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라 Aug 29. 2019

더 나쁠 수도 있었던 일

보이스피싱의 경험


  어느 겨울 아침,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모처럼의 외출 계획을 취소하고 누워 있던 나는 별 생각도 없이 침대 맡에 있던 전화를 받았다. 경상도 억양인지 북한 억양인지 알 수 없는, 갈라진 목소리의 남자는 건조하게 말했다.

    “문예진이네 집입니까?”


  취업차 일본에 가 있는 딸의 이름을 낯선 남자의 목소리로 듣는 것이 퍽 생경하였지만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영화에서나 보았던 납치사건이 내 딸에게 일어났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자기가 내 딸을 데리고 있다, 돈을 보내면 아이를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보내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더니 딸과 통화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러겠다고 했다. 내 딸은, 아니 내 딸을 가장한 그 여자아이는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 하고 새된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자신의 딸이라고 믿고 있는 아이가 엄마라고 울부짖을 땐 누구라도 그의 정체를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내 딸이 전화기 저편에서 공포에 떨며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어려서 총명하여 부모의 기대를 한껏 받았던 아이는 격렬한 반항기를 거치며 부모를 이기고 자기 고집대로 전문대 미용학과에 들어갔다. 스스로 깨닫기 전에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나는 진짜 고생을 좀 해보면 생각이 바뀌리라 생각했다. 딸은 취업전선에 나선 후에 그 길이 험난함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자기가 원하는 방향의 조언만 받아들였다. 아이는 힘든 피부관리실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미용업계에 취직했다.

 

  내가 다발성골수종의 진단을 받았을 때 아이는 귀국을 고민하였다. 나는 되도록 모든 가족이 자기 자리에서 하던 일을 열심히 하기를 바랐으므로 딸에게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어렵사리 잡은 일자리였고 아이는 일생을 통틀어 가장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그 남자의 목소리는 일본의 야쿠자를 떠올리게 했다. 쓸데없이 풍부한 나의 상상력만 아니었어도 나는 일본에 있는 아이를 어떻게 한국인이 납치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아니다, 상상하는 김에 조금만 더 상상했다면 이것이 연극임을 알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상상력 때문에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감정이입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납치범들에게 잡힌 나의 딸, 집안에서만 강한 체하는 허세만 가득한 내 딸이 얼마나 무서워 떨고 있을까. 살아 돌아온다 해도 잡혀 있는 이 시간이 아이에게 두고두고 트라우마가 될 텐데 어떻게 하나.


  내가 기도를 했는지 어쨌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를 돌려주는 조건은 2천만 원이었다. 나에게는 그런 돈이 없다고 하자 돈을 빌려서라도 자기들 계좌에 송금하라는 것이었다. 한 손으로 집 전화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통화를 하라고 하였다. 나는 시키는 대로 하였다.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여 몇 백만 원씩을 빌렸다. 이유를 묻지 않고 즉각 송금해 주는 사람도 있었고 끝까지 이유를 묻는 사람도 있었다. 나의 좁은 소견은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빌려줄 수 없다고 하는 사람에게 서운함을 느꼈지만 그는 그때 이미 보이스피싱을 의심하고 있었다.


  입금처인 농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보이스피싱이 아니냐고. 나는 아니라고 했다. 사실상 나는 보이스피싱의 수법에 대해 무지하였다. 납치를 가장하여 돈을 요구하는 이 수법이 가장 전형적인 수법인 것을 상황이 종료되고 나서야 알았다. 내 아이가 납치된 것을 추호도 의심 없이 믿었으니 내게 이것은 납치사건이지 보이스피싱 사건은 아니었던 것이다. 납치범은 의례 경찰에게 연락하면 인질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그들은 심지어 돈을 받고도 인질을 죽이는 악질적인 존재가 아닌가. 나는 납치범을 가장한 사람들에 의해 정신적으로는 완전한 납치사건의 피해자 가족이 되어있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돈 빌리기 작업은 오후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납치범, 아니 사기꾼들은 나를 동정하는 척하기도 하고 을러대기도 하며 입금액을 다 채우라고 재촉하였다. 돈이 내 통장에 들어오는 족족 사기꾼의 대포통장으로 들어갔다. 길고 긴 모금 노력 끝에 드디어 목표액에 도달하였다. 사기꾼은 칭찬인지 환호인지 모를 말을 하면서 이제 딸을 돌려보낼 테니 20분 후에 딸에게 전화해 보라고 하였다. 반드시 20분 후여야 했다. 나는 바보같이, 노예같이 그들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전화를 받는 딸의 목소리는 천진하였다. “엄마, 왜?”


  나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하였다. 결국 나는 납치범을 가장한 사기꾼에게 속아 아이의 목숨 값으로 2천 만 원을 바친 것이었다. 아이가 한국에만 있었어도 일말의 의심을 했을지 모르겠다. 직장에 있을 시간에 납치되었다면 회사에서 무슨 연락이라도 왔을 것이다. 만약 오늘 내 컨디션이 좋아 약속에 나갔더라면 이런 전화를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도우미 아줌마에게 휴가만 주지 않았더라도 일이 다르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수많은 만약이 나의 정신을 교란시켰으나 나는 곧 평정을 찾았다. 아이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닌가?

 

  나는 복잡한 마음을 잠시 추스르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은 작은 일에는 나를 쉽게 비난하지만 큰일이 있을 때는 대범해지는 성격이다. 괜찮다, 예진이가 괜찮으니까 됐고 당신이 괜찮으니까 됐다고 하였다. 빌린 돈은 자신이 곧 갚아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완전히 탈진상태였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협박범에게 시달렸던 나야말로 실질적인 인질이었다.   


  이 일이 위로받을 일인지 비난받을 일인지 판단하는 것이 나 스스로도 쉽지 않았다. 이럴 때는 옆에 있는 사람의 말이 가장 강력한 진실이 된다. 남편의 위로로 나는 안정을 찾았다. 예진이에게는 진상을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엄마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것도 미안할 텐데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큰딸에게 이야기했더니 내 마음이 다친 것을 함께 아파하고 슬퍼해주었다. 큰딸이 나중에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예진이가 잡혀있다고 믿었을 때 엄마의 그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인 것 같아. 우리가 마귀에게 붙잡혀 살 때 예수님의 마음이 그렇게 아팠겠지?”


  큰딸의 말에 감동을 받으며 나는 더 나쁠 수도 있었던 일이 이만하게 끝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