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시간

순천만 국가정원을 다녀와서

by 박 혜리


청포도가 익어가는 칠월을 지나 나뭇잎이 짙게 물들기 시작하는 시월이 다가오면 괜스레 나는 마음이 들뜨면서 어떻게 하면 주말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였다. 나뭇잎이 연초록 싱그러움을 더하기 시작하여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춤을 출 즈음에야 한숨을 돌리는 남편에게 나는 지난주에 다가오는 주말은 어떻게 보낼 것인지 물어보았는데 남편은 내게 이번 주는 친척의 결혼식에 가야 한다고 말하였다. 청명한 하늘은 드높아가고 화창한 날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나는 해가 점점 짧아지기 전에 맑은 날을 택하여 여행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기억마저 희미한 순천에서 열리는 국제 정원 박람회를 처음으로 방문한 건 정원이 조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우리 가족은 아이들이 어릴 때 견학을 겸하여 가족여행을 갔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 그곳을 떠올린 것은 꽃과 나무로 장식한 정원과 함께 한동안 보지 못했던 코스모스를 마음껏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집에서 순천까지 쉬지 않고 달리면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막내가 등교를 하고 남편이 출근을 하자 나는 바로 출발을 하였다. 나는 휴게소에 들러 음식시켜서 아침을 먹었는데 고속도로를 달리다 차와 식사를 가끔 휴게소에서 먹고 마시는 것도 여행의 묘미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하며 늦은 아침을 먹었다. 나는 다시 출발을 하여 내비게이션이 일러준 길을 따라 운전을 하였는데 길은 막히지 않았지만 정오 무렵에서야 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평일이지만 주차장은 빈 곳이 많지 않았는데 차를 주차하고 나서 매표소에 들러 나는 입장권을 구매하여 출입구쪽을 향하여 걸었다. 지난밤 일기 예보에서는 가을날씨답지 않게 한낮에 약간 더울 수 있다 하였는데 나는 미리 챙겨 온 선글라스와 모자를 후 정원 안으로 입장을 하였다.



입장권을 사면서 가져온 안내 책자를 보며 나는 먼저 정원이 많은 동문 방향으로 걸었는데 호수에 둘러싸인 공원이 눈에 띄어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순천의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동천을 나무테크로 형상화한 모습과 신도심과 구도심의 소통을 의미하는 호수 그리고 제일 위 봉화산 아래 중앙에 있는 6개의 언덕은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산을 표현하였는데 맑은 호수에 둘러싸인 언덕을 바라보면서 나는 순천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한동안 호수를 바라보고 나서 나는 정원이 몰려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는데 일본 정원은 아기자기하였고 영국정원은 많이 넓었으며 스페인 정원은 특색이 있었는데 각 나라의 정원을 둘러보다 사진을 찍어달라는 분에게 나는 사진을 찍어 드렸다. 오십대 후반정도 되어 보이는 수원에서 온 그녀는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며 혼자 혼자 여행을 왔다고 말하였는데 같은 여행객이라 반갑기도 하였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양옆으로 메타세쿼이아가 길게 드리워진 길에 이르렀다. 저길 끝에는 뭐가 나올까 궁금해하다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한다는 평화 정원을 지났는데 조금 걷자 내 눈앞에는 코스모스와 핑크몰리가 가득 펼쳐졌다. 들판 중간에 듬성듬성 나무가 서 있고 코스모스가 흐드르지게 피어 있었는데 나는 넋을 놓고 바라보다 여러 컷의 사진을 찍었다. 코스모스 피어난 길을 한참 걷다가 점처럼 아스라한 길의 끝에서 만난 아담한 정자에 앉아 아픈 다리를 쉬며 나는 땀을 식혔는데 삼십여 분 후에 습지를 보기 위하여 서문으로 출발하였다.



서문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네덜란드 정원에는 멋진 풍차가 보였다. 입구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 지나니 카페가 보이는데 나는 목도 축일 겸 음료를 테이크 아웃하여 마시면서 프랑스 정원과 중국정원을 차례대로 천천히 돌았다. 우리나라와 세계의 어린이들이 그렸다는 세계 최초의 물 위의 미술관인 꿈의 다리에서 그림을 감상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스카이큐브를 탈 수 있는 매표소가 있는 건물이 나왔는데 케이블카 같은 철길 위를 달리는 그것을 타고 주위를 돌아보니 넓은 평원에는 수확기에 이른 벼들이 황금물결을 이루었다. 십 분 정도 있다가 중간에 한번 내렸다 갈대열차로 갈아타라는 안내요원의 지시에 따라 열차를 갈아타고 조금 달리니 사방으로 갈대가 펼쳐진 습지에 도착하였는데 나는 광활한 경치에 압도되었다. 열차를 타고 온 사람들과 함께 나무로 된 테크 위를 걷는데 파도 같은 물결을 이루며 흔들리는 갈대 사이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니 갯벌 아래에는 진흙을 온몸에 묻힌 짱둥어들이 파닥파닥 몸을 비틀며 놀고 있었다. 나는 더 돌아보고 싶었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는 서쪽으로 기우는 중이어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다시 열차와 스카이큐브를 갈아타며 다리를 건너서 출구로 나왔는데 많은 곳을 돌아보다 때를 놓쳐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하여 나는 근처에 있는 음식점을 찾았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으로 보이는 그녀는 점심시간만 운영하며 시간이 지나 마감되었다 하였는데 나는 아침에 집에서 준비해 온 과일과 간식으로 간단하게 허기를 우고 다시 귀가 길에 올랐다. 한시 간이상을 달러 집에서 가까운 휴게소에 들러 나는 이른 저녁을 먹고 나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살아 계실 때 가죽과 함께 고향 가까이에 있는 계곡으로 여행을 떠나곤 했었다. 지금은 개발을 많이 하여 덩그러니 넓은 계곡에 그늘마저 없어 옛 정취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는데 예전에는 괜찮은 자리를 골라 텐트를 친 다음 삶은 옥수수를 먹거나 라면을 끓일 때면 산새 소리와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었다. 시골집에서 차로 이삼십 분 걸리는 그곳은 나라에서 지정한 문화재가 있는 데다 빼어난 산새로 아는 사람만 찾는 한여름 피서하기에 좋은 곳이었는데 산림이 우거진 계곡은 나무 그늘이 많고 계곡물에 몸을 담그기라도 하면 한여름에도 얼음물에 닿은 듯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가 어려 자주 여행을 다니진 못할 때도 아버지 살아 계실 때에는 가까이에 온천이 있고 유명한 관광지가 있어 리조트에 하룻밤 묵으며 놀이기구를 타고 놀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는데 가족이 모두 함께 여행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려보지만 이제 엄마 걸음이 시원치 않아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난 주말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 후 돌아오는 길 반대편을 보니 아침에 집을 나올 때만큼이나 차가 막혀 있었다. 주중에 자주 내리는 비를 보면서 여행을 미리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일을 하든 취미 생활을 하든 평생 무언가를 하며 살아야 하는 기나긴 인생길에서 가끔 여백을 다니며 즐기면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순천만에 있는 국가 정원을 돌아다니다 보니 꿈같은 시간이라는 팻말을 보았는데 파아란 하늘과 눈부신 햇살, 잘 다듬어진 정원의 꽃의 향연이 지나고 보니 내게는 꿈같은 시간이었다.


일 년에 두세 번 혼자 여행을 해본다는 버킷리스트를 실현한 것 같아서 나는 뿌듯하였는데

이틀은 시간을 내어야 다 돌아볼 수 있다는 그곳을 다음에 방문할 때에는 남편과 함께 여유 있게 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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