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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May 13. 2024

작가에게도 필살기가 필요하다

'믿고 읽는 작가'가 되고 싶다면!

지난 이야기

글 써서 먹고살기로 결심한 뒤 뼈저리게 느낀 게 하나 있다면, 영감이 올 때만 쓰면 반드시 망한다는 것이다.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이 있다는 걸.

그러나 천재들의 루틴에 따르면, '글이 술술 써지는 느낌' 같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쓰기만 하면 된다. 어떤 날에는 좋은 글이 나오고, 어떤 날에는 더 많이 고쳐야 할 글이 나올 뿐이다. 돈이 되지 않아도, 잘 써지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냥 계속해서 쓴다면, 그 모든 시간이 모여 결국 한 권의 작품이 탄생할 것이다.


'믿고 읽는 작가'란 무엇인가


가끔은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아, 글 정말 잘 쓴다." 이 작가는 어쩜 이렇게 내 마음을 훔쳐 읽은 것처럼 글을 쓸까. 이럴 땐 책을 손에 든 채로 잠시 미소 짓게 된다. 좋은 글을 발견한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니까.


그러나 정말 가끔은, 좋은 것을 넘어 충격적인 글을 읽게 될 때가 있다. 이때는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잠시 그 자리에서 책을 덮고 탄식을 내뱉을 뿐이다. 작가의 경이로운 통찰력이나 상상력, 문장력을 음미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충분히 감탄하고 나서야 다시 책을 펼친다. 이건 그 작가를 '내 마음속에 저장'하는 과정이다.


쫀득한 문장이나 장대한 세계관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 없다. 어떻게 이런 글을 썼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길래 이런 글이 탄생했을까? 나도 죽기 전에 이렇게 엄청난 글을, 아니, 이런 문장을 하나라도 쓸 수 있을까?


그리고 다짐한다. 이 작가가 향후 어떤 책을 내더라도 기어이 찾아 읽으리라. 내게 있어 '믿고 읽는 작가'는 이렇게 탄생한다. 믿고 읽는 작가 리스트가 늘어날수록 책을 읽는 기쁨이 늘어가고, 서점에 드나드는 일이 더 잦아진다.




아무도 믿지 않던 나의 글


누군가 내 글을 '믿고 읽게'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글을 '꾸준히' 써야만 한다. 둘 중 하나만 하기도 쉽지 않은데 그 둘을 병행해야 한다니, 읽는 이에게 신뢰를 주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한 중앙지에서 칼럼 연재를 제안받았을 때의 일이다. 나는 계약과 동시에 회사로부터 부탁을 받게 되었다.


조건은 두 가지였다. 앞으로 연재할 글 열 편의 목차를 미리 알려줄 것, 그리고 첫 원고를 아주 여유 있게 보내줄 것. 팀 내에서 "원고를 촉박하게 받아 그대로 싣기에는 불안하다", "목차를 미리 검토하고 싶다"라는 의견이 나왔다고 했다.


'글을 충분히 수정할 수 있도록 미리 보내달라'라는 건 글쟁이로서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부탁이 아주 정중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당시 나는 몇 권의 책과 칼럼을 집필한 이력이 있었지만, 중앙지 정기 연재는 처음이었다. 그러니 아직 나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그 말은 정당했다. 실력을 증명해 신뢰를 주면 되는 일이었다.




작가에게도 필살기가 필요하다


잘 갈아낸 칼날 같은 통찰력,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생생한 세계관, 읽는 이를 멈출 수 없게 만드는 필력까지. 믿고 읽는 작가라고 불리는 이들에게는 저마다의 필살기가 하나씩 있다. 그러니 믿고 읽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나만의 장점을 하나 정해두고 갈고닦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능력 있는 작가가 쏟아지는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진 장점은 무엇일까?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주어진 일은 미리 끝내고, 촉박한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기한 안에 완수한다. 처음에는 이게 나의 장점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약속을 지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항상'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는 걸. 


회사로부터 목차와 원고 한 편을 미리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자마자 칼럼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일 년간 연재할 글의 제목과 각 글의 내용을 모두 담은 기획안을 만들고, 한 편이 아닌 두 편의 원고를 미리 썼다. 약속된 날짜가 오기 전 세 개의 파일을 미리 보냈다.


시간이 지나지 않아 바로 답장이 왔다. 목차와 원고가 너무 좋아 팀에서 물개박수가 나왔다는 이야기였다. 원고를 쓰는 내내 이 말을 어찌나 고대했는지! 결국 해냈다는 성취감이 나를 감쌌다. 나는 이렇게 약속을 지키며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고 있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장점


약속을 지킨다는 건 엄청난 문장력이나 통찰력처럼 강력한 필살기는 아니다. 그 대신 '소소하지만 확실'하며, 절대 녹슬지 않을 장점이다. 지각하지 않는다. 좋아질 때까지 고친다. 이 두 가지 원칙을 지키기로 다짐한 이후부터는 글을 쓰는 두려움이 확연히 줄었다. 어떤 글이든 시간과 공을 들여 고치면 되니까.


작가로서 나의 가장 큰 목표는 누군가에게 '믿고 읽는 작가 되기'다. 단 한 명뿐이라도 좋으니, "저 사람 글은 늘 좋더라"라고 말해주는 독자가 나타나면 좋겠다. 그날이 올 때까지 꾀부리지 않고 부지런히 써나갈 셈이다. 나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장점을 무기처럼 두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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