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습니다. 뇌를 기절시키려 또다시 와인 한 잔을 마셨는데도 눈이 뻑뻑하기만 할 뿐 몸은 쉬지 못합니다. 눈 주위를 엄지로 꾹꾹 누르다 손 세수를 해 봅니다. 새벽 2시를 넘어가는 시계의 초침은 째깍째깍 근면히 움직입니다. 대부분 상황에서 결정 장애를 앓고 있는 저는 수면제 삼아 화집을 펼쳤습니다.
인간 세상의 측량기사였던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 1527~1569)이 붓을 잡던 시대는 한가하지 않았습니다. 브뤼헐이 태어나기 조금 전인 1517년,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말을 타고 작센의 바르트부르크 성을 향해 달렸습니다. 습하고 두터운 안개에도 멈추지 않았지요. 성에 도착한 그는 수도사만 읽을 수 있었던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모두가 읽을 수 있었고 '만인은 사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론리플래닛 하나만 들고 하나님을 찾아가던 가톨릭 세계에 Just go 시리즈도 있고 Enjoy 시리즈도 있다고 알려준 것이지요. 게다가 '론리플래닛' 군데군데 잘못된 안내가 되어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이후 서유럽은 하나님께 가는 두 갈래 길, 즉 가톨릭과 개신교 중 하나를 고집하느라 다시는 보지 않을 얼굴을 하고 유머도 없이 꾸준하고 진지하게 싸웠습니다. 길 위에는 다리 잘린 이, 팔 없는 이, 앞 못 보는 이가 사방을 헤매었고, 숲이 타는 냇내 속에 피냄새가 배어들었습니다. 붓 하나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비처럼 날게 하고, 은혜가 폭포처럼 쏟아지게 하던 화가들은 화구를 챙겨 들고 싸움터를 떠나 신흥 부자들의 거주지, 플랑드르 지방으로 향했습니다. 피터르 브뤼헐은 그 플랑드르 지역인 네덜란드에서 <성 마르틴 축일의 포도주, 1565~1568>라는 작품을 그렸습니다.
피터르 브뤼헐 <성 마르틴 축일의 포도주, 1565~1568>
가로로 긴 화면엔 어둑 발이 두텁습니다. 혼란한 세상의 시간을 보여주는 듯하네요. 게다가 몹시 시끄럽군요. 불콰하게 취기 어린 얼굴로 악다구니 쓰는 소리가 이곳까지 들리는 듯합니다. 붉고 커다란 포도주 통 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있습니다. 포도주를 받으려는 사람, 얼굴까지 파묻고 정신없이 마시는 사람, 다른 이에게 따르는 사람, 포도주를 쏟았는지 서로 주먹질하는 사람, 아이를 안고 먹이는 여인, 포도주를 억 병으로 마셔 이미 기절한 사람 등등 90여 명에 이르는 인물들이 각기 다양한 동작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왼쪽 위, 성(城) 기슭의 열린 공간에는 한 무리의 인물들이 점점이 뿌려져 있습니다. 오른쪽 뒤편 집과 골목 사이에는 푸른 옷의 말 탄 기수가 지나갑니다. 다락 창문엔 네 명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엔 백마를 탄 기사가 칼을 들어 옷을 자르고 있습니다. 그 앞엔 속옷 한 장이 전부인 허름한 남자가 보입니다. 브뤼헬은 빈틈을 주지 않고 미주알고주알 구조를 짜 놓았습니다. 온통 수수께끼입니다.
그림에서만큼은 셜록 홈즈 못지않은 저입니다. 이 그림에서 백마를 타고 붉은 옷을 자르는 기사는 성 마르틴입니다. 성 마르틴은 4세기 경 지금의 헝가리에서 태어나 프랑스 지역에서 살았고 어린 나이에 로마의 군인이 되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 말을 타고 가던 그는 헐벗은 차림에 구걸하는 거지를 만났습니다. 그에겐 추운 겨울이었지만 거지에겐 춥고 고통스러운 겨울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망토를 잘라 거지의 어깨에 둘러주었습니다. 그날 밤 꿈속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대 덕분에 추위를 면하였다. 고맙구나."
그는 더 이상 군인으로서 죽음의 칼을 들 수 없었습니다. 마르틴은 군복을 벗고 사제복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홀로 고독하게 주님과 대화했습니다. 사람들은 삶과 영성이 일치했던 그가 투르 지역의 주교가 되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수도사의 삶을 원했던 그는 사람들을 피해 거위 우리에 숨었지만 무슨 일인지 갑자기 거위 우리가 무너졌습니다. 그는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었지요. 겸손하고 정직했던 그의 신심(神心)은 신앙공동체를 성장시켰고 그의 시간은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는 데 바쳐졌습니다. 나중 그를 흠모하는 이들에 의해 그의 망토(cappa)를 지키는 교회가 세워졌고 이 교회에 사제(cappellanu)를 두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채플(chapel)'은 이렇게 시작된 작은 교회를 이르는 말이지요.
피터르 브뤼헐은 측량기사의 꼼꼼함으로 자신이 보았던 축일을 그렸습니다. 망원경과 평판측량과 세오돌라이트(DT)를 사용해 술 마시고 소리 지르고 싸우는 사람들을 재고 달아 구도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빛바랜 십자가는 놓을 곳이 마땅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왼쪽 귀퉁이에 허름하게 세웠습니다. 성 마르틴은 오른쪽 작은 둔덕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마르틴의 말발굽은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아마도 예수님 외에는 그를 기억하지 못하겠군요. 우리에게 빼빼로 데이로 알려진 11월 11일은 그의 장례일입니다. 유럽에서 '성 마르틴 축일'이자 '마틴마스(Martinmas)'라고 불립니다.
오늘, 제 글이 연결고리가 되어 초대받은 모임에 나갔습니다. 11월 초(初)여서인지 거리는 사랑의 언어와 초콜릿이 버무려진 달콤한 가을이 한창이었습니다. 우린 뮤지컬 공연을 보았고 이후 세팅 깔끔한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풍미 넘치는 스파게티와 빈티지 와인, 다정한 대화, 감미로운 분위기, 절도 있는 서비스를 만끽한 저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따뜻했고 고급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지금까지 웬일인지 잠이 들지 못합니다. 와인을 마셔도 취하지 않습니다. 와인 반 병이면 세상 낙낙한 저를, 무엇인가가 자꾸 긴장하게 합니다.
다시금 화집을 덮고 셜록 홈즈처럼 꼼꼼하게 뇌에서 단서를 찾습니다.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르는 척했군요. 일 년간 매달 후원할 금액을 적어놓고 부끄러웠던 게지요. 구세군의 자선냄비를 지나쳤다 아예 모른 척 건너가기도, 되돌아가서 후원하기도 애매한 횡단보도 한중간에 서 있었나 봅니다. 전 결정장애를 앓고 있으니까요. 저와 같은 이를 위해 브뤼헬은 백마를 타고 자신의 붉은 망토를 자르는 성 마르틴을 그렸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마르틴의 망토 속에 여전히 군복을 벗지 못한 군인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곧 겨울이 도착할 것입니다. 성 마르틴 축일이 지나면 수확기가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축일에 어른들은 그 해 수확한 첫 번째 와인을 마시고 아이들은 등불을 들고 가장행렬을 했다고 합니다. 마을의 성자들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었다지요. 아이들이 장갑 없이 시리고 가는 손을 내밀 때, 그에 걸맞은 선물을 해야겠어요. 이제 편안히 잠듭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