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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노동자의 몽상


나 자신의 선행이 뒤이어 불러오는 일련의 의무 때문에 그 선행에 부담을 느낀 일은 자주 있었다. 그럴 때면 기쁨이 사라져 버려 처음엔 즐겁기만 하던 배려를 계속하면서도 참기 힘든 불편함만을 느끼곤 했다.

진심을 다했던 이런 첫 선행으로부터 내가 예측하지 못했고 더는 그 멍에에서 벗어날 수도 없게 된 일련의 약속의 사슬이 생겨났다. 내가 베푼 첫 도움이 받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 뒤로 이어질 도움의 담보에 불과했던 것이다.

선행을 받은 자가 그로부터 계속해서 선행을 요구할 무슨 자격이라도 얻은 양 굴고 그러지 못하면 미워하기까지 할 때, 마음이 불편해지면서 기쁨이 사라진다.

그 많은 슬픈 경험 이후 나는 뒤이은 내 마음의 첫 움직임이 가져올 결과를 멀찍이서 예견하는 법을 배웠고, 내가 하고 싶기도 하고 할 수도 있는 선행에 무분별하게 달려들었다가 그 뒤에 빠져들게 될 올가미가 무서워 자주 그만두곤 했다.

- 장 자크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중에서 -


나는 노동자다.

한 달간 계약에 따른 노동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 노동자.

노동을 제공함에 있어서 분명한 선은 언제나 존재한다. 아니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히 주고받는 계약관계임에도 돈을 주는 입장이 항상 우위에 놓이고 선을 넘은 노동을 요구하곤 한다. 무형의 노동보다 유형의 돈이 주는 가치를 더 크게 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노동자인 나 스스로도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러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행할 때가 있다.


때론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발적인 진심으로 일종의 선행을 행할 때도 있다. 많은 양의 일을 처리하느라 바쁜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 일련의 의무가 되어 버리는 경험들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내가 베푼 첫 도움이 받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 뒤로 이어질 도움의 담보에 불과했던 것이다.


장 자크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읽다가 위의 구절을 읽으면서 마치 내 마음을 읽히듯이 가슴이 저려왔다. 누군가는 그것을 [오지랖]이라 불렀다. 오지랖이라 부르며 그것을 폄하하던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선을 넘은 노동을 요구하곤 했다. 그리고 그것을 거절한 노동자들을 [이기적인 인간]이라 불렀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회사를 옮겨봐도 결국 똑같은 일들의 반복이었다. 임원진이 아니더라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상대방에겐 한없이 야박하다.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겐 할 것을 요구한다. 요구를 거절하면 이기적이라 비난한다.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도 있다. 나는 그런 범주에 속하진 못하는 것 같다. 이것은 일이라며 주어진 일을 하지만 어느 순간 선을 넘는 그들 앞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자존심이 무너질 때가 있다. 비참한 순간들이 적지 않게 나를 무겁게 짓누르곤 했지만 그래도 나는 나일뿐, 그런 상황에 놓였을지라도 내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며, 내 본질마저 비참한 것은 아니라고 마인드 컨트롤하며 그 순간을 버텨왔다.


하지만 버티고 버티고 버티던 내 남은 자존심에도 임계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임계점을 넘어서면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해진다는 사실도. 의무이긴 하지만 선한 마음과 의지가 필요한 성격의 일들이 있다. 그런 일들은 서로가 선을 지켜줘야 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상대방의 자존심을 무너뜨린다면 계약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이전에 사람이기 때문이다.


루소의 말처럼 그 많은 슬픈 경험들은 마음의 첫 움직임이 가져올 결과를 예견하는 법을 알게 했고, 괜스레 달려들었다가 그 뒤에 빠져들게 될 올가미가 무서워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무력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한 공간에 있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어차피 그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렇다고 나 자신 또한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성향으로 바뀌진 않을 것이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은 하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본질을 해쳐가며 자존심을 해쳐가며 일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다. 루소의 몽상은 나의 몽상으로, 그리고 현실로 귀결되었다.

이제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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