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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가 있으신가요?

병원 입구의 느린 회전문이 돌아가자

한 노인이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가느다란 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낯선 병원 안을 두리번거리며 들어옵니다.


몸이 아파 병원을 찾긴 했으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릅니다.

해가 바뀔수록 아픈 곳은 많아지고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해갑니다.

작은 의원에 갔더니 큰 병원을 가야 한다며

진료의뢰서를 써 줍니다.

큰 병원에 오니 사람도 많고 참으로 복잡합니다.


다행히 병원 안내데스크 직원이 다가와

휠체어를 내어 주네요.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전에 직원이 물어봅니다.

[보호자와 같이 오셨나요?]


아… 보호자…

갑자기 머릿속이 마음속이 복잡해집니다.

자식이 있긴 한데…

아들, 딸들 모두 일하느라,

자기 식솔들 챙기며 사느라,

갈수록 뜸해지는 연락들.

부담주기 싫어서 아파도 아프다고

병원에 가야 하니 같이 가자고

갈수록 연락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살아온 많은 나날들 속에서

노인은 그들의 보호자였지만

이제는 보호자라 부를만한 그 누구도

주변에 없음에 처연함을 느낍니다.


[다들 바빠서요… 큰 병원이 처음이라

좀 도와주시면 고맙겠어요.]

[다음부터는 보호자와 함께 오셔야 합니다.]


휠체어를 밀어주는 직원의 눈치를

자꾸만 살피게 됩니다.


한참을 기다려서 진료실로 들어갑니다.

마스크 사이로 의사가 하는 말이

잘 들리지가 않습니다.

귀를 가까이 대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일단 검사를 해보자고 하는 것 같습니다.

검사실로 가니 옷을 갈아입으라고 합니다.

휠체어에서 내려 탈의실로 들어갑니다.

옷만 갈아입었을 뿐인데도 숨이 차오릅니다.

쎄엑쎄엑 숨소리가 거칠어집니다.


진료실로 돌아가니

의사가 입원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보호자 1인이 상주를 해야만

입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호자가 있는지 재차 물어봅니다.


아… 보호자…

또 머릿속이 마음속이 복잡해집니다.

사느라 바쁜 자식들에게

짐을 보태고 싶지가 않습니다.

보호자가 없으면 간병인을 구하라고 합니다.

간병인이라…

넉넉지 못한 형편에 병원비도 걱정인데

간병인이라니…


일단은 돌아가기로 합니다.

휠체어에서 내려 직원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

다시 지팡이에 의지하여

생각보다 빠른 회전문을 위태롭게 돌아

병원을 빠져나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지팡이를 쥔 손이 금방 시려 옵니다.

차가운 공기를 뿜어내는 하늘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하얀 입김을 길게 내뿜습니다.


 



세상 살기가 힘들어질수록 비혼이 늘어나고 1인 가구가 늘어납니다. 이는 홀로 늙어가는 가구수가 늘어난다는 말입니다.

[홀로 늙어간다는 것]

그것은 결혼을 해 자식이 있다고 해서 피해 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병원에 일하면서 이런 현실과 자주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저의 먼 미래를 보는듯하여 밀려드는 씁쓸함에 마른침을 삼키곤 했습니다. 그건 일종의 두려움이기도 합니다. 홀로 늙어간다는 것은 결국 보호자가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홀로 살다가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죽더라도 찾아오는 이가 없어 결국 백골로 발견되는 시신이 되는 끔찍한 상상도 하게 됩니다. 상상이기 이전에 이따금씩 뉴스 지면을 채우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보호자가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슬픈 눈을 하던 노인분들을 떠올려봅니다.

자신을 독거노인이라 칭하는 한 할머니가 제게 이런 하소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는 게 갈수록 너무 힘들어져. 집에 보일러가 고장 나서 AS 신청을 하려고 전화를 했더니만 인터넷으로 신청을 하라네. 아휴, 내가 인터넷으로 어떻게 신청을 해. 아휴, 갈수록 살기가 너무 힘들어져. 그만 살고 싶어. 이렇게 어떻게 살아. 너무 답답해서, 미안해요.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그분의 우울한, 억울한 눈빛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갈수록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화에 취약한 노인 계층은 사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집니다. 보호자가 간절해지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과연 이에 대한 해결책이 있기는 한 걸까요? 비혼을 택한 건 아직은 젊은 나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에 따른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할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앞에 절벽이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 걸어 나가는 느낌이랄까요? 그렇다고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선뜻 결혼을 해야 할 마음도 들지 않습니다. 결혼을 한다 해도 홀로 늙어가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죠.


이런저런 생각에 나름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같이 늙어가고 있는 나이 드신 부모님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누군가 부모님께 [보호자가 있으신가요?]라고 물었을 때 우리 부모님이 슬픈 눈을 하시지 않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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