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에 감격하다
나는 골수 이식을 위해 7월 2일에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하여 7월 7일에 골수 이식을 받았고, 그 후 무균실에서 2주를 보내고 7월 21일에 퇴원했다. 골수 이식 후에는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어려워서 일기가 중단되었다. 다시 책을 읽을 수 있기까지는 일 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일기 발췌_2010년 6월 20일 일요일 맑음
우리 집에서 부부 상호지원그룹 모임을 했다. 앞으로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기에 주일 예배에도 가지 않고 힘을 아껴두었다가 모임에 임했다. 내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해도 남의 눈 속의 티는 잘 보는 것이 인간인지라 우리는 상호지원그룹에서 서로 조언하며 도움을 주고받는다.
일기 발췌_2010년 6월 24일 목요일 맑음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다.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집을 나간 후 남은 식구들은 자신들이 어머니를 잃어버리기 전에 이미 그녀를 잊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어머니의 존재를 무시하고 살았던 것이다. 어느 집에서나 발견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현실을 묘사했지만 가족들의 기억을 뒤져 그 속에서 발견된 에피소드를 통해 공감 가는 방식으로 서술하는 작가의 재능이 경이로웠다. 이런 작가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시어머님이 이상민 전도사 부부를 모시고 오셔서 함께 예배드렸다. 어머님은 전도사님께 자신을 위해서도 안수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시며 자신을 빨리 데려가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잘못인지도 물으셨다. 나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육신의 피로와 고통이 너무 심하여 생을 중단하고 싶을 지경이었는데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노구를 이끌고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든데 이 못난 며느리를 위해 백일기도와 사십일 기도를 하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니 한없이 죄송한 마음이 밀려왔다.
오늘부터라도 양가 부모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입원 예정일이 7월 2일이니 그 전날까지 기도하면 8일은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남편과 함께 기도하지 못하면 나 혼자라도 해야겠다.
일기 발췌_2010년 6월 25일 금요일 맑음
아침에 일어날 때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오늘은 예솔이의 유치원 개원기념일이라 같이 집에 있는데 입맛도 없고 밥 먹을 기운도 없어서 식빵 한쪽으로 아침을 때우고 점심은 남편이 사다 준 해물죽으로 때웠다. 예솔이가 심심해해서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았다.
진통제를 한 번쯤 걸러도 되지 않을까 하고 한 번 걸렀더니 발만 아픈 게 아니라 허리까지 끊어질 듯 아파서 그냥 먹고 말았다. 너무 많은 약을 장기복용하는 것이 문제가 될까 봐 걱정되어서 그랬는데 한나절을 견디지 못하는 나를 보니 나중 일을 예방한다는 생각은 사치임을 알겠다.
일기 발췌_2010년 6월 26일 토요일 흐리고 비
오늘도 컨디션이 저조하고 허리도 아프다. 입맛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나에게 이렇게 큰 병을 허락한 하나님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
일기 발췌_2010년 6월 27일 일요일 맑음
주일 예배에 갔다 와서 예솔이와 성준이를 '어린 왕자(키즈카페)'에 데려다주고 남편의 양복을 사러 타임월드 백화점에 갔다. 하복 정장이 39만 원이나 했다. 신상품이라 그렇겠지, 내 남편도 그 정도 가격의 옷을 입을 자격은 있는 사람이지 하며 결제를 했다.
집에 와서 예솔이를 씻기고 나니 넉아웃 되어 곯아떨어졌다.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입맛도 없으면서 억지로 곰국에 밥을 말아먹었다.
일기 발췌_2010년 7월 1일 목요일 흐림
내일은 골수이식을 위해 입원하는 날이다. 시부모님과 시이모님이 오늘 아침 나를 보러 오셨다. 걸음 걷기도 불편한 노인들이 젊디 젊은 나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 피부는 검버섯으로 뒤덮이고 뼈와 가죽만 남은 아버님을 보다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당신 자신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 누군가를 죽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그 마음은 어떤 것일까?
시부모님은 자신의 권리는 다 포기하시고 나를 위해 이타심의 극치를 보여주고 계신다. 당신들이 사실 날이 얼마나 될는지 알 수 없건만 젊은 며느리를 살려달라고 기도하시는 부모님 마음은 아들을 홀아비 만들고 싶지 않고, 손녀들을 어미 없는 자식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를 떠나 나라는 존재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시기에 그처럼 간절히 기도해 주신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런 사랑을 주시는 나의 시부모님은 진짜 크리스천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분들이다. 나는 시부모님으로부터 그런 사랑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