 신사와 젠트리 집안의 진취적인 숙녀가 오만과 편견을 이겨내고 사랑에 골인한다는 내용이다.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줄거리와 다채로운 인물들도 좋았지만 이 소설의 정수는 '제목'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오만'은 남자 주인공인 다아씨를 상징하는 단어고, '편견'은 여자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베넷을 상징하는 말로 똑똑하고 자기주장이 강하지만 고집이 세다 보니 감정에 따라 편견을 가져 잘못 판단하기도 한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Pride and Prejudice) 지금의 제목과는 다르게 오스틴의 초기 습작 시절 지었던 제목은 '첫인상'이었다고 하니 개인적으로 제목을 변경한 것이 신의 한 수라고 생각된다.
나 역시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상대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적도 있고, 반대로 오만함으로 가득 찬 편견으로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 함부로 평가당한 기억도 있었다.
질병 휴직 이후 교육대학원 진학을 위해 퇴사하면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아졌다.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간 내가 가끔 즐기던 취미는 집 근처 좋아하는 극장에 가서 조조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날씨가 좋았던 어느 날 배낭 하나를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팝의 여왕 휘트니 휴스턴의 삶을 조명한 '휘트니'라는 영화로 그녀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재구성한 작품이었다.
휘트니 휴스턴은 영화 '보디가드'의 수록곡인 ' I Will Always Love You' 외에도 'Greatest Love Of All', 'I Have Nothing', 'Run To You', 머라이어캐리와 함께 부른 'When You Believe'까지 수없이 많은 히트곡을 남겼고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여자 가수이자, 가장 많이 팔린 여가수 앨범, 싱글을 모두 보유한 아티스트. 즉 압도적인 가창력을 지닌 가수가 얼마나 상업적으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휘트니의 데뷔 전에도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많았지만, 그녀가 거둔 상업적 성공만큼을 이룬 여자 가수는 없었던 것이다.
가끔 연예인과 관련된 도박, 마약, 자살 등의 소식을 접하게 되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부와 명성을 모두 가지고도 삶이 공허해서 혹은 그 나름의 고충이 있어서 더 깊은 타락과 유혹으로 빠져드는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휘트니 휴스턴 역시 수많은 히트곡과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수상 기록들을 세우며 최고의 디바로 군림했지만 코카인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다량의 약물 복용으로 인한 심장마비와 익사가 사망의 원인이 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그녀의 팬이었던 동시에 한 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평생 쓰고도 남을 돈과 명예, 지위, 권력이 있고 본인을 지지해 주는 전 세계의 팬들이 있었음에도 왜 '마약'이라는 최악의 선택지를 골랐을까'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나는 조금씩 그녀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휘트니 휴스턴은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친척 집을 전전하면서 겪었던 학대와 성적 착취, 성공한 이후에는 자신을 ATM 취급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했다. 무엇보다 당대 최고의 팝스타로 자리매김한 자신을 향한 남편 바비 브라운의 열등감과 질투 등으로 곤란을 겪어야만 했다. 그녀의 가족과 주변인들은 마약과 약물 복용으로 인해 그녀가 망가져가는 것을 보면서도 누구도 진심으로 충고하지 않았고 오히려 마약을 권하거나 함께 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망가진 이유는 음악적인 성취와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했기 때문이 아닌 어릴 적부터 오빠와 함께 했던 마약, 남편이 권한 마약이 주된 문제였던 것이다. 끝없는 추락이 이어졌고 나중에는 재활 치료를 위한 금전적인 어려움까지 이어졌다.
무대 위에서는 화려한 주인공이었지만 그녀의 삶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다. 현실 도피를 위한 마약이 유일한 탈출구였고 건강도 목소리도 재산도 다 잃고 나서야 재기를 위한 노력에 힘썼으나 결국에는 오랜 기간 그녀의 발목을 잡았던 약물이 원인이 되어 죽고 말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 삶이 지루하다는 이유로 마약까지 손을 댄 팔자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은연중에 있었는데, 역시 한 사람의 인생을 제대로 알기 전에 섣불리 판단하는 일은 경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힘든 삶의 해결책이 마약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왜 그녀가 약물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깊이 더 깊이 빠져들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반대로 내가 편견을 받았던 적도 있다. 반복되는 재발로 보다 공격적인 항암 치료를 하게 되면서 약의 용량을 증량했다. 미혼 여성들이 항암 전에 맞는 난소 보호 주사도 맞지 않았고 오로지 생명 연장과 재발 방지만을 위한 치료에 돌입한 것이다. 몸이 버티지 못했는지 약물 부작용으로 심한 하혈이 수개월 이어졌고, 치료는 중단되었다. 과호흡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하고 항암제와 항생제, 잠을 이룰 수 없어서 먹었던 수면제 등 여러 가지가 원인이 되어 암통합케어센터에서 정신건강과 관련된 상담을 받게 되었다. 총 두 번을 방문했고 문답지를 작성한 시간을 제외하면 의사와 대화했던 시간은 15분 남짓이었다. 일반 상담센터나 외래 의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밀려있는 환자가 많았고, 워낙 다양하고 많은 케이스를 보는 큰 병원이다 보니 나보다 증상이 심한 사람들도 많았다. 의사는 그동안의 내 진료 기록과 몇 가지 질문을 하고서는 뭐가 맘에 안 들었는지
"아니, 윤이나씨는 살아온 궤적을 보면 누가 봐도 힘든 삶인데, 왜 자꾸 그걸 부정하세요?"
