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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Aug 20. 2024

Someday is Today

마흔, 그대 11. 노먼 록웰 <방랑자>

   “삶은 당신의 안전지대를 벗어나야 비로소 시작된다.” – 작가, 닐 도날드 월쉬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그 어딘가가 어디냐고 물으면 머뭇합니다. 아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이 다 '어딘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이곳'이 아닌 '언젠가'. '어딘가'를 꿈꾸는 것이 우리네 삶이었던가요?    

  

  꿈에 이끌려 아주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던 적이 있으시지요?

  동쪽인지 서쪽인지도 모를 방향 없는 바람이 불고, 나뭇잎들이 눈치 없이 반짝거리고, 어디선가 성글고 앳된 풀냄새가 퍼지는 때, 첨벙첨벙 신발을 적시며 가볍게 경계를 넘고 싶었던 적 말입니다. 새들은 숲으로 날아가고, 별들은 바다에 떨어지고, 모닥불은 그림자를 삼키는 특별한 오늘, 저기 도시의 숲에 보퉁이 하나 메고 유년을 건너가는 어린 방랑자가 보입니다. ‘미국의 따뜻함을 관찰’해 그렸다는 노먼 록웰(Norman Rockwell, 1894~1978)이 <방랑자, 1958>를 통해 엿보고 있군요.  



노먼 록웰 <방랑자, 1958>



  '곰돌이 푸'의 등을 가진 남자는 소년에게 약간 몸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모자와 제복으로 보아 경찰입니다. 오른쪽 옆구리에는 권총이 있습니다. 뒷주머니에 수첩이 보입니다. 그의 옆구리와 허리로 이어지는 불룩한 살은 그의 넉넉하고 온화한 성품을 대신 말하는 듯합니다. 그의 어깨는 어린 소년을 감싸 안기라도 할 듯 바짝 가깝네요. 다정한 그의 표정만으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맞은편에는 병아리 빛 셔츠를 입은 어린 꼬마가 있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소년의 옆얼굴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꼬마는 의심이나 궁리가 없는 순수한 눈으로 상대방의 눈을 바라봅니다. 아! 저런 눈을 언제 가졌던가요. 아니 어느 틈에 잃어버린 건가요?  

  

  우리의 눈은 곧 파란 청바지, 초록색 쿠션의 가늘고 긴 스툴로 이어집니다. 스툴 아래엔 붉은 보자기로 싼 보퉁이가 있습니다. 빨간 보퉁이에는 흰옷이 살짝 엿보입니다. 노먼 록웰은 대비되는 색상으로 장식 없이 세련된 컷을 만들었군요. 그나저나 저 보퉁이 속엔 양말과 속옷, 그리고 한두 개의 장난감, 먹다 남은 과자가 있겠지요. 꼭 행자승의 바랑 같습니다. 보퉁이를 매단 휜 막대는 돌기가 삐죽이 나와 있네요. 나무에서 막 잘랐는지 끝이 비스듬합니다. 분명 정원에 있던 나무 한 가지를 연필 깎는 칼로 대충 자른 걸 거예요. 나무막대는 캔버스 모서리로 이어져 나무막대의 길이만큼 공간을 만듭니다. 마치 대화를 마치고 캔버스를 빠져나오는 출구 같습니다. 





  이즈음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보퉁이를 든 어린 꼬마와 듬직한 경찰 아저씨 사이에 담배를 물고 둘을 바라보는 카운터의 남자 말입니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나도 어릴 적, 해 봤거든'하는 익살스러운 웃음입니다. 셋의 얼굴이 만드는 삼각형 구도는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안정되고 사랑스럽습니다. 역시 단순하지만 치밀하게 짜인 구도로 감탄할 만한 탁월함을 만들어 내는 노먼 록웰입니다. 

   

  그의 은근한 매력은 '안톤 체호프의 총'처럼 스쳐 지나가는 곳에 키워드를 숨기는 명민함입니다. 카운터 테이블 오른쪽 끝에 커피잔이 보이네요. 조금 전까지 손님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조용히 나간 그가 신에게 천사를 요청했나 봅니다. 천사는 다정한 미소와 함께, 맛있는 샌드위치를 건네거나 길을 안내하는 호루라기로 어린 소년의 곁을 지켜줄 것입니다. 유년의 방랑이 모험을 지나 어둠을 짊어지지 않도록. 


  언제부터인가 목적지가 명확해졌습니다. 지름길을 알게 되고 익숙한 길로 다니지요. 돌아갈 길도 정확히 압니다. 모르는 이를 만나지도 않습니다. 명함 한 장만으로도 사람의 대부분을 파악하는 속성 관찰력이 생깁니다. 엉망진창을 부끄럽게 여기고 격렬하게 규범을 지킵니다. 쓸데없이 힘이 들어가 새로운 걸 시도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법도 없지요. 무엇보다 떠나지 않습니다. '주소'를 가졌다는 건 유년의 부고장입니다. 어린아이는 머물지 않으니까요. 


   

  닐 도날드 윌시(Neale Donald Walsch)의 말대로 ‘지금’, ‘이곳’이라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언젠가’, ‘어딘가’로 여행을 떠납시다. 여행은 세상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데, 친절한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우리를 지켜주는 천사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Someday is Today"를 꿈꿉니다. 

  그대의 바라던 그 어느 날이 곧 ‘오늘’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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