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책 좋아하세요?

내가 웃어도 웃는 게 아니야.

by 나는고래

제주로 이주해온 지 5년이 지났다. 그동안 남편이랑 아이들이랑 제주 곳곳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재미나게 살았다. 그러다 슬슬 사람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도였지만,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았던 터라 나름 동네에 지인들이 생겼다. 바로 아이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 아이들 나이가 비슷하니 아이들 놀게 해 준다는 명목으로 자주 만났다. 술을 좋아하는 엄마들이 모이니 자연스레 술자리 모임이 잦았다. 서로의 집을 돌아가며 방문하거나 놀이방이 있는 고깃집이 우리 아지트였다. 하지만, 아무리 자주 만나고 "언니~"라며 친근하게 불러도, 내 마음은 자꾸 그들과 섞이지 못하고 점점 거리를 두게 되었다.


사람이 곁에 있지만 사람이 그리웠다. 서로 각자 이야기 보다, 남편이나 시댁 이야기, 아니면 다른 아이 친구 엄마나 아이들 어린이집이나 학원 선생님 이야기, 그러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자신들 지인들 이야기를 나누는 게 대화의 전부였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다른 사람이 아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내가 원하는 그런 진지한 대화는 다른 가십거리들에 파묻히기 일쑤였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입을 닫기 시작했다.


내가 바란 건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서른 중반, 뒤늦은 사춘기로 "나는 누구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나는 왜 여기 제주까지 온 거지?"에 대한 질문을 마구 던지던 때였다. 혼자서 아무리 고민하고 고민해도 좋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생각만 해서는 아무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냥 많은 질문들을 나에게 던져놓고, 계속 그 질문만 되풀이하며 밤새 울었던 시절이었다. 누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놔야 할지 아무리 찾아봐도 내 주변에서 찾을 순 없었다.


육지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모두가 한창 어린아이들을 키우며, 처음 살아보는 엄마 노릇을 하느라 각자 살아내기 바쁘기도 했고, 제주도로 오고 연락도 잘하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하다 보니 뜬금없이 전화해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영 멋쩍기도 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무수한 질문을 함께 고민해 줄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혹시 책 좋아하세요?"


그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책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적어도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을 나눠줄 수 있겠지 싶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한결같이 좋아해 온 '책'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주변에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책을 좋아하는 나를 다들 신기하게 여겼다. 내 취미는 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는 건가. 도대체 어딜 가야 나는 마음을 나눌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건가, 나는 친구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