라는 말을 던졌다. 아주 짜증스럽다는 말투로. 나는 기존에 이미 복용하고 있는 약이 많아 그녀가 권한 신경안정제를 원치 않는다고 이야기했고, "다음 주에 항암 주사를 맞게 되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선생님, 지금 몸도 마음도 너무너무 힘들어서 왜래 다시 치료를 시작하면 마음이 좀 안정되고 지금보단 나을 것 같기도 해요."
라고 솔직하게 대답한 게 전부였다. 의사는 누가 봐도 힘든 삶인데 왜 자꾸 이것저것 본인이 물었을 때 괜찮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식이었다.
나는 상담이 진행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녀에게 한 번도 "암에 걸려서 너무 행복하다"거나 "지금 내 삶이 너무 만족스럽다"거나 "힘들지 않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점은 힘들고 이런 점은 그래도 견딜만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그 당시 나는 항암 치료조차 중단된 몹시 힘든 상태였기 때문에 용기 내서 정신과를 찾은 것이고, 모든 걸 내려놓고 상담에 임했다. 절박한 환자가 의사 앞에서 무엇하러 거짓말을 하고 괜찮은 척, 쿨한 척하며 자존심을 세우겠는가.
"선생님, 암환자라고 매일 이불 뒤집어쓰고 울고 세상 불행하게 살지는 않아요."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녀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환자가 말했을 때 편견 없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런 오만방자한 말을 짜증스럽게 내뱉지는 않았겠지.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배려 없는 말에 상처받은 적은 더러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고 좋다는 병원에서 수천수만 명의 환자를 본다는 사람이 저런 마인드로 환자들을 대하면 정상인도 금세 정신 이상자를 만들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그녀와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암에 걸린 내 소식을 듣고
"저주받았다, 쟤는 죽을병이다."
라는 말도 들어보았다. 하지만 '암통합케어'를 한다는 그곳에 앉아있던 의사는 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게 느껴졌다. 이미 나를 불행하고 힘든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바라보는 의사와 자신의 생각에서 조금이라도 빗나가는 대답을 하면 화를 내며 다그치는 사람에게 굳이 나의 인생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부분은 힘들고 이런 부분은 좌절스럽지만 또 이런 점 때문에 세상은 살만하고, 더 살고 싶은 거라고. 항암 치료 하는 내내 혹은 암환자로 살아온 이십여 년의 시간이 동안 숨 쉬듯이 불행하고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니라고. 오히려 암을 겪었기 때문에 일상의 소소한 부분에 행복을 느끼고 감사함도 더 많이 느끼며 산다고. 분노할 힘도 없었고 그런 에너지조차 아까웠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아와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그곳을 찾지 않았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자신의 인생을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게 상처받았다면, 특히 그 자리가 이렇게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있는 권위자나 전문가라서 더 외면하기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 인생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부모, 형제, 배우자, 친구 그 누구도 나의 전부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주위 사람들은 그저 나의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자신의 잣대로 판단해 조언하는 것뿐이다. 모든 이의 이야기는 참고만 할 뿐 내 인생의 최종적인 결정은 내가 하고 주도권은 나 스스로 잡고 있어야 한다.
뭇사람들 말에 상처받고 의기소침해지지 말자.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 내 인생을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에 속상해하고 분노해 봤자 결국 스스로 좀먹게 된다.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가 있는 것처럼 누군가의 '오만과 편견이' 세상에 외롭게 서 있는 절박한 한 영혼을 집어삼킬 수도 있다. 설령 그런 상황이 와도 잠식당하면 안 되겠지만 아무렇게나 그 돌을 던지는 사람은 더더욱 되고 싶지 않다.
나 또한 누군가의 인생을 함부로 재단하고 판단하지는 않았었는지. 다른 이의 고통에 대해 쉽게 말하고 남의 불행으로 본인의 행복을 확인하지는 않았었는지 묻고 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