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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13 임신을 했다 I

입덧지옥과 모성애

by 미드스태리 Mar 07. 2025

 신혼 3주 컷. 이보다 애매한 게 없었다. 허니문베이비도 아닌 것이, 신혼기간이 있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 난감할 일은 아닌데 참으로 난감했다. 출근 준비 중에 우연히 발견한 임신테스트기의 선명한 두 줄. 놀라야 하는 것인지, 기뻐해야 하는 것인지, 당황스러워해야 하는 것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지만 침착히 행동했다. 그날 퇴근 후 바로 산부인과에 가서 혈액검사를 했고(아직 아기집이 보이지 않는 주수였기 때문에), 결과는 역시나 임신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2주 후 아기집이 생겨있을 테니 초음파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 더불어, 나는 이제 엄연한 산모이니 임신 초기 몸관리에 특별히 신경 쓰라고도 하셨다. 산모..? 내가 산모라니..! 

 임신이 싫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원래 어려서부터 나는 항상 다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꿈꾸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복한 가정’이라면.. 음, 사실 별 건 없다. 그냥 내가 살아온 환경과 비슷한 가족을 나도 언젠가는 갖고 싶었다. 분에 넘치게 잘나지도, 눈물 나게 힘들지도 않은 어느 지극히 평범한 삶에 감사하며 소소한 행복으로 살아가는 가정 말이다. 그러니 나에게 있어 결혼과 임신은 아주 축복스러운 일일 것이다. 결혼을 하는 과정까지는 나름 그 축복스러움을 제정신으로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그보다 더 기뻐해야 할 천지신명의 영역(?)인 임신 기간은 이상하게도 나에게 상당한 우울감을 선사했다. 

 임신 초기에는 입덧이 심했다. 호르몬의 농간에 속고 있는 것이라고 아무리 정신승리를 해봐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메슥거림과 헛구역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오만하지만 살아오면서 내 인생 정도는 나름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생에는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생각보다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버거워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힘듦은 결코 힘듦이 아니었음을 입덧이 나에게 확실히 깨우쳐주었다. 안정기가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주변의 위로가 무색하게 나의 입덧은 초기 안정기라는 12주, 진짜 안정기라는 16주가 지나도록 계속되었다. ‘요즘은 입덧 괜찮아?’라는 지인들의 물음에 ‘아뇨, 아직도 해요’라는 대답을 하기가 민망해질 정도인지라 애써 쓴웃음을 짓기 일쑤였다. 안정기가 지나고까지 입덧하는 사람들은 출산하기 전까지 한다는데, 그 불운의 아이콘이 바로 나였다니.. 입덧뿐만이 아니었다. 지독한 소화불량, 역류성 식도염, 최악의 변비(그냥 ‘변비’라는 단어로는 그 고통을 설명 못한다.) 등이 기다렸다는 듯 종합선물세트처럼 찾아왔다.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잠시 놓고 싶을 만큼 괴로운 나날이었다. 기본적인 생리현상의 불균형으로부터 오는 고통은 한 명의 여자로서, 아니 인간으로서의 삶의 질을 처참히 무너트렸다. 

 이러니 어떻게 내가 임신기간 행복했겠냐는 말이다. 여느 미디어에서나 봤던 고상하게 앉아 태교 하는 임산부의 모습은 내게 완벽한 사치였다. 물리적으로 힘이 드니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싶었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문득 나의 모성애가 의심스러웠다. 임신을 하고 한 번도 엄마로서의 신성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임신소식을 알릴 때면 지인들은 '아기가 얼마나 예쁠까!'라고 기대했지만, 이상하게도 정작 내게 그 기대감은 오랜 시간 동안 없었다. 그저 나는 나의 안위가 걱정스러웠을 뿐. 나에게 모성애가 있는 걸까? 혹시 없는 것은 아닐까? 몸이 힘든 이 와중에도 꾸역꾸역 출근을 하고 열심히 일했다.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하면 잠이 들기 전 고작 저녁 2-3시간 밖에 여유가 없는데, 그마저도 밥을 먹고 치우고 온갖 증상에 괴로워하는 데에 시간을 썼다. 남들은 뱃속의 아기에게 말도 걸고 음악도 들려준다는데, 나는 그런 인간미조차 없었다. 이래도 되나 싶다가도, ‘아기들은 어차피 못 듣는다. 가장 중요한 태교는 산모들이 본인의 일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는 유퀴즈에 출연한 산부인과 선생님의 말씀을 위로 삼았다. 

 사실 한편으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뱃속의 아기가 내가 사랑이 없다고 오해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었다. 산모가 임신 사실을 부정하면 아기들은 뱃속에서 마저도 꽁꽁 숨어있다는데, 혹시나 내가 임신한 것을 후회한다고 오해를 하면 어떡하지 싶은 그런 걱정이었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전달받을 텐데 나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겠지 하는.. 하지만 아가야, 내가 너를 원망하는 것이 절대 아니야. 너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야. 힘들어하기밖에 못하는 나라서 미안해.라고 한번쯤은 말해주고 싶었다.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20주 차가 다 되어갈 때 즈음 태동이 시작된다. 누군가는 붕어가 배에서 뻐끔뻐끔하는 느낌이 난다고도 했다. 나도 처음에는 고장 난 내 대장의 움직임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본능적으로 뭔가가 다름을 느꼈다. 뻐끔뻐끔. 꾸물꾸물. 톡톡. 여태껏 아기보다는 나를 가엾이 여겼던 내가 모성애와 비슷한 감정을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내 뱃속에 정말 사람이 있구나. 내가 이 아기를 지켜야 하는구나 하는. 그렇기에 출산을 앞둔 지금까지 내가 임신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조금 격할지라도 분명한 태동을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와 탯줄로 연결된 어떠한 작은 인간이 내 몸 안에서 나와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 태동을 통해 이 아이가 살아있음을, 내가 엄마로서 살아있음을 비로소 느끼게 된다. 

 임신 중 산모의 몸체크를 위해서 쓰는 어플이 있는데, 어플에 접속을 하면 매주 주수에 따라 자라나는 아기 캐릭터가 매일 각기 다른 메시지를 말풍선으로 전한다. 언젠가는 '엄마, 엄마는 심장이 두 개네요!'라고 했다. 모성애가 생긴 탓인지 뭔지 뭉클했다. 정말 내 몸에 두 개의 심장이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벅차오르기도 한다. 살면서 한 몸에 두 개의 심장을 품고 사는 날이 얼마나 귀한 일일지 다시금 생각해 보며, 이 조그마한 심장을 가진 생명체가 세상 밖으로 안전하게 나오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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