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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whale Sep 05. 2020

몸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법

몸이 마음과 다르게 움직인다고 느낄 때

종종 목에 담이 온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일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목과 어깨에 불편감이 있으면 담이 올 징조다. 살짝 뭉친 것인지 뻐근한 감이 있다. 운동을 너무 안 했을 때 생기는 둔한 느낌이다. 본능적으로 스트레칭을 하는 동작으로 어깨를 돌리고 목을 살살 구부리는데 발목을 접질리듯 삐끗한 통증이 목을 관통한다. 그때부터 얼굴이 좌우로 잘 돌아가지 않는다. 앞만 보는 레고처럼 뻣뻣해진다. 특정한 자세를 취하면 좁고 긴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온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그러면 속이 무척 답답하다. 몸이 마음과 따로 노는 듯하다.


쉴 수밖에 없는 상태가 돼서야 쉬는 날을 맞이한다. 평소에 적당히 쉬엄쉬엄 일하면 좋았을 텐데 뭔가에 몰입하다 보면 그게 잘 안된다. 어느 때부터인가 몸이 휴업하는 주기가 짧아졌다. '체력도 별로 좋지 않으면서 그렇게 막무가내로 일할 건지' 따진다. 그도 그럴 것이, 스스로 좋아서 일할 때 지쳐 더 이상 못할 때까지 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육아빠'라 이 정도지만 20대 시절에는 밤을 꼬박 새우고 잠깐 자고 일어나 또다시 몰입했던 적이 더러 있었다. 요즘은 조금만 덜 자도 낮에 정신을 못 차린다. 뭔가를 하려면 컨디션을 조절해야 했다.


이런 열심의 근본에는 두 가지 마음이 있다. 기왕이면 잘하고 싶은 마음과 내가 애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절박감이다. 열심히 해서 남 줄 것이 아니고, 또 누가 도와줘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애착이 갈수록 열심히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어린 시절에는 우월하고 싶은 욕구가 주 동력이었다. 그러나 철이 조금 들고부터는 일종의 책임감으로 변했다. 자의든 타의든 내게 주어진 기회와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건성으로 대충 해치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몸이 마음처럼 잘 안된다.


몸은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한계를 보게 만들었다. '이 선은 넘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듯한 경계가 있다. 실제로 해가 더할수록 같은 시간을 자도 개운하지 않을 때가 많아졌다. 같은 시간을 일해도 좀 더 오래 쉬어야 피로가 풀렸다. 가급적 매일 30여 분 동안 땀 흘려 운동하지만, 체력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유지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운동을 안 한 날이면 유독 피곤한 기운이 올라왔다. 이게 인생 선배들이 말해주신 몸의 변화일까. 마음처럼 따라오지 않는 몸을 보고 있자니 감정이 살짝 가라앉았다. 마음이 몸처럼 기력 없이 굴었다.


보면 볼수록 내 모자란 점을 많이 알게 된 탓이다. 건장한 줄 알았던 몸뚱이가 생각보다 취약했다. 시간이 갈수록 연약함이 늘어나는 게 좋지 않아 보였다. 오래된 가전기기처럼 점점 성능과 쓸모가 줄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문득 내가 여전히 뭔가를 입증하려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보여주기 위해 일하고 있었다. 남편, 아빠, 친구, 자녀, 선배 혹은 후배로서…. 갖가지 관계를 점토 삼아 나를 보기 좋게 빚으려 안감힘을 쓰는 모양새였다. 나답게 살고 싶은 마음을 잃어버린 채 앞만 보고 달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그런 나를 마음으로 끌어안았다. 아이에게 해주는 것처럼 토닥토닥했다. '참 고생 많았구나'. 그 말과 함께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올렸다. 손의 열기가 가슴 안까지 파고들었다. 심장이 따뜻해졌다. 맥동하며 살아 숨 쉬는 느낌이 평소와 달리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것을 어쩌다 당연한 일로 치부했던가. 내 삶이 고유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몸이 제 구실을 해준 덕분이었다. 마음만큼 아끼고 돌보지 않으면 오래갈 수 없겠다 직감했다. 내 바람처럼 보석 같이 살려면 결국 몸과 마음이 발을 맞춰 걸어야지 싶었다.


몸과 마음이
같은 보폭으로 걷기 위해
좀 더 건강해져야겠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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