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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 Oct 22. 2019

입금 알림 문자서비스가 꼭 필요한 이유

마흔 살 욜로족의 부동산 힐링 에세이 1


네? 2억 4천에 월세가 70만 원이라고요?



지난주에 하마터면 2억 2천짜리 신축 빌라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뻔했음을 떠올리며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장님, 그 집 보여주세요."




집은 마음에 들었다.

아니. 사실 잘 보지도 않았고 봤어도 부동산에는 까막눈이었던 내 눈에 흠이 보일 리도 없었다. 어차피 지금 살고 있는 세입자를 안고 매수하기로 한 터라 근거 없는 믿음이 생겼다. 집에 하자가 있다면 마땅히 세입자가 말을 해줄 것이 아닌가. 나는 2천만 원 차이로 빌라에서 아파트로 올라섰다는 안도감에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


낡고 작은 아파트였지만 잠시 예쁜 빌라에 홀렸던 내 마음을 추스리기에 충분할 만큼 역세권에 학군도 좋은 곳이었다. 공실 위험이 적은 곳으로 유명해서 나는 안정적으로 월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신축 빌라의 분양 담당자가 마침 여름휴가를 가서 계약을 일주일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하늘이 도왔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나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다.


매매가 2억 4천, 보증금이 1천 들어가 있으니 매도인에게 2억 3천을 치르기로 하고 그 자리에서 잔금일을 잡았다. 부동산 사장님은 대출은 어디서 받을 거냐 물었지만 나는 대출을 받을 생각이 없고 그냥 소소하게 아파트에서 월세를 받고 싶을 뿐이라고 해맑게 대답했다.


참 대담했다. 그때의 나는.




두 달 뒤 잔금을 치르고 그다음 달부터 나는 꿈에 그리던 월세를 받기 시작했다.


첫 월세가 입금되던 날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불법으로 소득을 얻은 것 같기도 하고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 잠시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묘한 기분은 곧 흥분으로 바뀌었다. 퇴직하고 월세나 받으며 살고 싶다는 많은 직장인들의 희망이 현실로 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진짜 이런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를 가진 것은 많이 든든했다. 비록 내 월급만큼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매달 70만 원이 들어오는 시스템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뿌듯했고 자랑스러웠다.


은행에 입금 알림 문자서비스를 신청했다. 그동안 나는 왜 이런 서비스가 필요한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젠 알 것 같았다. 월세가 입금되었다는 문자를 받으면 하루가 너무나 행복해졌다. 이런 확실한 소확행을 놓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므로 나는 기꺼이 수수료를 지불하고 서비스를 신청했다.



소확행




월세 받는 여자가 된 것은 나의 자존감까지 올려주었다.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가진 게 많은(?) 내가 참아야지 하는 아량을 베풀 수 있었고 지금 하는 일이 죽을 만큼 싫다면 나는 당장이라도 그만둘 수 있다는 허세도 부릴 수 있었다.


돈의 힘은 실로 위대했다.


기껏해야 70만 원이지만 나에게 이 돈은 최악의 경우 여차하면 사표를 던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상징이었다. 그동안 재테크 책에서나 봤던 머니 파이프라인(money  pipeline)을 실제로 경험하고 나니 세상마저 아름답게 보였다.


월세를 못 받는 다른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안타깝지만 신은 나에게만 비밀의 문을 살짝 열어준 듯했다.


나는 전보다 명랑해졌고 소확행을 마음껏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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