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그대 13.윌리엄 프리스<The Fair Toxophilites>
시위에서 화살이 날아가는 순간, 숨이 멎습니다. 과녁에 꽂혀 점수가 발표되어야 "휴우" 날숨을 내쉽니다. 참으로 오랜만엔 뛸 뜻이 기뻤습니다. 전 TV 앞에서 K리그 최고의 치어리더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응원했습니다. 양궁 개인 남자 결승전은 명불허전, 그야말로 결승전 다웠습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한치의 흔들림 없이 서로가 그간의 땀과 한숨, 기량과 열정과 투혼을 남김없이 보여주었습니다. 두 선수는 맞수로 만났지만 누구보다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고충을 짐작할 수 있는, 진정한 지음(知音)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응원하고 축하하는 저만의 방법으로 양궁 작품을 찾아보았습니다. 윌리엄 파웰 프리스(William Powell Frith, 1819~1909)의 <The Fair Toxophilites, 1872>가 있더군요. 1873년 5월 영국 런던의 왕립 아카데미에서 <19세기 영국 궁수>라는 제목으로 전시된 후, <The Fair Toxophilites>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작품입니다.
'Toxophilite'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영국 학자이자 엘리자베스 여왕의 그리스, 라틴어 가정교사였다고 알려진 로저 애샴(Roger Ascham, 1515~1568)이 쓴 책 'Toxophilus, 활을 사랑하는 사람'의 제목이 이 단어를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781년에 설립된 왕립 톡소필라이트협회(Royal Toxophilite Society)의 이름에서와 같이 양궁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그러니 '공정한 활쏘기'라고 해야 할까요? '공정하게 활 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The Fair Toxophilit
배경을 먼저 살펴봅니다. 시골 너른 저택 앞, 작은 공원인가요?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 드센 햇빛과 거센 바람을 막았을 참나무가 보입니다. 화면 앞 왼쪽 풀밭엔 참나무에 앉아 노래했던 새들이 목을 축일 작은 웅덩이와 희고 빨간 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습니다. 살짝 그늘을 드리운 참나무 뒤로는 클래식한 붉은 벽돌 건물이 보입니다. 창문은 삼면으로 돌출되어 있고 저택의 바깥은 낮은 테라스로 둘러져 있네요. 섬세한 선을 누르고 채도 낮은 색을 조화롭게 배열해 고즈넉하고 귀족적인 분위기를 살렸습니다.
화면의 뒤부분에는 길고 오래도록 펼쳐지는 구릉, 바람에 휘는 나무, 구름 같은 안개더미, 점점이 박힌 양 떼들, 날개를 쭉 편 검은 새들이 에밀리 브론테가 쓴 <폭풍의 언덕>을 연상시킵니다. 황량하면서도 고답적인 철 지난 18세기의 분위기를 화면 안으로 느긋하게 당겨옵니다. 서두르는 기색이 없습니다. 정지된 시간이 차분하고 음울하고 낮은 바람 소리를 냅니다.
분위기의 변화는 화면 오른쪽 숙녀 세 분입니다. 그녀들의 드레스는 19세기 빅토리아 귀족들의 기품과 패션감각을 보여줍니다. 윌리엄 파웰 프리스는 은은한 광택과 강렬한 색을 탁월하게 소화해 천의 질감을 살렸습니다. 게다가 적당한 주름을 넣어줌으로써 부드럽기는 하나 고급스러운 천의 중량이 느껴지네요. 화사한 칼라, 층층이 넓은 파고다 소매 끝 오버 드레스 단의 레이스 문양을 보세요. 하나하나 사람의 손으로 짠 섬세함이 돋보입니다. 연보라색 리본과 모자는 튀지 않지만 평범함을 거부하는 세련됨을 보여주고 로코코식의 꽃장식 모자는 여성스러움을 배가시킵니다.
그런 그녀들이 들고 있는 활과 화살은 시대의 온실에서 곱게 자라 미래의 안락과 부귀를 가져다줄 신랑감을 조준하고 있는 것일까요? 큐피드의 화살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활을 쏘고 있는 냉철하고 단단한 표정이 메달을 노리는 국가대표 선수 못지않습니다. 순서를 기다리는 듯한 두 숙녀도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 자세와 표정입니다. 어찌 보면 너무 조각 같아 현실감과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드레스의 광택과는 다른 서늘한 빛이 서립니다. 남자를 유혹하기엔 너무 딱딱하지 않을까요.
윌리엄은 세 명의 숙녀가 자신의 딸인 앨리스(연보라 모자), 패니(핑크 모자), 루이스(다크브라운 모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루이스의 허리 벨트에 활쏘기에 소용되는 기물을 -화살을 청소할 때 쓰는 녹색 소모사 술, 점수를 기록하는 노트, 화살이 표적을 맞춘 위치를 기록하는 데 사용하는 뼈나 상아를 보관하는 도토리 모양의 밀랍과 미니어처까지- 꼼꼼히 그려 넣었습니다.
지성과 기술이 풍미해 백과사전 시대로 대변되는 1800년대는 품위와 명예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만큼 여자에게는 완강한 틀이 존재했지요.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저 붉은 벽돌의 고풍스러운 저택 베란다 난간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남자들은 대륙으로 대양으로 뻗어나갔지만 여자들은 손님들 앞에서 하프시코드(피아노 전신)를 연주하거나 신부 수업을 위해 자수틀 앞에서 보내는 하루가 전부였습니다. 여자가 쓴 글은 형편없을 것이라는 편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에밀리 브론테가 '앨리스 벨'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숨길 수밖에 없던 시대였습니다. 그 화증(火症) 나는 시대에 유일하게 남녀가 동등하게 겨룰 수 있는 경기가 양궁이었습니다.
18세기 후반부터 달아오르기 시작한 양궁의 인기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남녀 가 한자리에서 연습할 수 있었고 양궁 클럽과 대회가 개방되었습니다. 우아함과 균형감각을 필요로 하는 경기라 여자들에게 가장 적합하다 여겨졌기 때문이었지요. 역시 꿈보다 해몽입니다. 이런 기회를 강하고 지혜로운 여인들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사회가 기대한 것이 무엇이든 간에 여인들은 허리에 활쏘기에 필요한 기물을 달고 당당히 어깨를 폈습니다. 팔을 쭈욱 뻗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향해 화살을 쏘았습니다. "내 영혼은 겁쟁이가 아니기에 폭풍이 몰아치는 영역에서 떨지 않는다네."라고 말한 에밀리 브론테의 다짐처럼 그녀들은 떨지 않고 두 다리로 버텼습니다. 19세기 후반 참정권을 위한 '집안의 천사들'의 투쟁은 그녀들 허리에 전사의 무기인 활과 화살이 달려 있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릅니다.
윌리엄은 캔버스에 활을 쏘는 세 딸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해변에서 자신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궁수들의 요청으로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했습니다. 그가 응원한 것이 무엇인지 그의 내면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화살은 중력을 이기고 버팅기며 길게 구부러져 과녁에 도달합니다. 세 딸들은 자신의 두 팔로 사회의 격자를 넓혀 자신이 닿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했을까요? 휘고 구부러져 기어이 완고한 전통과 편견의 중심을 꿰뚫었을까요? 대한의 선수들과 우리 딸들을 응원하는, 빛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