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네. 가장 보편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운동이라는 헬스와 필라테스를 경험해 보고 나니 강한 의구심이 생겼어요. 사실은 ‘운동은 재미있는 것’이라며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비밀 세력이 있는데, 저는 미처 그 음모의 대상자가 되지 못한 게 아닐까 하고요.
정말 이렇게 자신을 고문하는 게 재미있나? 아니면 다들 나처럼 죽을 만큼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몸은 하나뿐이며 이 몸을 평생 건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애써 운동의 재미를 찾기로 한 걸까? 그런 게 궁금해졌어요. 저는 정말 운동이 재미없었거든요.
Q. 그래도 용케 운동에 계속 도전하긴 하셨네요.
A.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에요. 해야만 하니까, 이렇게 살다가는 진짜로 큰일 날 수도 있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거죠. 딱히 자발적인 동기가 없었어요.
매번 정말 죽을상을 하고 운동했어요. 운동만 시작하면 시간이 어찌나 느리게 가는지! 작심삼일에 그치기 딱 좋은 환경이었죠. 수영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계속 살짝 발만 담갔다가 후다닥 그만두는 일을 반복했어요. 이 세상에 재미있는 운동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으면서요!
Q. 어쩌다 수영을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A. 이것도 마찬가지로 엄청난 동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냥 계시를 받듯이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수영을 배워보면 어떨까? 저는 어렸을 때 물놀이를 좋아했거든요. 그러니까 어쩌면 수영도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엄청 단순한 발상이죠.
때마침 군에서 동네에 수영장이 있는 스포츠센터를 지어 줬어요. 저는 마을버스도 잘 안 다니는 시골에 살아요. 이런 동네에 수영장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거든요. 그간 납부한 지방세가 드디어 큰 수확으로 돌아왔구나, 이건 수영에 도전해 보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닐까? 뭐 그런 의식의 흐름이 있었죠.
Q. 수영은 진입 장벽이 꽤 높은 운동 아닌가요?
A. 맞아요. 일단 집 근처에 수영장이 있는 경우가 드물잖아요. 저도 편의상 동네라고 부르는 것뿐이지, 사실 집에서 수영장까지 10킬로미터는 떨어져 있거든요. 가볍게 다닐만한 거리는 아니죠.
집순이라면 공감할 이야기지만, 운동하기 위해서 어딘가에 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힘들었어요. 홈트는 침대 옆에서 언제든 바로 시작할 수 있는데, 수영은 수영장에 가야만 할 수 있잖아요. 침대에서 나오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산 넘고 물 건너 수영장에 가려니 쉽지 않았죠.
Q. 수영장 물이 더럽다고 꺼려하시는 분들도 많던데요.
A. 저도 그게 고민이었어요. 누군가 수영장 물속에서 실례를 할 수도 있고, 수영을 하다 보면 푸 하며 입안에 들어간 물을 뱉어 내는 사람도 흔하게 볼 수 있으니 수영장 물이 그리 깨끗하지는 않을 것 같았거든요. 아무리 약품으로 소독한다고 한들 타인의 체액이 섞여 있는 물에 몸을 담그는 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잖아요?
게다가 노출이 필수인 운동이라는 점도 마음에 걸렸어요. 강습용 수영복은... 몸의 모든 굴곡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종의 쫄쫄이잖아요. 탈의실에서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다 같이 모여 씻어야 한다는 점도 조금 낯설었고요.
Q. 그렇게 마음에 걸리는 게 많은데, 어쩌다 수영할 결심을?
A. 어느 순간 깨달았거든요. 이 모든 게 운동을 피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라는 걸요. 저는 운동하지 않는 저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어요. 이것저것 재고 따지다가 그 어떤 운동도 시작하지 못했던 과거가 떠올랐죠. 저는 운동할 수 없는 구실만 끊임없이 생각하다가 정말 운동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예요.
이번에는 '운동을 못 할 이유'를 떠올리지 않고 일단 해보기로 했어요. 그래야 이 지긋지긋한 작심삼일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처음으로 굳게 마음을 먹었어요. 아, 수영을 배워보자! 운동하는 걸 죽도록 싫어하던 '안 움직여 인간'인 제가 수영장에 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