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중지하는 인형같이 이쁘고, 말도 잘 듣고 하던 애가 길바닥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타이르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도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는데..정말 미쳐버릴거 같았다.
난 임신 중이었을 때,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이미 우리 아이보다 더 큰 아이들이 있었을 때,
'어후, 어떻게 애들을 키운 거야. 길바닥에 드러눕게 하고, 저렇게 때를 쓰고 말이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허나... 지금은
'남의 애나, 니 애나.....'
아이들이 있는 부모는 아이의 영향을 받는다. 아이들이 말을 잘 듣고,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생활을 잘하면 우리 일들도 잘 풀리는 것 같다. 기분도 너무 좋고, 행복하다.
그런데 이렇게만 되면 더할 나위 없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애들이 하루종일 징징거리고, 악을 쓰고 울기 시작하면 진짜 우울 해진다. 플러스로 남편까지 나에게 애들을 어찌 키웠느냐, 애들한테 무슨짓을 한거냐라고 다긋치기 시작하면...집 나가고 싶어진다. 이나라를 벗어나고 싶어진다.
말이야 쉽다. 스트레스 받으면 떠나면 돼지? 그러나~우리는 묶여 있는 몸 아닌가? 떠나기 쉽지 않다. 누가 떡! 하고 먹고살라 돈을 떡! 하고 손에 얹혀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니 아이를 돌볼테니 걱정없이 놀다와라~ 이러는 사람도 없고, 우리는 묶여있는 몸이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거야,
아님 남의눈이 신경이 쓰이는 거야?
나는 완벽한 엄마이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 오래전부터 엄마가 돼기를 꿈꿔왔고, 기다려왔다.
책도 자근자근 읽어주고, 설명해주고, 인내하며, 자상하고, 완~~전 이쁘게 하고 다니는 그럼 엄마가 되고 싶었다. Peppa Pig에 나오는 페파의 엄마나 아빠처럼 진흙 속에서 뒹굴어도 "하하, 너무 재밌겠다. 우리 같이 할까!! 첨벙 ~"하고 웃는 그럼 엄마 말이다.
누구나가 그렇게 소망하던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기 전 우리는 머릿속에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 그려본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은 차이가 있고,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잔소리를 한 그 날 밤, 밤세도록 느껴지는 박탈감,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가 없다.
아이가 만 2세가 되었을 때는 언어소통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 화를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주위에서 " 다 지나가니까 걱정 마"라고 말을 하였고, 만 4세가 되었을 때는 성장하는 단계라 그렇다, 만 6세가 되면 학교 입학할 시기가 있다... 등등 책들과 인터넷의 정보들은,
'좀 지나면 틀릴 거 같지? 계속 그럴걸? 니 아이들은 계속 저렇게 성장기를 거칠 거야~~!!'라고 암묵의 메시지를 전한다. 헐...
나는 가끔씩 길거리를 가다, 쇼핑을 하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엄마 아빠를 맞이하게 된다.
그 화를 내는 표현도 다양해, 아이를 끌고 그 자리를 황급히 피하는 부모, 아이에게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화를 내는 부모, 아이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부모들 각양각색이다.
나는 멀리서 지켜보는 입장이지만, 그들은 그 상황에 있다. 우리는 속으로 그 아이를 흉볼수도 있고, 그 부모에게 동지애를 느낄수도 있을것이다.
그 아이의 부모들은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 창피함에 자리를 뜰 수도 있을 것이고, 아이의 그 행동에 부모 자신의 화를 못 이겨 버럭 화를 낼 수도 있고 부모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나는 가끔씩 나에게 묻는다. 오늘 왜 아이에게 화를 냈는지? 아이가 올바로 자라는 마음에서 고쳐주기 위해 화를 낸건지. 내가 단지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순간적으로 위협을 주기 위해 화를 냈는지? 아님 그 순간이 남들 눈에 챙피해서 화를 냈는지?
엄마, 내 친구들 앞에서 그렇게 말하지 마.
언젠가 이 곳 어린이집에서 신발을 신는 문제로 큰 아이와 사소한 언쟁이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이미 넌 네 살이니 신발 신는 것을 혼자 하지 그래 라고 말을 했고, 아이는 그 날 따라 유난히 어리광을 부렸다. 자신의 친구들이 보고 있었고, 아이의 어리광은 "쇼타임" 모드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머릿속에서는 화를 내 말아?라는 가느다란 실이 끊기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있었다.
구경꾼은 많아지고, 나는 한국말로 (다른 아이들은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므로..) "레오야, 내가 네 친구들 앞에서 꼭 너를 야단쳤으면 좋겠어? 기분이 별로면 엄마가 집에 가서 많이 안아줄게. 신발은 네가 신어. " 아이는 주위를 흘깃 보더니 신발을 신기 시작한다.
