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말 알려면
아이에게 '어쩔 수 없다'라고 자꾸 말한다면
'얘야, 지금 뭐가 필요하니'란 질문을 문득 생각해보게 됐다. 이 질문은 언어 자체가 낯설다. 실제로 이렇게 잘 묻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가 말을 못 뗐던 아주 어린 시절에 몇 번 혼잣말로는 했던 것 같다. '밤늦게 왜 칭얼대고 우는 것일까'라며 잠을 뒤척였던 시절이었다. 배가 고픈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기저귀에 뭔가를 싼 것 같지도 않은데? 어르고 달래며 집안 여기저기를 안고 다니다가 어느새 잠들면 나도 아이를 눕히고 쓰러졌다. 그런데 요즘은 이렇게 묻지 않았다. 많은 경우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탓이다.
사실 이 질문은 어떤 대화의 파편이다. 맞벌이 육아를 도와주시는 친(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아빠, 엄마가 일하느라 아침 일찍 나가고 밤늦게 들어오면서 아이의 학교 숙제를 봐주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대화였다. 코로나 사태로 아이가 학교의 현장 지도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온라인 수업에 대한 복습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착실한 아이라 잘 따르고 있지만 초등학교를 갓 들어간 아이 수준을 생각할 때 한 번은 더 봐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이셨다. 작년까지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시다 정년 퇴임하신 터라 학습 여건에 빠삭하셨다.
대체로 나는 물론 아내도 이런 상황에 느긋했다. 시대적 상황이나 부모 여건 탓에 모자란 점이 있겠다고 인정한다. 그럼에도 조급한 마음에 채근하기보다 부드럽게 유도해 가다 보면 어른들 생각처럼 뒤처지지 않고 알아서 잘 갈 것이라 믿었다. 아내가 어린 시절에 자라온 배경에서 나온 인식이면서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 현실을 오랫동안 봐 온 어머니는 지나친 여유를 경계하셨다. 사실 이는 우리 부부를 제외한 주변의 많은 사람이 갖고 있는 인식이었다. '다른 집 아이는...'으로 시작하는 소위 교육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무작정 나를 변호하지 않고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교육은 어떤 것일까'에 대해 자문했다. 가까운 가족 몇몇이 교육직에 오래 계셨거나 관련 일에 종사하기 때문에 주변 정보는 어렵지 않게 얻었다. 몇 마디 주고받으면 우리 아이가 또래에 비해 사교육을 별로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런 정보를 듣다 보면 괜한 부끄러움이 생겼다. '자녀에게 관심이 없는 자여'란 소리가 마음의 절벽에 메아리쳤다. 그러다 시간에 쫓겨 일단 맞벌이 현실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분명히 챙겨보자고 정리했다.
그 진지함이 아이에 대한 나의 행동을 바꿨다. 이른바 '교육적인 방침'이었다. 왜 숙제를 제시간에 끝내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 답답했을까. 아이가 그다지 하고 싶어 하지 않은 과제에 대해 학생의 임무에 대해서만 말했을까, 곁에서 함께 해결할 다른 방법은 찾지 못한 채. 어떤 휴식 기회나 간식을 허용하기에 앞서 아이가 할 것을 먼저 요구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그것이 자녀에게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할 것을 먼저 하면 아이가 학습 습관을 가지게 될 것이고, 어떤 문제든 잘 해결할 것이라고 멋대로 믿었다. 정말 그런지도 모르면서.
아빠의 생각대로 가르치면 그렇게 자라줄 것이라 믿었다. 정작 내가 이런 사고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랬다. 나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자유를 갖고 책임지길 좋아했다. 일방적으로 대하는 태도는 부모의 사랑이라 해도 힘들었다. 그러니 언제든 내게 물어봐주길 원했다. '넌 무엇을 원하니'라고. 나 또한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야 마땅했다. '지시한 것을 지시한 대로 하는 아이'를 만들려고 했던 나를 자각하며 새 마음을 먹었다. 아빠란 이름으로 의견의 당위성만 설득했던 순간을 돌아봤다. 아이의 생각과 마음이 듣고 싶어 졌다.
제가 누군가에게 바라듯
저도 아이에게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대하기 원합니다.
의견을 존중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인격으로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