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일기
동 틀 무렵, 길을 걸었다. 하늘과 호수는 하나였다. 잎을 몇 장 남기지 않은 나무들이 보였다. 한여름의 무성했던 초록 잎들, 하늘을 가득 채운 빼곡한 잎사귀들이 떠올랐다. 이제 11월의 나무들. 몇 개 남지 않은 잎들 사이로 휑한 바람과 어둑한 하늘이 지나갔다. 마치 인생의 마지막을 닮은 듯했다.
엄마의 머리카락은 한 움큼씩 빠져 나갔다. 이제 머리 피부가 훤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피부병으로 머리카락이 뭉치듯 빠지던 친구가 떠올랐다. 흰 약을 바르며 다니던 그 친구처럼, 엄마도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자 공포에 사로잡혔다. 자신의 몸에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암환자를 처음으로 돌보는 초보 보호자인 나는, 미리 알았더라면 공포에 휩싸이기 전에 엄마를 미용실에 데려가 머리카락을 미리 밀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엄마는 남아 있는 머리카락을 결국 밀어버렸다. 평생 두통에 시달렸던 엄마의 머리통이 민머리로 바뀌는 모습을 보았다. 얼굴에 비해 하얀 두피가 드러났다. 빡빡이로 민 엄마는 마치 비구니처럼, 아니, 오래 수행을 해온 고경력의 노스님 같았다.
아버지는 영상통화를 통해 엄마의 모습을 보며 '머리가 없어도 이쁘다'고 했다. 나는 농담으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내년 1월 중순이면 엄마의 항암치료 1회기를 마치고, 엄마와 아버지는 고향에서 드디어 상봉할 것이라고 했다. 두 분 모두 편안하게 살기를 바랐다. 아버지는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두 분이 비로소 자기 집에서 편히 지낼 수 있다면,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로고테라피처럼.
엄마는 1차 항암치료를 마쳤고, 3주가 무사히 지나갔다. 다음 주 화요일부터는 2차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할 예정이다. 고령의 엄마가 잘 이겨내기를 바란다. 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