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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Jan 08. 2024

시간의 두 얼굴

마흔, 그대 4. 로마시대 부조 <카이로스>


  누가 이런 지혜를 냈을까요? 시간의 마디를 끊어 새로운 시작을 만드는 놀라운 긴장! 어제를 잘라내고 오늘 하루를 박음질하듯 달력은 우리를 ‘새해 첫날’이라는 시간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오늘의 태양은 어제의 태양과 다를까요? 바다에는 사자가 헤엄치고 산속엔 고래가 뛰어다니는 신비 가득했던 태고의 땅과 초고속 인터넷이 천국과 지옥을 연결하는 현재의 지구에 아직도 여전히 전설과 비밀스러운 위대함이 숨겨져 있을까요? 지금, 제 앞에 도착한 ‘시간’을 정면으로 마주 봐야겠습니다. 



배경 : <카이로스, 160~180> *뤼시포스 원본 이후의 로마작품 / 오른쪽하단 : <카이로스> 후대 제작품



  인류 문화의 여명기를 담당했던 그리스인들은 '철학적 인간'이었습니다. 삶의 구성요소에 '개념'과 '의미'를 부여했지요. 그들의 명철한 눈에 시간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60초는 1분, 60분은 1시간, 24시간은 하루, 365일은 1년 하는 것처럼 시침이 똑딱똑딱 흐르는 객관적인 뉴턴의 시간을 '크로노스'라고 했습니다. 삶을 직각으로 깎아내는 어떤 '결정적 순간', '의미가 부여된 시간', '어느 적절한 때'는 '카이로스'라고 했습니다. 카이로스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시간입니다. 인간의 창조성이 폭발하던 시기,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에 그리스인들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흐르는 시간인 '크로노스'와 의미 있는 한 순간을 가리키는 '카이로스'로 나누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싶어 했고 신(神)도 인간의 육체를 가졌다고 믿었던 그리스인들이 이 카이로스를 인간의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BC 350~330년 사이, 요즘으로 말하면 대통령 전속 사진사였던 뤼시포스(Lysippos)가 조각했습니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이 아끼던 아티스트였고 자신의 주군에게 '순간, timing'의 중요성을 알려주려 했습니다. BC 3세기의 시인 포시디포스(Posideppos)는 대화 형식의 시를 통해 부조의 젊은 청년 카이로스에 대해 힘 있는 목소리로 전해줍니다.   

  

  그대는 누구고 누구의 아들인가 / 난 카이로스, 모든 것을 정복하는 시간, 뤼시포스가 만들었지 / 그대는 왜 까치발을 하고 있고 발목에 있는 날개는 무엇인고 / 난 신속하고 바람과 함께 날아다니니까 / 손에 든 칼은 무엇인고 / 내가 그 어떤 것보다 날카롭다는 뜻이지 / 앞머리가 길구나 / 누가 날 만났을 때 잡아채게 하려고 / 뒤통수는 대머리인데 / 나를 한번 지나치면 다시는 붙잡을 수 없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 뤼시포스가 날 만들어 대문 앞에 세운 거라네.     


  로마시대 부조는 발을 디디고 있지만 이후 제작된 대리석에는 둥그런 구 위에 중심을 잡고 있는 모습이 발견됩니다. 그만큼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순간이라는 말이겠지요. 영어 Occasion(상황, 경우)의 어원은 라틴어 '오카시오 Occasio'입니다. 로마신화 속 기회의 여신 이름이 오카시오입니다. 여신은 굴러가는 바퀴 위에 서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 카이로스가 '기회(opportunity)'라는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는 것에 대한 맥락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 흐르는 시간 크로노스는 주로 나이 든 모습이지만 카이로스는 순간을 나타내서인지 항상 젊은 청년으로 등장합니다. 그야말로 '젊음' 자체가 '기회'인 것이지요.



프란체스코 살비아티 <카이로스>



  그리스 로마 문화가 저물고 중세에 다다르자 시간은 늙거나 젊지 않고 멈추었습니다. 신이 부지런히 닦고 조이고 기름 쳤던 천국과 지옥만이 서로를 향해 시계추를 흔들었습니다. '지금, 여기'는 불완전한 그림자에 불과했고 완전하고 분명하고 고정된 것은 저 너머, 신에게 있었습니다. 신의 임명장을 들고 크로노스라는 위엄 있는 어른이 법과 이성과 규범과 체계로 세상을 다스렸습니다. 순리적 인과관계가 기본이 되는 크로노스의 단단하고 논리적인 토대 때문이었을까요. 사회는 계몽주의로, 예술은 고전주의로, 과학은 뉴턴의 물리학으로 거듭 발전했습니다. 문명은 크로노스의 어깨에 올라타고 성큼성큼 안정감 있는 내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다다른 21세기의 지금,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몸은 더디 늙습니다. 위험엔 민감하고 변화엔 소극적입니다. 나와 다른 생각은 이물감이 느껴져 예민하게 거리를 둡니다. 자신의 생각은 이성을 통한 합리적 판단에 근거한다면서도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하루가 온통 크로노스의 시간으로만 채워집니다. 그래서 정확하지만 고루하고, 꾸미지만 맵시 없고, 발전했지만 낡아졌습니다. 저 또한 보이지 않는 것까지 그릴 줄 알았던 명랑한 그리스인의 정신을 추방하고 상상할 줄 모르고 그릴 줄 모르는 지루한 현대인이 되어가고 있지요.     


  새해 첫날, 달력을 쳐다봅니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에게 있어 간과하지 않아야 할 두 가지가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어리석음이라고 했지요. 올해는 현명한 인간들이 갖는 미적 상상력으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거라는 인간의 지혜로움에 기대어 보려 합니다. 애써 불완전한 균형을 잡고 있는 젊은 카이로스를 일상에 붙잡아 놓으려 합니다. 존재의 성숙과 행복을 향한 까다롭고 복잡한 합금의 비율에 '알맞은 순간'과 '의미 있는 찰나'가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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