몇 달 전인가 친구들 보는 앞에서 아이를 야단쳤을 때, 아이는 더욱 흥분하기 시작하였고, 나에게 질 세라 말대꾸를 끊임없이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아이는 본인의 잘못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엄마가 뭘 잘못을 했는지를 인식'시키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자, 이것으로 오늘 너의 일과는 끝~"라고 말을 하며 울고 불고 하는 아이를 붙잡고 집으로 데려 왔다. 집에서 분해 발을 동동구리는 아이를 방에 두고, 나는 밑에서 긴 한숨을 쉬며 커피를 마시며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소리를 지르다 지쳤는지 아이는 나에게 슬며시 와 안긴다. 힐끗 쳐다보며 "왜 그렇게 소리 질렀어? 너는 이렇게 하루를 끝내고 싶니?"라고 물으니 "엄마, 엄마가 내 친구들 앞에서 나 야단쳤잖아!"라고 울면서 말을 한다.
참...... 나..... 야단쳤을만하니 쳤지...라고 속으로는 생각했지만 아이에겐 "아... 그게 창피하고 속상했어?"라고 되물어 보았다. 그러니 대성통곡을 하며 그랬다고 대답한다. 그때, 만 4세도 창피함을 아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엄마, 나 미워하지 마.
올해만 세 살이 된 딸아이는 별명이 "diva 디바"이다. 옷을 입는 것부터 머리핀을 꼽는 것 까지 본인이 원하는 것으로 해야 한다. 회사를 다닐 때 아침 여덟 시까지 직장에 도착해야 하는 나로서는 아침에 옷을 입힐 때, 미쳐버리겠다는 말이 정말 맞을 정도로 옷 입는 전쟁을 했어야 했다. 하루는 내가 한 겨울에 반팔을 입겠다고 생떼를 부리는 아이 앞에서 너무 화가 나 옷을 집어던진 적이 있었다. 그러며 "네가 입고 싶은데로 입어, 춥다고 나중에 울든지 말든지!!"라고...
지금 생각하면, 그 조그만 아이가 생떼 부리는 것에 어른인 내가 감정조절이 못한 게 후회가 되지만 그때 당시에는 매일 되는 전쟁에 정말로 지쳐있었다.
그 때 딸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엄마...... 엉엉.... 나 미워하지 마"라고 대성통곡을 하는 거였다.
나는 당황해 "내가 왜 너를 미워해? 네가 옷 입는 것 때문에 매일 투정 부리니까 그렇지."
"나 정말 엄마가 골라준 옷 입기 싫단 말이야.. 엉엉엉.."라고 대답을 한다. 헐.... 몇 주전에는 매일 그 옷만 입으려고 하더니.... 결국 딸 아이는 본인이 원하는 여름옷을 입고, 내가 자켓을 챙기는 조건으로 옷을 입고 그렇게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매번 이동을 할 때 아이는 나에게 묻는다.
"엄마아, 자켓 챙겼엉, 긴바진 챙겼엉? ? 라고...
네가 어른이니? 내가 어른이니?
우리 아이의 성장을 동반한다. 아이들에게 끊임없는 시기가 있다. 괜찮아 보이던 애들도 갑자기 투정에 짜증에, 애들이 집안에 두 명 이상이면 번갈아 가며 그 시기를 거치게 된다. 좀 나아졌다 싶음 그 시기가 또 오고... 피곤하다.
그런데 말이다. 그 시시가 끝이 없는데 말이다. 우리는 계속 한탄하며 화를 내며 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우리는 성인이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을 우리의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사회생활을 하며 배워왔다. 그런데 이 조그만 인간들로 인해 우리는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이 조그만 인간들로 인해 너무 행복하고, 이 조그만 인간들로 인해 우리는 슬퍼하고, 분노한다.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이 주는 신호를 잘 받아주는 안테나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반사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주위의 시선에,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일상에 지쳐서, 받아줘야 하는데 되받아 쳐 버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아이들이 실수를 했을 경우, 심호흡을 길게 하고..(아니면 우리의 이성은 끊이 끊기니..;)
1.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기
2. 다른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그 아이가 잘 못 한 점만 지적하기.
3. 왜 잘 못했는지를 설명해 주기
4. 아이가 잘못을 시인한다면 그 자리서 용서해 주기
아이가 어려서 이해를 못한다고? 천만에다. 아이들은 반복을 통해 그 습관을 익힌다. 인내하라!! 부모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