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뿔싸

오만 사천 원이 증발한 그날 밤

by 미리암

오만 사천 원이 증발한 그날 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그날 밤, 5만 4천 원이라는 금액이 내 실수로 허공으로 사라졌다. 고객의 카드 결제를 현금으로 잘못 눌렀던 것이다.


아뿔싸, 그 순간의 실수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순간


과거로 돌아간다

밤 11시 30분, 세련된 옷차림의 한 여성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와인 한 병과 마른 안주를 들고 카운터로 성큼 다가왔다.


“이거 계산해주세요,” 그녀가 말했다.

“와인 좋아하시나 봐요. 어떤 와인이 좋은가요?”


사실 와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던 나는, 소주 대신 와인을 사는 고객이 낯설게 느껴졌다.


“까베르네 소비뇽 사시면 왠만하면 실패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홍보용으로 준비된 누룽지를 건네며 그녀의 구매 물품을 계산했다. 그녀는 와인과 안주, 그리고 누룽지를 챙겨 매장을 나섰다.


밤 11시 50분, 시재 점검 시간. 열심히 지폐를 세고 또 세어봤지만, 계산이 맞지 않았다.


5만 4천 원이 부족했다. 당황한 마음에 영수증을 처음부터 끝까지 뽑아 확인했다. 그리고 마침내 문제의 원인을 발견했다.


바로 그 와인 고객의 결제를 카드 대신 현금 버튼으로 잘못 누른 것이었다.


다음 날, 떨리는 마음으로 사장님께 사실을 털어놓았다.

“에고, 금액이 적으면 괜찮다고 했을 텐데… 큰돈이라 주급에서 빼야겠네요. 그 고객이 어디서 와인바를 한다고 했나요?” 사장님이 물었다.


“포용면에서 한다고 들었어요,” 내가 대답했다.

“내 경험상, 이렇게 계산이 잘못된 경우 90%는 고객이 다시 안 와요. 재계산 귀찮아하거든. 그래도 정미씨, 영수증을 포스기 옆에 붙여놓겠습니다.”


그날 7시간 일한 보람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집에 돌아가서도 가족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다. 딸에게는 늘 덤벙대지 말라고 잔소리하면서, 정작 나 자신이 이런 실수를 저지른 게 부끄러웠다.


하루, 이틀,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저녁 9시쯤, 뜻밖에도 그 고객이 다시 편의점을 찾았다. 이번에는 구급약품을 사러 온 것이었다.


“어디 아프세요?” 내가 물었다.

“두통이 좀 있어서 약 먹으려고요,” 그녀가 대답했다.

계산을 하던 찰나, 머릿속에 백열등이 켜지는 기분이었다. 기회를 놓칠세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고객님, 저번에 와인 사셨을 때 제가 카드 결제를 해야 했는데 실수로 현금 버튼을 눌렀어요. 그래서 계산이 잘못됐는데, 혹시 지금 확인 가능하시다면 다시 결제 부탁드릴게요.”


“아, 정말요?” 그녀는 놀란 듯했지만, 다행히도 흔쾌히 응해주었다.


포스기 옆에 붙여놓았던 영수증을 스캔하고, 그녀가 내민 카드로 환불 후 재계산을 마무리했다. 사건은 그렇게 간단히 해결되었다.


그녀는 모른 척할 수도 있었을 텐데, 선뜻 도와준 덕분에 나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바로 사장님께 문자를 드렸다. 그리고 얼마 뒤, 통장에 ‘증발’했던 5만 4천 원이 다시 입금되었다.

참말로 다행이었다.

keyword